‘’한 명과 사는 건 지옥이야‘’
▲ 휴 헤프너와 지난해 결별한 플레이메이트들. 아래 사진은 미녀들 속에 파묻힌 휴 헤프너. | ||
최근 출간된 미주리대학교 역사학과 스티븐 왓츠 교수의 <미스터 플레이보이: 휴 헤프너 아메리칸 드림>은 대중에게는 ‘철없는 늙은 플레이보이’로 각인된 헤프너의 일생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
‘섹스는 놀이요 건강한 행위며 인간 본연의 즐거움’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섹스에 대해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것이 금기시되던 2차 대전 후 전 세계에 충격을 준 잡지 이상의 잡지 <플레이보이>를 만든 휴 헤프너. 이 책에 따르면 젊은 시절 글쓰기를 즐기고 만화가를 꿈꾸던 그를 잡지와 카지노클럽 영화사를 거느린 대재벌이라는 오늘에 이르게 한 것은 단돈 5달러의 힘이었다.
그는 미국의 남성지 <에스콰이어>의 카피라이터로 미디어 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1952년 회사와 단 5달러의 임금인상안을 놓고 협상을 벌이다 실패하자 과감히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이듬해 가구를 빌려주고 받은 돈과 어머니에게 꾼 1000달러(약 136만 원)를 비롯해 45명의 투자자들에게 거둬들인 8000달러(약 1090만 원)로 그가 탄생시킨 잡지가 바로 ‘비공식적인 성혁명 선언문’으로 불리는 <플레이보이>다. 1953년 12월 마릴린 먼로의 누드사진이 실린 창간호를 발간하면서 27세의 헤프너는 일약 성문화의 혁명가이자 자유주의자이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지금도 그는 이 잡지의 수석편집장 직함을 갖고 있다.
<런던타임스매거진>은 피임약, 로큰롤과 함께 <플레이보이>를 2차 대전 후 미국의 성문화 기준을 바꾼 계기가 된 세 가지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1970년대까지 최고의 판매부수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플레이보이>와 헤프너는 1980년대 들어 ‘여성의 상품화’를 비난하는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이 거세지고 플레이메이트였던 도로시 스트래튼(1960~1980)이 자살하자 그의 남편이 헤프너를 착취 혐의로 고발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위기를 겪기도 했다.
최근에도 호주의 일간지 <디 에이지>는 <플레이보이>가 판매부수 하락과 주가 하락 등 경영악화로 무료로 열리던 유명인들의 파티 티켓까지 판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고 700만 부에 달하던 판매부수는 현재 260만 부까지 떨어진 상태다.
▲ 마릴린 먼로가 표지 모델인 <플레이보이> 2005년호. | ||
1949년 23세의 청년 헤프너는 대학생이던 동갑내기 밀드레드 윌리엄스(82)와 첫 결혼을 했다. 그런데 결혼식을 코앞에 둔 어느 날 그의 신부는 헤프너에게 그가 군복무를 하는 사이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다고 고백했다. 헤프너는 이때를 ‘일생에서 가장 끔찍한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혼전순결에 대한 의식이 희박한 요즘은 그다지 놀라울 일도 아니지만 1940년대에는 훗날 전설적인 플레이보이가 된 헤프너조차 결혼을 약속한 연인의 외도는 충격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죄책감 때문에 윌리엄스는 결혼 후 헤프너의 외도를 허락했다. 이렇게 외도가 또 다른 외도를 낳은 결혼생활은 10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두 사람은 크리스티와 데이비드 두 자녀를 두었다. 첫 부인과 이혼한 헤프너는 낮에는 잡지 편집과 경영, TV프로그램 진행 등 일에 몰두했으며 밤에는 플레이메이트들의 품에서 안식을 취했다. 그는 70년대에는 한때 양성애를 즐긴 적도 있다고 밝혔다.
한 차례 결혼에 실패한 헤프너는 1989년 두 번째 결혼식을 올려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 그는 이미 세상이 다 아는 플레이보이였으며 신부는 바로 그의 플레이메이트 중의 한 명인 킴벌리 콘라드(46)였다. 역시 10년간 지속된 두 번째 결혼 기간 중에는 천하의 헤프너도 바람기를 끊고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가정에 충실했다고 한다. 그러나 왓츠 교수는 결국 충실한 가장 역할에 지쳐버린 헤프너는 주위사람들에게 “아내 때문에 사는 게 지옥”이라고 호소했다고 책에서 밝혔다.
두 번째 결혼마저 실패하고 세월과 함께 나이가 들어가던 헤프너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준 놀라운 발명품이 등장했다. 72세 생일에 네 명의 미녀와 함께 목욕을 즐기던 헤프너는 비아그라 덕분에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비아그라의 힘으로 새 삶을 살게 된 그는 28개의 방이 딸린 호화저택에서 동시에 7명과 사귀는 등 수많은 플레이메이트들을 교체하며 화려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까지 리얼리티 프로그램 <걸스 온 더 넥스트 도어>에도 출연해 큰 인기를 얻은 세 명의 플레이메이트와 사귀다가 결별한 헤프너는 19세의 쌍둥이 자매 크리스티나와 카리사 셰넌을 새로운 여자 친구로 맞아들였다.
그를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에 관한 책들을 사고 그에 관한 TV프로그램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 조만간 그의 일생을 다룬 영화까지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돈이 많고 유명하고 예쁜 여자들이랑 다니는 당신은 제 우상이에요!” 지난 연말 캘리포니아에서 있었던 <미스터 플레이보이>의 사인회에서 11세의 미국 소년이 헤프너를 향해 던진 말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부와 명성을 쌓고 자유연애를 즐기는 그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성공한 ‘아메리칸 드림’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안에도 나이나 체면 같은 것은 잊은 채 보통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금지된 삶을 떳떳하게 사는 그에 대한 은밀한 질투와 호기심이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온 지금도 영원한 플레이보이는 이렇게 말한다. “젊게 사는 것이 나의 전부다.”
이예준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