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지지자들도 “김정은엔 살~살~” …통합보단 분열 초래, 증시·실업률은 ‘굿’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71)이 대통령에 당선된 지 꼭 1년이 지났다. 지난해 11월 9일, 모두의 예상과 달리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을 따돌리고 승리했던 트럼프는 당시 당선수락 연설을 통해 지지자들을 향해 이렇게 약속했었다. 그동안 갈라졌던 민심을 봉합하고, 자신을 지지했든 안했든 모두를 아우르는 통합의 정치를 펼치겠다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졌던 것. 그렇다면 과연 트럼프는 그 약속을 지켰을까. 그는 정말 모든 미국인들의 대통령이 됐을까.
트럼프 대통령 당선 1주년을 맞아 미 언론들은 앞다퉈 이에 관해 보도하면서 지난 1년간의 성적표를 분석했다. 하지만 내내 바닥을 치고 있는 트럼프의 국정 지지율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지난 1년간 트럼프 정부는 통합보다는 분열을 초래해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지금까지 트위터를 통해 호기롭게 제시했던 공약들 대부분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 또한 부정적으로 비치고 있긴 마찬가지다. 다만 ‘콘크리트 지지층’의 경우에는 여전히 트럼프를 신뢰하고 지지하고 있으며, 이런 믿음은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한중일 3국을 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가 7일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공군 기지에 도착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당선 1주년이 되기 직전 <CNN>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의 국정 지지율은 36%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70년 동안 최저치인 수치다. 다만 지지층의 충성도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트럼프에게 신뢰를 보내고 있으며, 1년 전으로 돌아가도 다시 트럼프를 뽑을 것이라고 응답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트럼프가 당선된 후에도 비록 가계 형편은 특별히 나아진 것이 없지만, 국가 경제는 더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국가안보와 관련해서도 더 안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다만 북한의 김정은을 대할 때만 좀 더 세련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주길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실 막무가내식의 신뢰는 아니다. 증시와 실업률만 봤을 때는 과히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당선 1주년을 맞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증시는 역대 세 번째로 활황을 이루고 있으며, 20~24세의 청년 실업률 또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던 2007년의 실업률을 하회하는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트럼프의 반이민정책이 꼽힌다.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고 이민 정책을 강화하면서 그동안 단순 노동직에 종사했던 불법 이민자들을 미국의 청년들로 대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결론을 도출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실업률은 이미 트럼프가 취임하기 전부터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과연 청년 실업률이 트럼프의 정책에 영향을 받았을까 하는 문제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트럼프 1주년 성적표에 대한 미 언론들의 점수는 썩 좋은 편이 아닌 듯하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당선 1주년을 맞아 “트럼프가 통합보다는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트럼프는 역대 미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트럼프의 당선수락 연설을 듣던 미국인들이 잠시마나 가졌던 기대감이 1년이 지난 후 실망감으로 바뀐 것과 맞물려 있다. 트럼프는 막말을 퍼붓거나 정치 문외한에 가까운 발언을 일삼던 선거 기간 동안의 모습과는 달리 당선 수락 연설을 하면서는 사뭇 온화하고 포용적인 자세를 취했다. 무엇보다도 모든 미국인을 대변하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던 트럼프는 “이제는 미국의 분열된 상처를 봉합할 때이다” “나는 모든 미국인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장담했었다. 하지만 결국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워싱턴포스트>는 평가했다.
트럼프는 선거 운동 당시 자신을 비난했던 인물들의 정부 진입을 차단하거나, 아니면 아예 백악관에서 내쫓아 버렸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는 누군가 자신을 공격하면 과격하게 되갚아주는 경향을 보인다”라고 평했다. 이는 공화당 인사들을 포함해서 언론, 정보당국, 니제르에서 전사한 군인의 미망인, 브로드웨이 뮤지컬 배우, 인종 차별과 경찰 학대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애국가 연주 도중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펼친 미식축구 선수 등 계층과 직업을 망라했다.
이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지지자들도 물론 있다. 트럼프 캠프에서 대학생 인턴으로 일했던 제시 블랑코는 “오히려 나라가 더 분열된 것 같다”고 말했다. 캠퍼스에서도 열띤 토론을 벌이는 학생들은 줄어들었으며, ‘다름’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려는 분위기도 사라졌다고 그는 말했다. 이런 분열은 공화당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안건을 두고 공화당원들 사이에서는 좀처럼 통일된 의견을 도출해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트럼프를 신뢰하고 있는 블랑코는 “트럼프는 매일 대통령직에 대해 새로 배우고 있고, 또 언젠가는 희망적 비전을 실행에 옮길 것”이라고 믿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인 캐럴 키친스 역시 트럼프의 국정 수행 능력에 대해서 다소 실망감을 나타내면서도 “트럼프는 매일 대통령직과 워싱턴 정치를 새롭게 배워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의회를 비난하면서 “민주당과 언론은 트럼프를 헐뜯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기적을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변화를 바랄 뿐이다. 의회는 힘을 합해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USA투데이>는 ‘더 시끄럽고, 더 빨라졌다: 워싱턴이 트럼프를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트럼프가 워싱턴을 변화시켰다’라고 보도했다. 일반적인 경우, 새 대통령은 막대한 의무감과 갑작스레 주어진 통치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부드러운 어법을 사용하거나 오래된 적들에게 손을 내밀면서 국정을 운영하게 마련이다. 적어도 취임 후 한동안은 그렇다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인 현실과 권력의 중심을 인지하면서 공약 내용을 조정하곤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지난 1년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USA투데이>는 말한다. 그 대신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예측 불가능한 혼란을 야기해왔다. 워싱턴이 자신에게 맞춰줄 것을 강요하는 한편, 속도를 가속화하고, 온도를 높이고, 균열을 부추겼다. 다시 말해 ‘더 요란해졌고, 더 빨라졌으며, 더 치열해졌다’는 것이다.
또한 <USA투데이>는 “사실 이런 점에서 트럼프는 퇴임 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색 있는 흔적을 워싱턴에 남긴 셈”이라고 평가했다. 가령 정치학자인 스티븐 시어는 “트럼프의 후임자는 백인 노동자들에게 어필하는 트럼프의 성공적이고 꾸준한 매력과 워싱턴 기득권 세력에 대한 맹렬한 비난, 자신에게 적대적인 주류 언론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시도, 그리고 권력을 강력하게 사용하는 법을 보고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들은 대통령직을 전투 엔진으로 변환시켰다. 앞으로의 대통령들은 틀림없이 이 엔진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가동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트럼프는 공화당을 자신의 이미지에 맞춰 재정의했다. 더 이상 공화당은 자유 무역, 글로벌 리더십을 추구하는 정당이 아니다. 대신 ‘아메리카 퍼스트’를 대변하는 정당이 됐다. 이와 관련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나는 내가 마지막 공화당 대통령이 될까 걱정스럽다”는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취임 후 바뀐 워싱턴 분위기에 대해서 워싱턴 전문가인 윌리엄 갤스톤은 “워싱턴에는 일정한 리듬이 있다. 혼돈의 시기가 있으면, 그 다음에는 비교적 평온한 시기가 찾아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에 들어서면서 이런 리듬은 깨졌다고 그는 말했다. 갤스톤은 “지금은 과부하가 걸린 것 같다. 마치 점점 확대되는 전쟁에서 여섯 시간마다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이런 불확실성과 위기감은 러시아 대선 개입 스캔들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면서 촉발됐으며,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기소 및 사전형량조정 발표로 다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상태다.
한편 <타임>은 ‘트럼프 당선 1년 후, 지지자들은 여전히 그를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로드 애쉬크로포트는 <타임>에 기고한 글을 통해 지난해에 이어 위스콘신과 네바다를 찾아 민심을 살펴본 바, 트럼프 지지자들은 여전히 강력한 신뢰를 표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잘하고 있다” “주식 시장이 활황이 아닌가. 내 주식이 올랐다” “트럼프는 노력하고 있다. 모든 일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라는 등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생각하는 트럼프의 업적으로는 불공정한 규제 철폐, 파리기후협약 탈퇴, 일자리 창출,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등이 있다.
또한 이들은 언론과 기득권 세력이 트럼프를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이기 때문에 연거푸 트럼프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는 바꿔 말해 평범한 시민인 자신들에 대한 공격이라는 것이다. 특히 뮬러 검사의 수사에 대해서는 명백한 ‘마녀 사냥’이라고 규정하면서 워싱턴 지배층이 어떻게든 흠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고 비난했다.
다만 무분별한 트위터 사용에 대해서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 모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너무 과하거나 혹은 어린아이 같다는 것이다. 한 지지자는 “트럼프는 미국의 국가원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사람들을 얕잡아보고, 무시한다. 만일 내 자녀들이 트위터에서 그런다면 부끄러울 것”이라고 말했는가 하면, 또 어떤 지지자는 “트럼프는 공격을 받으면 늘 되받아친다. 천성이다. 이런 성격은 미식축구팀의 쿼터백이나 복서에게 어울리는 성격이다”라고 말했다.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모습을 보고 “마치 놀이터에 있는 열두 살 먹은 꼬마 같다”며 혀를 내두르는 사람도 있다.
더 나아가서 입단속을 주문하는 지지자들도 있다. 미주리주에 거주하는 마지 챈들러는 <USA투데이>를 통해 “다방면에서 변화를 시도하는 모습은 만족스럽다. 하지만 좀 더 대통령다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면서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모르는 것 같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또한 위스콘신주의 프란시스 스메이즐은 “트럼프의 어떤 트윗들을 보면 대체 국정 운영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는가 하면, 아이다호주의 듀앤 그레이는 “좀 더 대통령답게 행동하길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스마트폰을 좀 내려놓고, 필요할 때는 입을 다무는 법을 배웠으면 한다. 트럼프의 입은 그의 최대의 적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수사학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사용하는 표현이나 단어는 모름지기 일반 대중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곧잘 사용하는 차별적인 단어나 표현 때문에 실생활에서 부적절한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과거에는 뒤에 숨어서 몰래 사용했던 단어들을 마치 ‘허가’라도 받은 듯 대놓고 공개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가령 호텔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호텔에서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나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1년 전과 달라졌다. 어떤 손님들은 나에게 대놓고 ‘보이(boy)’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한 심지어 상사까지 ‘흑인 소년(black boy)’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또 다른 남성은 “마치 50년대나 60년대로 돌아간 것 같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과연 1년 전 트럼프가 구상했던 미국의 모습은 정확히 어떤 것이었을까. 그가 말했던 것처럼 진정 ‘통합의 미국’이었을까. 1년이 지난 현재 미국의 모습을 보면 그 진정성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미 언론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