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으로 일군 회사 드디어 ‘’탈‘’ 났다
▲ 내 돈 내놔 미국 스탠퍼드 은행이 80억 달러 규모의 금융사기로 고발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카리브해 안티과 섬의 스탠퍼드 은행을 찾은 고객들. AP/연합뉴스 | ||
그는 카리브해의 섬나라 안티과에 위치한 자회사인 ‘스탠퍼드 인터내셔널 뱅크(SIB)’를 통해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자들에게 80억 달러(약 12조 원)의 양도성예금증서(CD)를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이번 사건에는 정치인, 스포츠 스타, 영국 왕실 등 유명인사들도 대거 연루되어 있어 더욱 충격을 안겨 주고 있다.
스탠퍼드는 거짓말도 아주 통 크게 하는 배짱 두둑한 사기꾼이었다. 그의 거짓말은 비단 투자자들에게 수익률을 속이고 투자금을 끌어 모으는 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회사의 이력이나 직원 수 혹은 자신의 출생 신분까지 그럴듯하게 속여왔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번에 터진 금융사기는 어쩌면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는 1990년대부터 투자자들에게 “매년 최대 10% 이상의 고수익을 보장해주겠다”고 말하면서 SIB은행이 발행하는 CD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자금은 안정적이고 유동성이 좋은 금융상품에 재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1994년 이후 수익률은 연 10%를 넘지 못했고, 대부분은 부동산이나 사모펀드에 투자됐다.
또한 스탠퍼드 그룹의 한 계열 은행은 메이도프 펀드에 투자했다가 40만 달러(약 6억 원)를 잃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메이도프 사건이 터진 후 “우리는 절대로 메이도프에 투자하지 않았다”며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던 것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사정이 이렇자 금융사기뿐만 아니라 스탠퍼드 그룹 자체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의혹이 커지고 있다. 스탠퍼드 그룹의 웹페이지에서 그는 “우리 회사는 70년 전통의 회사다. 1932년 경제공황이 한창일 때 조부인 로디스 스탠퍼드가 텍사스에 ‘스탠퍼드 보험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내가 이 회사를 물려받았다”고 소개하고 있다.
▲ 앨런 스탠퍼드 회장 | ||
또한 웹페이지에서 그는 “자사에는 믿을 만한 애널리스트 스무 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스탠퍼드 본인과 베일러 대학 동창인 제임스 데이비스 단 둘이서 자산을 운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거짓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스탠퍼드’라는 자신의 이름을 이용해서 “나는 스탠퍼드 대학을 설립한 리랜드 스탠퍼드의 친척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회사 로고도 스탠퍼드 대학과 비슷하게 바꾸었다. 하지만 스탠퍼드 대학 측은 “전혀 확인된 바가 없다”고 말하면서 지난해 10월 스탠퍼드 그룹을 상표권 침해로 고소했다.
또한 ‘크리켓광’으로 알려진 그는 안티과 섬의 크리켓 팀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한편 “나는 젊은 시절 꽤 유명한 크리켓 선수였다”고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가 크리켓 선수로 활동한 사실은 입증된 바 없다.
그럼에도 그의 크리켓 사랑은 그가 안티과 섬에서 정착하고 성공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어쩌면 뛰어난 사업수완보다도 크리켓에 대한 열정 때문에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 가운데 하나인 크리켓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던 그는 지난해에는 상금 2000만 달러(약 300억 원)를 걸고 손수 크리켓 국제대회를 개최해서 호응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이런 저런 구설에 시달리기도 했다. 당시 대형 투명 상자 안에 보란 듯이 담겨 있던 현금 2000만 달러가 사실은 ‘쇼’였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말하자면 상자의 크기를 고려해 볼 때 상자 속의 돈은 다 합쳐봐야 고작 10만 달러(약 1억 5000만 원)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관중석에서 크리켓 선수의 부인들에 둘러싸여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생방송 화면에 잡히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그는 한 여성을 무릎에 앉힌 채 웃고 떠들면서 경기를 관람해 보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 크리켓 선수들의 부인들에게 둘러싸여 경기를 관람하는 스탠퍼드. 이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 ||
처음 그가 안티과 섬에 정착한 것은 1990년대 초였다. 당시 경영난을 겪고 있던 ‘뱅크 오브 안티과’ 은행을 인수한 후부터 그의 사업은 번창하기 시작했다. 수년 안에 스탠퍼드 그룹은 자산 400억 달러(약 60조 원)의 지역 내 최대 금융회사로 성장했다.
그의 은행은 남미의 투자금을 끌어 모으는 기지 역할을 했으며, 섬 구석구석 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는 이렇게 번 돈으로 안티과 항공사, 신문사, 레스토랑, 복합주거단지, 크리켓 경기장 등을 사들였으며, 때문에 일부에서는 안티과 섬을 아예 ‘스탠퍼드 섬’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백팔십도 달라졌다. 현재 스탠퍼드 은행 앞에는 예금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으며, 모두들 “같이 망할 순 없다. 망하려거든 혼자 망해라”고 말하며 아우성들이다.
그렇다면 스탠퍼드의 자산은 얼마나 될까. 지난해 <포브스>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그의 순자산은 22억 달러(약 3조 3000억 원)며 현재 세계 205위의 갑부다. 억만장자답게 그의 호화로운 생활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 정도로 유명했다. 개인 제트기는 물론, 헬리콥터와 대형 요트도 여러 채 소유하고 있었으며, 종종 요트 안에서 요리사와 가정부를 거느리고 며칠을 생활하기도 했다. 또한 휴스턴에 위치한 그룹 본사에는 특급 주방장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었으며 늘 값비싼 와인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5년에는 15만 달러(약 2억 2000만 원)를 주고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을 초빙해서 직원 연설을 맡기기도 했다. 하지만 파월 측은 “연설을 한 건 맞지만 액수는 달랐다”고 해명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