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연패, 1할 승률, 1년에 3승 등 각종 진기록…‘선수가 포기하지 않으면 팬도 포기 안한다’
지난 7일 서울 SK 나이츠 전에서 승리하지 못한 부산 KT 소닉붐 선수들(흰색 유니폼). 연합뉴스
[일요신문]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가 2라운드로 접어든 가운데 부산 KT 소닉붐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부산 KT는 16일 현재 2승 11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승률 15.3%의 심각한 부진입니다. 9개 구단과 모두 1경기씩을 치렀고 두 번째 대결이 진행 중인 현재까지도 단 2승만을 거뒀습니다. 선두와의 게임차도 리그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9게임으로 벌어진 상황입니다.
KT는 지난 10월 30일 신인 드래프트에서 1, 2순위를 모두 손에 넣었습니다. 최고 유망주로 손꼽히는 허훈과 양홍석을 독차지했습니다. 이들 중 특히 허훈은 신인답지 않은 기량을 선보이며 화제가 되고 있지만 KT의 부진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15일 울산 모비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어렵사리 6연패를 끊었지만, 갈길은 너무나 멀어보입니다.
# KT의 연패와 ‘대구 동양’의 추억
일부 농구팬들은 최근 KT를 바라보며 과거 한 팀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바로 1998-1999 시즌의 대구 동양 오리온스(현재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입니다. 이들은 전무후무한 32연패 기록, 시즌 3승 42패(승률 6.8%)를 기록했습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구단 역사를 소개하는 코너에서도 1999년은 제외돼 있습니다.
1997년 출범한 프로농구에서 동양은 처음부터 약팀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김병철과 전희철이라는 농구대잔치 스타를 보유해 4강에 오르기도 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1998-1999 시즌을 앞두고 두 스타가 입대해 전력에 공백이 생겼습니다. 동양은 외국인 선수로 최고의 센터라는 평가를 받던 그레그 콜버트를 영입했습니다. 콜버트는 시즌 초반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돌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콜버트가 8경기만을 소화하고 팀을 무단이탈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유는 그의 부인과 친구의 ‘바람’이었습니다. 동양은 이 시즌 거둔 3승 중 2승을 콜버트와 함께했습니다.
농구대잔치 분위기가 이어져 프로농구 인기가 높던 당시, 동양의 연패는 큰 화제가 됐습니다. 연일 뉴스에서 그들의 패배 소식이 나왔고 언제까지 기록이 지속될지 관심이 높았습니다. 이들은 32번째 패배 끝에 연패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스틸컷
프로야구 역사에선 약체의 대명사로 불리는 팀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영화 소재로도 다뤄졌던 삼미 슈퍼스타즈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으로 재구성돼 지난 2004년 개봉한 바 있습니다.
삼미는 팀 전체 역사인 4년간 당시 6구단 체제의 프로야구에서 최하위인 6위만 3회를 기록했습니다. 삼미의 맥을 이은 청보 핀토스도 꾸준히 하위권을 맴돌았지만 삼미가 ‘꼴찌의 대명사’가 된 이유는 기록에 있습니다. 삼미는 창단 첫해 80경기에서 15승 65패, 승률 0.188로 프로야구 역사 유일의 ‘1할 승률팀’으로 남아있습니다. 최다 연패 기록인 18연패도 삼미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 30경기서 단 3승 거둔 강원 FC
최악의 부진을 면치 못했던 2011년의 강원fc 경기 모습. 사진=연합뉴스
프로축구 도민구단 강원 FC는 이번 시즌 최고의 한해를 보냈습니다. 최다 승점, 최다 득점 등 역대 기록을 대거 갈아치웠습니다.
이들에게도 어두운 과거는 존재합니다. 지난 2011시즌 30경기를 치러 단 3승만 거둔 전력이 있습니다. 시즌 첫 승을 개막 3개월만인 6월에서야 기록할 수 있습니다. 그마저도 상대 자책골 덕분이었습니다.
부정적 의미에서 ‘기록 제조기’이기도 했습니다. 부실한 수비에 최단기간 해트트릭(18분), 한 경기 3골 3도움 등 각종 진기록을 상대에 헌납했습니다.
# 드래프트 때문에…이어지는 ‘탱킹’ 논란
하지만 꼴찌 탈출을 위해 사력을 다했던 이들과 달리 일부 종목에서는 종종 고의로 순위를 낮추려는 노력(?)을 하는 팀이 있습니다. 이 같은 행위를 ‘탱킹’이라 부르는데, 주로 드래프트 제도가 있는 종목에서 이뤄집니다. 낮은 순위를 기록하면 다음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높은 순위의 지명권을 받을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미국 NBA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가 대표적인 ‘탱킹’팀입니다. 지난 2013-2014 시즌에는 28연패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하마터면 동양의 기록을 갈아치울 뻔 했습니다. 이들은 지난 2013년부터 NBA 동부 컨퍼런스 15개 팀 중 14-14-15-14라는 순위를 찍어왔습니다. 같은 기간 꾸준히 유망주를 품을 수 있었습니다.
‘탱킹’은 국내에도 다양한 종목에서 존재합니다. 낮은 순위가 의심스러운 팀을 대상으로 종종 탱킹 논란이 일어왔고 각 종목 단체들은 다양한 장치로 탱킹을 막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로농구 최하위 KT에 나란히 지명된 신인 허훈(오른쪽)과 양홍석. 연합뉴스
‘각본 없는 드라마’로 불리는 스포츠에는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습니다. 앞서 언급된 약팀 동양, 삼미, 강원은 부진을 딛고 화려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동양은 32연패와 함께 암흑기를 겪은 이후인 2001-2002 시즌에는 김승현-마르커스 힉스 콤비를 앞세워 프로농구를 제패하기도 했습니다.
삼미는 4년간의 팀 역사 중 유일하게 꼴찌를 면한 1983년에는 전·후기 리그 모두 2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비록 삼미라는 이름은 아니지만 이후 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로 이어지는 역사에서는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강원FC는 2011년 3승 이후 2013년에는 강등을 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올시즌 승격 이후 전성기를 달리고 있습니다.
KT는 꾸준히 연패 탈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허훈, 양홍석 두 영건의 합류도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부산 사직체육관에 내걸린 팬들의 응원 문구. 사진=KT 팬페이지
부산 KT 홈경기장인 사직실내체육관에는 ‘선수가 포기하지 않으면 팬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현수막이 내걸렸습니다. 부산 KT도 동양, 삼미, 강원처럼 아픔을 극복하고 지난 2011년 정규리그 우승을 기록했던 화려한 역사를 되풀이하길 기대해봅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