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노예’ 뒤엔 지극한 모성이...
▲ 리얼리티 쇼에 출연해 스타덤에 올랐던 제이드 구디가 지난 3월 숨을 거뒀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카메라에 ‘인생’을 담았다. | ||
12년 전 다이애나비의 장례식을 연상하게 하는 이 광경은 공주도 팝스타도 유명 종교인도 아닌 한 젊은 여성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렬이었다.영국의 TV방송인 제이드 구디(1981~2009)는 2002년 영국의 공영방송 채널4의 리얼리티 쇼 <빅브라더>에 출연한 계기로 유명세를 얻었다.
치과 간호사로 일하던 평범한 스무 살 여성에서 일약 스타가 된 구디는 방송진행자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출연자로 활약하며 2권의 자서전과 자신의 이름을 딴 향수를 내놔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그러나 이렇게 인생의 복권에 당첨된 듯했던 그녀는 2008년 8월 자궁경부암을 선고받고 투병해오다 결국 지난 3월 22일 새벽 남편과 두 아들을 남긴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녀의 나이 겨우 27세였다. 한창 피어오르던 젊은 TV스타의 죽음에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구디는 삶과 죽음 모두에서 용기 있는 여성이었다”라며 추모했고 데이비드와 빅토리아 베컴 부부는 화환을 보내 애도의 뜻을 표했다. 그리고 영국 언론들은 물론 미국 CNN을 비롯해 호주 유럽 인도 등 세계 언론들이 일제히 그녀의 부고를 전하며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일부 언론들은 어린 두 아들을 두고 요절한 점에서 그녀를 고 다이애나 비에 빗대 ‘서민공주’라고 칭했고 그녀의 장례식 진행상황을 분 단위로 전했다. 다른 유명인들의 죽음과 달리 구디의 사망 소식과 관련해 유난히 관심을 끈 것은 바로 건강에 대한 파급효과였다.
그녀의 자궁경부암 투병과정이 생생하게 TV로 중계되면서 영국 20대 여성들의 자궁경부암 검사가 급격히 늘어났으며 학교에서는 10대 소녀들이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 주사를 맞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자궁경부암은 전 세계적으로 여성에게 발병하는 암 중 두 번째로 흔하다. 하지만 조기 발견할 경우 80% 이상 완치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진행이 된 상태라도 다른 암에 비해 완치율이 높아 검진을 통해 예방과 치료 효과가 높다.
▲ 두 아들 바비(오른쪽), 프레디와 함께. | ||
많은 이들은 구디의 죽음이 암에 대한 경각심뿐 아니라 다양한 면에서 자신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고 있다. 한때 방송에서 구디로부터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듣고 그녀와 언쟁을 벌였던 인도의 영화배우 실파 세티(33)는 TV토크쇼에 출연해 “오늘날 자신의 국제적인 명성은 구디의 덕이 크다”며 “그녀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세티는 그 사건 이후 구디와 친구와 됐고 숨지기 이틀 전 그녀의 병상을 찾았다는 사실도 덧붙였다.영국의 여성 방송인 커스티 갤러처(33)는 구디의 죽음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며 하지만 구디 덕분에 인생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출산 후 찾아온 갑상선염 때문에 몸무게가 급격히 줄며 머리칼이 빠지고 잦은 피로감에 시달리는 등 매우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하면서 그러나 구디의 투병과 죽음을 보며 여유롭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 수 있게 됐다며 구디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이처럼 그녀의 투병과 임종에 이르는 7개월간 뜨거운 관심을 보여온 영국 언론과 대중이 그녀에게 늘 호의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사실 그녀를 유명하게 한 것은 ‘끊임없는 논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구디는 그간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행동으로 대중의 지지와 비난을 동시에 받아온 ‘가십메이커’였다.
▲ 제이드의 죽음을 추모하는 사람들. | ||
그러나 무엇보다 그녀는 2007년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된 인종차별 발언으로 오명을 얻었다. <빅브라더> 방송 중 그녀는 인도 전통대로 손으로 식사하는 인도 여배우 세티를 비웃으며 ‘밥 먹던 손으로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른다’, ‘역겹다’는 등 발언을 해 인도인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고 이후 한동안 각종 매체에 출연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해명과 사과를 거듭해야 했다.
그녀의 친구는 이 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구디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인이라고 말할 만큼 당시 영국 언론과 대중은 구디를 맹공격했다. 논란은 마지막까지도 끊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투병과정과 임종에 이르는 순간의 촬영권을 방송사와 잡지사에 독점 제공하는 조건으로 거액의 계약을 맺으며 ‘죽음의 상품화’라는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렇게 27년간의 짧은 생을 마감한 ‘서민공주’ 구디. 그녀는 마약중독과 상습적인 범죄자인 아버지가 약물과다로 사망하고 16세에 자궁근종을 발견한 이후 연이어 난소암과 결장암 진단을 받는 등 ‘공주’와는 거리가 먼 불우하고 고된 인생을 살았다. 이렇게 평균 이하의 배경에, 화려한 미모도 출중한 언변도 없이 단시간에 TV스타도 날아올랐다가 갑자기 사라져간 구디의 드라마 같은 삶은 향후 몇 권의 책과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한편 ‘인간 구디’는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다. 그녀는 임종 한 달 전 극심한 고통 속에 연인 잭 트위드(22)와의 결혼식을 강행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돈의 노예’란 비난을 감수하며 두 아들 바비(5)와 프레디(4)에게 가능한 많은 유산을 남겨주고자 애썼다. 그녀는 모두 800만 파운드(약 155억 원)를 유산으로 남겼다.
이예준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