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자 “전 재산을 털어서 산 첫 차인데 너무 황당”...판매소는 교환 및 환불에 부정적 반응
(위)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 2017이미지 (아래)프로펠러샤프트에 녹이 슬면 파손의 위험이 높아진다. 제보자 제공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의 비중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차에 비해 다양한 선택의 폭을 가지고 있고, 남들에게 과시할 수 있다는 매력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편없는 서비스와 안일한 대처로 소비자들의 불만도 항상 자연스레 따라온다.
황 아무개 씨(30)는 지난 9월 13일 ‘2017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 럭셔리(HSE LUXURY)’를 구매했다. 7000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부담이 됐지만, ‘9월 프로모션’과 지인 할인 등을 받으며 700만 원의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하며 차량을 구매했다.
그는 9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차를 타기 시작했는데, 어느날 부터 이 차를 타면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4륜구동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차체가 지나치게 많이 흔들리는 듯한 증상을 느낀 것이다. 찝찝한 느낌에 차를 유심히 살펴보던 황 씨는 라디에이터 그릴에서 ‘단차(부품 결합이 어긋나 필요 이상의 공간이 생기는 것)’를 발견했다.
(좌)검은색이어야 하는 엔진언더커버 안쪽 면이 누유된 엔진오일과 흙먼지로 뒤덮여 색이 변했다. (우)녹이 슨 등속조인트 / 사진= 제보자 제공
마침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며 정비 일을 하던 황 씨는 자신의 차 상태를 직접 점검했는데, 차의 보닛을 열고 그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엔진과 부품들 위에 먼지가 가득 쌓이고 잔뜩 녹이 슨 상태였기 때문이다. 주행거리가 1500㎞밖에 안 된 차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녹으로 뒤덮인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정비소 정비 리프트에 차량을 올려 차 하부를 봐도 상황은 똑같았다. 금색을 띠어야 하는 제너레이터(발전기) 금속 코일은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고, 엔진 오일은 이미 누유되고 있던 상태였다. 인수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차에 ‘녹’에 ‘먼지’까지 발견된 것이다. 황 씨는 “(차에 이상을 발견한 뒤부터) 잠도 못 자고 힘들다. 전 재산을 털어서 산 첫 차인데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난다”고 심정을 밝혔다.
이 차를 더이상 탈 수 없다고 판단했던 황 씨는 차를 구매했던 재규어-랜드로버 공식 판매소인 ‘선진모터스’에 해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선진모터스 측은 “구매는 ‘세일즈’인 판매장에서 하더라도, 사후처리는 ‘애프터세일즈’인 고객센터에서 한다”며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밝혔다.
서비스 센터 담당자는 “상황에 따라서 (해당 차를 신차로) 교환해줄 수도 있지만, (고객이) 원한다고 다 해주지는 않는다”며 “(마지막으로 차를 점검한 것까지) 봤을 땐 교환을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 담당자는 이어 “교환 여부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고객에게) 할 수 있는 건 해주지만, 안 되는 것 까지 다 해줄 수는 없다”며 “(이와는) 비슷한 사례가 없었지만, 있었다 하더라도 고객이 (상황을) 수긍하고 (수리한 뒤) 탔을 것”이라고 교환 처리에 선을 그었다.
결국 판매소인 선진모터스는 차량을 판매만 할 뿐 차량의 품질이나 대응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며, 고객 서비스 센터는 교환 및 환불에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친 셈이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랜드로버코리아 측은 “대부분의 수입차들은 해외에서 배를 통해 수입되다보니 그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녹은 일반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면서 “(녹의 정도가 많고 적은 것은) 주관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사측은 “이런 일로 고객에게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서는 매우 유감이고 죄송하다. 고객님이 만족할만한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좌)엔진오일이 누유돼 엔진과 미션 위치에 맺혀 있다. (우)헤드라이트커넥터 배선에 흙먼지가 잔뜩 쌓여 있다. / 사진= 제보자 제공
그렇다면 황 씨의 차량은 어느 정도의 상태일까. 서비스 센터에서 말 하듯 정말로 간단한 수리만으로 차를 계속 유지하고 탈 수 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박병일 자동차 명장에게 자문을 구했다.
차의 상태를 살펴본 박 명장은 “차를 수리할 때 볼트가 풀리지 않을 정도로 녹이 많이 끼어 있다”면서 “지금 당장 (차량 운행에) 문제가 생기지 않더라도 이정도면 부식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미 차에 녹이 슬어서 다른 차에 비해 부식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성능도 더 빠르게 떨어질 것”이라며 “이런 차는 팔아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황 씨는 “나의 직업이 자동차정비업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발견할 수 있었지 다른 일반 고객들이나 차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차 전체에 녹이 슨 것을 인지할 수 있겠냐”면서 “보이는 외관만 그럴듯하게 닦아서 소비자를 판매하는 이런 사태는 더이상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같이 글로벌 수입차 기업들의 한국 고객을 대상으로 한 ‘배째라 운영’은 하루 이틀 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6년 폭스바겐과 2017년 메르세데스-벤츠의 배출가스 조작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수입차 기업에게 대한민국이란 ‘호갱(호구+고객의 합성어)’일 뿐이다.
수입차 업체의 ‘나몰라라’ 식의 서비스에 분노한 소비자가 차를 부수고 있다. 사진= 광주MBC 뉴스 캡쳐
지난 2015년 9월에는 수입차 업체들의 안일한 서비스 대응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 있었다. 한 30대 남성이 광주시의 한 벤츠 대리점 앞에서 골프채를 이용해 벤츠 세단을 수십차례 내려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이 남성은 “구입한 지 1년 정도밖에 안 된 자신의 차가 주행 도중 수시로 시동이 꺼져 죽을 뻔했다”며 환불 또는 교환을 요청했지만, 벤츠 서비스센터 측에서 이를 거부해 이같은 행동을 했다고 밝혔다.
그의 극단적인 행동으로 사회적 관심은 ‘수입차 갑질’에 쏠렸고, 벤츠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결국 비판에 등 떠밀린 벤츠 측이 뒤늦게 부랴부랴 신차로 교환을 해준 이 사태는 ‘거만한 수입차’와 ‘오만한 서비스’가 빚어낸 촌극, 아니 참극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수입차의 서비스 대응 수준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23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수입차에 대한 불만으로 인한 피해구제 신청 건수는 2014년 210건, 2015년 236건, 2016년 291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소비자가 자신이 구매한 수입차로부터 피해를 입는다 하더라도 이를 해결할 만한 법적 근거도 없는 실정이다. 사실 공정거래위원회의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라 한국소비자원이 조정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단순 권고사항일 뿐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팔면 그만’이라는 식의 ‘안하무인’ 태도에 한국 고객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에서 이를 방지할 법적 제도가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