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육성 시스템 속 사생활·욕망 억압당해…인기 오를수록 삶의 공간은 줄어들어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 종현이 18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필자와 전화통화를 나눈 한 아이돌 그룹 멤버는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의 행동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런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범하도록 종현을 궁지로 몰았던 상황과 심정만큼은 충분히 공감한다는 의미였다.
심지어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종현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한국에서 아이돌 가수들은 소속사의 엄격한 관리를 받는다”며 “종종 터무니없이 높은 수준의 행동 규범을 요구받으며, 소셜 미디어 댓글을 통해 신랄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한류의 주체이자 K-팝으로 전세계를 호령하는 아이돌 스타들, 과연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룹 샤이니 종현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 연예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한 지인은 한국의 아이돌 가수들을 공장식 양계장에 비유한 적이 있다. 하루라도 빨리 자라서 고품질 달걀을 생산하도록 작은 우리 안에 가둬 놓고 키우는 닭에게는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이처럼 아이돌 가수들 역시 소속사의 규제 아래에서 철저히 자신의 욕구를 억누를 수밖에 없다.
통상 연습생 생활은 10대부터 시작된다. 호기심도 많고,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은 열망이 가장 강할 때다. 또한 친구들 사이에서 사회성을 기르고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해가야 하는 시기다.
하지만 연습생들은 통제된 생활을 한다. 데뷔 전 모습이 데뷔 후에 고스란히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몇몇 아이돌 가수들이 데뷔 전 행동 때문에 소위 ‘일진설’에 휩싸이며 나락으로 떨어진 예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래서 SNS에 글 하나, 사진 하나 올리기도 쉽지 않다. 데뷔 직후에는 아예 휴대폰 사용을 금하는 기획사도 있다. 지인들과 사소하게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하나가 공론화되면 수억 원을 들여 키운 그룹 하나가 순식간에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는 박탈당한다.
데뷔 전후 20대가 돼도 그들은 성인으로서 당연히 분출해야 할 욕구를 눌러야 한다.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어렵고, 술자리도 가려야 한다. 가장 큰 난제는 이성 문제다.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지만 누군가를 마음껏 만나고 사랑을 나눌 수도 없다. 오로지 그룹 활동에 매진하고 “제가 사랑하는 것은 팬 여러분”이라고 외치는 게 그들에게 주어진 숙명이자 의무다.
# 왜 아이돌 문화는 한국에만 있을까?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최근 20년 사이 급속도로 성창했다. 그 중심에는 아이돌이 있다. 종현이 속했던 샤이니를 비롯해 빅뱅, 방탄소년단을 보며 아시아를 넘어 미주, 유럽, 중동 여성들도 환호한다. 이들의 인기는 ‘서양 여성은 동양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통설을 단박에 깨버렸다.
서양인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키와 비율, 그리고 놀라운 춤사위와 가창력은 전세계 여성들을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그렇다면 더 좋은 신체조건을 가진 서양에서는 왜 이런 그룹을 만들지 못할까?
바로 여기서 한국 아이돌 가수 트레이닝 과정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한 중견 가요기획사 대표는 “해외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이 한국식 아이돌을 양성하기 위해 자문을 구할 때가 있는데 그 과정을 들은 후 대부분 ‘임파서블’(불가능)이라고 포기한다”며 “서양의 경우, 한국처럼 아이돌 가수를 양성하기 위해 개인적인 삶을 통제하며 집단 숙소 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하더라. 이 자체가 인권을 유린하고 사생활을 침해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초등학생들이 장래희망으로 ‘연예인’을 적어 내는 한국 현실 상 적잖은 10대들이 아이돌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 하에 자신의 소중한 사생활을 포기한 채 고통 받는다.
# 인기와 바꾼 삶, 사방이 감시자다
평소 종현과 친분이 있던 그룹 디어클라우드 멤버 나인은 19일 자신의 SNS에 “종현이 본인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이 글을 꼭 직접 올려달라고 부탁했다”며 “이런 날이 오지 않길 바랐는데 가족과 상의 끝에 그의 유언에 따라 유서를 올린다”는 글을 게재했다.
종현은 유서 속에 “난 속에서부터 고장났다.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 없었다. 막히는 숨을 틔울 수 없다면 차라리 멈추는 게 나아”라며 “왜 죽으냐 물으면 지쳤다 하겠다”고 토로했다.
샤이니 종현이 청담동 레지던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18일 오후 건국대학교병원 앞을 찾은 팬들이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종현이 우울증으로 고통 받았다는 단적인 증거다. 많은 아이돌 가수들이 종현과 비슷한 고통을 호소한다. 그래서 요즘 대형기획사들은 주기적으로 전문가를 불러 소속 연예인들의 상담 치료를 진행한다.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다. 하지만 연예인으로 살아가는 한 그들이 가진 불안의 근원은 치유되기 어렵다.
게다가 스마트폰과 SNS의 발달은 아이돌의 설 자리를 더 좁게 만들었다. 어딜 가도 그들을 찍는 휴대폰 사진기가 난무하고, SNS에서는 작은 발언 하나까지 도마에 오른다. 인기가 오르고 주목을 받을수록 자신의 삶의 공간은 줄어드는 아이러니가 계속된다.
또 다른 가요기획사 대표는 “인기가 상승하면 그로 인한 삶의 자유가 사라지고, 인기가 하락하면 그 자체로 엄청난 스트레스”라며 “스타의 무대 위 모습과 무대 밖 사생활을 구분 짓지 않는 한국의 문화가 지속되는 한, 현재 아이돌 가수들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상처는 치유될 수 없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