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캐스트 주가조작 수사기록 빼돌린 수사관 구속, 검사들도 수사 대상 거론…법조계 “올 것이 왔다”
하지만 지난달 말, 서울고검이 대표적인 국내 대형 로펌인 A 법무법인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를 건네받는 형식의 압수수색이었지만, 변호사 업계에서는 ‘도를 넘은 검찰 관리와 전관을 활용한 사건 개입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검찰이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A 법무법인에 들이닥친 것은 지난해 말. 지난해 초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에서 수사한 주가조작 기업사건에서 A 법무법인이 불법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검찰이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는지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 계기는 수사관 비리에서부터였다. 앞서 서울고검은 제보를 토대로 서울남부지검 소속 6급 수사관 박 아무개 씨를 금품 수수 혐의 등으로 체포, 구속했다. 서울고검은 남부지검에서 수사하던 홈캐스트 관련 사건을 맡았던 당시 합수단 소속 수사관 박 씨가 일부 수사 기록을 빼돌리는 대가로 금품을 받아 챙겼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A 법무법인의 불법적인 사건 개입 정황도 드러났다. 그래서 박 씨를 구속한 직후, 검찰이 A 법무법인도 수사 대상에 올렸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구체적인 압수수색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발단이 된 ‘홈캐스트 주가조작 사건’을 먼저 짚어봐야 한다. 홈캐스트 전 대표이사 신 아무개 씨 등이 ‘황우석 박사가 투자했다’는 헛소문을 퍼뜨려 260억 원 대의 부당이득을 챙긴 사건이다.
홈캐스트 사건 관련 황우석 박사가 주가조작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증거는 검찰 수사 결과 발견되지 않았다. 일요신문DB
주가 조작에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큰손인 원영식 W홀딩컴퍼니 회장도 개입했다. 원 회장은 유상 증자 방식으로 홈캐스트 지분을 확보한 뒤, 신 씨 등과 공모해 주가를 조작해 수십억 원대 수익을 본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원 회장은 호락호락 검찰 수사에 응하지 않았다. 검찰의 눈을 피해 잠적했다. 검찰을 피해 숨어 있던 원 회장은 변호인을 통해 자진 출석 의사를 밝힌 뒤, 잠적 20일 만에 서울남부지검에 출석해 체포됐다.
문제는 통상 도주의 우려가 있는 피의자의 경우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원 회장은 구속을 당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핵심 관계자 중 원 회장만 불구속 기소 처분을 받았다(1심에서 원 회장은 검찰로부터 징역 4년을 구형받은 상황이다).
그리고 당시 원 회장을 변호했던 변호인단에는 A 법무법인도 있었는데, A 법무법인은 수사관·검사 등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건 진행 상황과 판단에 불법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홈캐스트 사건과 관련해 원 회장이 주가 조작 핵심 관계자로 관여했었는데 A 법무법인이 원 회장을 변호하면서 정상적으로 선임계를 내지 않았고 핵심들 중에는 유일하게 원 씨만 구속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A 법인이 뒤에서만 전화 변론 등을 했다는 것.
그는 “A 법무법인이 수사관뿐 아니라, 수사팀 핵심들에게도 선임계도 없는 상태에서 사건에 깊숙하게 관여했다고 들었다”며 “계장의 단순 비리로 수사가 시작됐지만, 최악의 경우 검사들 일부가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현재 검찰 수사 대상으로는 당시 수사팀 검사를 비롯, 검사장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해당 검사장은 “일각에서 도는 얘기는 모두 사실무근”이라면서도 원 회장을 구속 기소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대검 감찰 파트에 물어보시라, 나는 말을 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말을 아꼈다.
수사라인까지 수사가 확대될 분위기에 대해 법조계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대형 법무법인들이 수사관들을 지나치게 관리하던 게 탈이 났다는 것. 대형로펌 소속 검사 출신 변호사는 “일부 로펌들의 경우 수사관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현직 검찰 수사관들을 관리하며 정보를 빼돌린다”며 “검사들이 전보다 조심하다보니 수사관을 통해 수사 정도나 방향을 알아채곤 하는데 이번에는 그게 과했던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몇몇 대형 법무법인은 수사관들이 흘려준 ‘내사 정보’를 토대로, 대기업 등 내사 당사자에게 찾아가 “검찰 내사를 받고 있다. 우리를 선임하면 철저하게 준비해 주겠다”고 제안해 거액의 거래를 성사시키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앞선 변호사는 “결국 이번 사건이 대형 로펌이 수사관에게 밥과 술을 사주며 관리했던 것이 탈이 난 사건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검사장까지 거론되고 있지 않냐, 대검찰청 수사 의지에 따라 대형 법무법인의 도 넘은 검사·수사관 관리가 큰 논란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
[단독] 대형로펌, 범죄 직접 개입 의혹도 검찰, 롯데 수사 때 율촌 압수수색 하려다가 ‘절반의 성공’ 그쳐 대형 법무법인 압수수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기업들이 범죄 혐의를 피하기 위해, 미리 법무법인과 손 잡고 ‘범죄 은닉’까지 나서는 분위기가 팽배하기 때문. 하지만 수사는 쉽지 않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수부 3곳을 동원해 롯데그룹 수사에 한창이던 2016년 중순. 당시 수사팀은 은밀하게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법무법인 율촌을 찾았다. 율촌이 신동빈 회장 등의 탈세에 개입했다는 정황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검찰은 롯데그룹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 직전, 율촌 소속 변호사 윤 아무개 씨와 회계사 마 아무개 씨가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의 법률 자문을 도운 과정을 주목했다. 심지어 마 씨는 신 총괄회장이 차명주식을 페이퍼컴퍼니에 이전할 수 있도록 홍콩법인과 싱가포르법인 등 해외법인 설립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법무법인 율촌이 어느 정도 깊숙이 관여했는지 확인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압수수색은 쉽지 않았다. 율촌이 피의자에 대한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며, 법을 내세워 압수수색을 거부한 것. 수사팀 역시 ‘공익에 필요할 경우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몇 시간에 걸친 실랑이 끝에, 핵심 정보가 아닌 주변 자료들만 겨우 받아올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법조계에서는 ‘변호사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면서, 돈을 벌기 위해 대형 로펌들마저도 ‘법조인 윤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검사는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죄를 지은 피의자에게는 ‘잘못했으니 최선은 어떤 전략을 준비해 어느 정도의 형사 처벌을 받는 것이다’라고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 일부 대형 로펌이 ‘무조건 의뢰인이 옳습니다, 의뢰인 말씀대로 무죄를 만들어 내겠습니다’라는 스탠스로 접근해 사건을 수주하다보니 경쟁이 치열해지고 자연스레 윤리 의식이 갈수록 낮아지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