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움직임 가능성...“인선자문위원 도입? 되레 ‘옥상옥’ 우려”
사외이사제도는 대주주와 관련 없는 외부 인사를 이사회에 참가시켜 대주주의 회사 내 독단적 경영과 전횡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취지를 갖는다. 특히 일반 기업과 달리 공공성이 강조되는 금융기관의 경우 비판과 감시의 기능을 담당하는 사외이사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하지만 그동안 금융지주사 사외이사 중 상당수는 CEO의 입김이 작용한 인물로 비판·감시의 역할 대신 CEO의 거수기를 자처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금융지주사의 사외이사 선발 과정이 개선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특히 조만간 금융감독원이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 운영 실태를 검사할 것으로 알려지며 사외이사제도가 전반적으로 변화를 맞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오는 15일 정도에 금융당국에서 검사가 나온다는 얘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이번 금융당국의 검사는 상당수 사외이사의 임기가 곧 만료되는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농협)를 대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이 조만간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 운영실태 검사에 돌입할 예정이다. 일요신문DB
현재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는 헤드헌터와 주주들을 통해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받고 최종적으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에서 사외이사를 선발한다. 우리은행은 과점주주들이 추천한 5명으로 사외이사진을 구성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 관계자는 “주주 추천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BNP파리바그룹과 일본 쪽 주주들도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KB금융지주(KB금융)는 사외이사 선발 과정에서 비교적 더 복잡한 절차를 거친다. 사추위에 후보명단이 넘어가기 전에 인선자문위원들이 한 번 더 사외이사 후보들의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KB금융 한 관계자는 “과거 사외이사 유착 논란 이후 2015년부터 인선자문위원들이 다시 한 번 평가하는 3단계 사외이사 선발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우리의 사외이사 선발제도를 금융당국에서 긍정적으로 봤다고 해도 공식적으로 특정 업체의 케이스를 두고 모범적이라고 밝히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KB금융이 운영하는 인선자문위원제도가 금융감독원의 검사 이후 다른 금융지주사들에 적용될 가능성을 제기한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지난 7일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 운영 실태에 대한 검사를 준비 중에 있으나 사외이사 선임 절차에 대해 검토되거나 결정된 것이 없다”며 일축했다. 다만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곧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 운영 실태에 대한 전반적인 검사는 검토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사외이사제도 개선 건의는 있을 수 있다”며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 검사 시행일과 대상은 확정되지 않아 지금으로서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인선자문위원의 평가가 사외이사 제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효성이 없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KB금융지주의 선발 과정만 하더라도 인선자문위원은 결국 기존의 사외이사들이 뽑기 때문에 절차만 한 단계 늘어났을 뿐 투명성 제고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KB금융 관계자는 “인선자문위원들의 신분, 수 등은 밝힐 수 없다”며 “인선자문위원들은 사외이사들이 추천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사외이사들이 블라인드 투표를 통해 선발한다”고 말했다.
한 금융지주사 사외이사 A 씨는 “어차피 외부에서 사외이사를 선발하지 않는 한, 절차를 복잡하게 한다고 해서 현직 CEO에 우호적인 사외이사를 선발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인선자문위원제도가 ‘옥상옥(屋上屋)’이 될 우려가 있다”며 “(사외이사의) 노조 추천 방식 또한 이해 관계자가 참여한 것이기에 오히려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다른 금융지주 관계자는 “주주와 이해 관계자들을 포함한 전체 투표로 선발하지 않는 한 지금의 사외이사 선발 제도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지분율이 높은 기관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이 현 사외이사 제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의견도 있다. 금융지주사 사외이사 B 씨는 “어떤 제도를 도입하든 개선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국민연금과 같은 재무적투자자(FI)들이 3명 이상의 사외이사를 추천하고 사추위에서 가려 선발한다면 CEO의 입김이 작용할 가능성이 크게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의 사외이사 A 씨는 “결국 사외이사 선발은 주주들의 이해 관계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대상을 가리는 식이 돼야 한다”며 “그래야 주주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CEO가 계속 연임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