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뉴스] “존심보다 돈” 가상화폐 ‘구제 릴레이‘ 참여, 그 결과는
DC 인사이드 비트코인 갤러리에서는 ‘대박’ 수입 인증글이 가득합니다. 이 가운데 이른바 ‘거목’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수익 인증글에 ‘구제’를 한다는 내용을 추가합니다. 많은 누리꾼들이 구제글을 보고 댓글을 적습니다. 거목들이 적게는 10만 원, 많게는 1000만 원을 계좌로 송금하는 방식입니다.
이게 정말 사실일까요. 하지만 믿을 수 없습니다. 거목들로부터 직접 돈을 받았다는 인증글을 찾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구제 릴레이’는 비트코인 갤러리 회원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일요신문i ‘는 구제글의 팩트 체크를 위해 기자가 직접 대박 수익 인증글에 댓글을 달아봤습니다. 돈을 달라는 내용과 함께 계좌번호를 댓글로 적었습니다. 과연 돈이 들어왔을까요?
DC인사이드 비트코인 갤러리 화면 캡처
비트코인 갤러리는 올해 최고의 유행어, ‘가즈아’의 진원지입니다. 이곳에는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희로애락을 담겨 있습니다. 특히 비트코인 갤러리에선 독특한 내용의 게시글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구제글’입니다. “돈을 많이 벌었으니 댓글을 다는 사람은 돈을 준다”는 허세 작렬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앞서 사진 속에서 “투자금 200으로 1억 벌고 떠난다. 개추(개념추천) 40하면 5만 원씩 40명 쏘고 간다”, “10명 랜덤 50만 쏜다” 등의 제목이 보이시나요? 투자자들이 수익을 나눠준다는 의미입니다. 구제는 자연재해나 질병, 정신적 피해로 고통을 받는 사람을 도와준다는 뜻입니다.
기자는 ‘혹시나’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글의 진위 여부도 궁금했습니다. 1월 16일 익명을 요구한 한 회원이 “또 왔다, 미안한대 오늘은 5만 원, 5명만 줄게”라는 제목의 구제글을 올렸습니다. 더이상 참을 수 없어 게시물을 클릭했습니다.
DC인사이드 비트코인 갤러리 화면 캡처
갑자기 숫자가 쏟아졌습니다. ‘보유자산’이라는 항목 아래 추청자산 ‘3492399360’이라는 숫자가 보였습니다. 비트코인 투자자로 보이는 A 씨가 가진 약 34억 9000만 원의 일부를 나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글쓴이가 비트코인으로 대박 수익을 거둔 것 같았습니다. 적어도 눈으로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다른 회원들의 댓글 릴레이가 이어졌습니다. 한 회원은 “회사에 겨우 들어갔는데 수습을 하다가 잘렸습니다. 비트코인 좀 해보고 돈 좀 먹어 보려니까 정부 대책이 발표됐어요. 원금까지 깎아 먹었습니다”며 계좌번호와 함께 댓글을 달았습니다.
기자도 댓글 릴레이에 동참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봤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계좌번호와 은행이름을 입력했습니다. 아래 사진 빨간 부분 표시가 기자의 댓글입니다.
DC인사이드 비트코인 갤러리 화면 캡처
비트코인 갤러리에서 또다른 구제글을 찾았습니다. 1월 12일 밤 11시경 B 씨는 “김X영, 박X진, 나X현 등 완료, 힘든 사람 10명”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제일 힘든 사람 구제 가즈아”라고 밝혔습니다.
DC인사이드 비트코인 갤러리 화면 캡처
B 씨도 자신이 보유한 빗썸캐시 약 25억을 인증했습니다. 물론 조작된 내용일 수도 있지만 기자의 입에선 ‘억’ 소리가 났습니다.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서는,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액수였습니다.
DC인사이드 비트코인 갤러리 화면 캡처
많은 누리꾼들이 서로 ‘돈을 달라’며 댓글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댓글들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갖가지 사연이 올라왔습니다. 한 회원은 “형님, 추운날 새벽에 막일 가시는 아버지 손 한 번 붙잡고 오늘은 일 안 가셔도 된다고 따뜻한 말 건네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형님의 따뜻한 손길이 제게 매우 큰 힘이 됩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회원은 “젖먹이 아들 분유값 좀 벌어보려고 한탕 했지만 아이 분유값도 못 낼 지경까지 왔습니다. 와이프 얼굴 보기도 미안하고 아이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납니다”며 “그놈의 한탕이 뭔지, 앞으로 정말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제발 못난 가장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꼭 좀 부탁드립니다”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B 씨 게시물에 대한 댓글 수는 1월 16일 오전 10시 현재 103개, 누리꾼들 사이에선 ‘사연 전쟁’이 폭발했습니다. 기자도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아 슬며시 숟가락을 올려 보았습니다.
DC인사이드 비트코인 갤러리 화면 캡처
게시판 페이지를 넘길 수록 ‘규모’가 커졌습니다. 12월 30일 C 씨는 오후 10시경 “아까 540억 인증한 사람인데 100만 원 보냈다. 추가로 9명 더 쏜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C 씨가 인증한 보유 재산은 약 540억 원.
C 씨는 “내 글 추천하고 댓글로 자신의 사연을 한번 써봐, ‘형님 밥 굶고 있어요’ 같은 감정팔이 글 말고 좀 참신한 글 없냐”라고 밝혔습니다. 1월 17일 오후 3시 현재 C 씨 게시물에 대한 댓글 수는 485개. 누리꾼 대부분이 사연을 담아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번에도 기자 역시 댓글을 달았습니다.
1월 12일 밤 10시경, D 씨는 “개념글 56억 인증자입니다. 의심하는 분들이 많아 다시 진행합니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D 씨는 “딱 한 분만 뽑아서 3000만 원 드리고 뜹니다”라며 “사연은 필요 없습니다. 계좌만 적으세요”라고 밝혔습니다.
DC인사이드 비트코인 갤러리 화면 캡처
‘딱 한분’에 선택받기 위한 댓글 전쟁이 또 일어났습니다. 기자 또한 참여했습니다.
1월 16일 오전 10시부터 1월 17일 오후 3시까지, 기자는 댓글 70개를 달아 비트코인 갤러리의 구제 전쟁에 나섰습니다. 특히 1월 17일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구제 게시물 약 50개에 “돈을 달라”고 읍소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사흘간, 스마트폰 알람이 울릴 때마다 깜짝 놀랐습니다. “혹시 돈이 들어왔나”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헛된 희망이었습니다. 기자는 돈 한 푼 받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주식 시장의 치열한 전쟁을 그린 영화 ‘작전’의 주인공 강현수(박용하)의 명대사가 기억났습니다. “전쟁은 시작된다. 적이 누군지도 모르고 아군도 없다. 개미, 기관, 코쟁이들까지 남의 돈 먹겠다고 덤비는 곳이 이판이다.”
‘비트코인’ 전쟁의 한복판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선뜻 돈을 건넬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