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구석구석 ‘살아있는 문화재’
▲ 기품 있지만 소박한 양동마을 전경 | ||
경주 양동마을은 지명으로는 경주에 소속돼 있으나, 경주 외곽에 위치해 경북 안강에서 가장 가깝다. 조선시대의 명문가인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에 의해 형성된 양반마을로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 제18호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반촌마을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마을의 입지를 보자면 주 배경이자 주산인 설창산의 문장봉에서 네 줄기로 갈라진 능선과 골짜기가 마치 물(勿)자형의 지세를 이루고 있다. 네 골짜기는 각각 내곡, 물봉골, 거림, 하촌으로 나뉘고, 갈라진 골짜기마다 아담한 마을이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양동마을은 안동의 하회마을과 곧잘 비교되곤 하는데, 전형적인 반촌으로서의 규모와 화려함, 그리고 엄격함을 지니고 있는 하회에 비해 양동은 기품이 있으되 소박하고 고요하지만 대담함이 넘친다. 지금도 선조들의 삶이 배어 있는 2백년 이상 된 고가들이 50여 채 남아 있고, 그 주위에선 외거 하인이 살던 ‘가립집’이라 불리던 초가집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예전엔 고가마다 가립집이 3~5채씩 반드시 딸려 있었다고 한다.
▲ 이 마을의 대표적인 건축물 무첨당(위), 향단. | ||
마을 입구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건물로는 ‘관가정’과 ‘향단’이 있다. 관가정은 조선 성종 때 명신 손중돈 선생이 살던 집으로, 곡식이 커가는 모습을 보듯이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뜻을 지녔다. 조그마한 언덕에 자리 잡은 관가정은 한눈에 들어오는 형산강과 안강평야의 풍경이 일품으로 월성 손씨의 절제와 겸허의 가풍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관가정은 건물의 기단을 높게 하고 담장을 나지막하게 만들어 담장 너머로 자연의 경치를 그대로 ‘차경’하여 즐겼다. 인공적인 정원을 조성하기보다는 경치를 빌려옴으로써 자연을 공유하는 한 차원 성숙한 정원 개념이 아니었을까 싶다.
관가정과 함께 마을 입구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위치한 건물이 향단이다. 화려한 지붕구조를 가진 아름다운 건물로 동방 5현의 한 사람이었던 회재 이언적 선생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할 당시 중종임금이 지어준 집이다. 원래는 99칸이었으나 보수 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56칸으로 줄었다.
향단은 파격적인 배치와 형태 때문에 건축학적으로도 주목받는 건물 가운데 하나다. 특히 건물 외관 전체가 밖으로 노출되는 것이나 마을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위치 등, 관가정에 대응하여 이씨 가문의 입지를 높이고자 건축적 과시를 드러낸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두 집안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은 두 가문에서 경쟁적으로 지었던 10여 개의 정자를 비롯해, 골짜기를 마주보며 힘을 겨루듯이 서 있는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종갓집인 서백당과 무첨당의 건축에서도 엿볼 수 있다. 소백당이 소박한 기품을 간직한 건물이라면, 화려한 장식들이 어우러진 무첨당은 강하고 직선적인 느낌의 건물이다.
▲ 허리 굽은 향단의 소나무. | ||
하지만 5백년 전 두 가문의 경쟁관계는 균형과 발전이라는 긍정적 결과를 낳았다. 경쟁 관계 속에서 시대 최고 건축 자재들이 사용됐고 대담한 건축적 양식도 생겨난 것. 또 한양에서 천리나 떨어진 이곳에 과거 급제자가 1백16명이나 나올 수가 있었던 것도 학문을 중심으로 한 두 집안의 경쟁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 여겨진다.
양동 마을 전체를 돌아보는 데는 족히 2~3시간은 걸린다. 관가정을 비롯한 향단, 서백정, 무첨당 등 주요 건물만 보더라도 한 건물에서 건물로 이동하는 공간이 길기 때문이다. 대신 황톳길을 기분 좋게 걸을 수 있어서 풍취가 그만이다. 가끔 뱀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사람을 무는 일은 거의 없다.
▶가는 길: 서울,부산→경부고속도→경주나들목→7번국도-안강→양동민속마을
▶http://www.yangdongsar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