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물속에 눈은 무대에
거창 수승대 일원에서 공연이 펼쳐지는 거창국제연극제가 올해로 17회를 맞이했다. 정식 공연장이 아닌 곳, 즉 산과 강 혹은 서원과 폐교, 바위 등에서 공연을 한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아비뇽 페스티벌’과 곧잘 비교되기도 하는데, 실제 아비뇽을 모델로 시작된 축제이기도 하다.
작은 시골마을의 서머페스티벌인 이 연극제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뭘까. 이는 인구 7만 명의 소도시 ‘거창군’이 지닌 지역적 특수성 외에도 17회까지 이어오는 동안 매년 축제의 내용과 규모가 질적인 성장을 해왔기 때문이다. 또 여름휴가가 한창인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낮에는 시원한 계곡에서 피서를, 밤에는 연극공연을 관람하는 이색 체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피서+공연관람’이 하나의 문화패턴으로도 자리를 잡은 현장. 그 자체로 ‘흥미만점’이다.
올해 연극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자연과 인간과 예술이 하나’라는 주제 아래 국내외에서 총 45개 단체가 참가해 1백99여 회의 연극공연을 펼치고 있는 것. 지난해에 비해 가족극 편성이 늘어나고, 공연 횟수가 증가하면서 현재까지 하루 평균 7천7백여 명이 연극을 관람하는 등 관객들의 반응도 배우들의 열정만큼이나 뜨겁다.
공연은 모두 수승대 일원에서 진행된다. 국내 유일의 수상무대 ‘무지개극장’을 비롯해 구연서원을 배경으로 한 ‘거북극장’, 수승대의 수려한 자연환경을 그대로 안은 오픈 스테이지 ‘돌담극장’ 등 수승대 일원의 10개 야외극장과 거창문화센터 등 12개 공연장에서 펼쳐진다. 매일 저녁 적어도 4~5개의 유료 연극 공연이 이뤄지고 그밖에 무료 공연이나 거리공연은 낮부터 저녁까지 유원지 곳곳에서 열린다.
▲ 브라질 ‘보이붐바’ 공연. | ||
특히 공연장 맞은편에는 댓바위와 물굽이를 굽어보고 있는 ‘요수정’(樂水亭)이라는 정자가 하나 있는데 정자 뒤편의 울창한 소나무 숲과 조화를 이뤄 이곳의 경관을 절경으로 만들고 있다.
축제는 밤이 되면서 활기를 띤다. 주변이 어둑어둑해지자 야외무대에 조명이 켜진다. 이때부터 사람들의 걸음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각자 예매한 티켓을 들고 공연장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재밌는 연극은 자리를 구하기도 힘들다. 특히 8백석 규모의 축제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가족극인 극단 신화의 <세상에서 제일 시끄러운 집>, 연희단거리패의 <로미오를 사랑한 줄리엣의 하녀> 등은 연극 시작 2시간 전부터 1백m 넘게 줄이 이어지는 등 또 다른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 같은 사정은 다른 극장도 마찬가지여서 5백석 규모의 거북극장에서 공연된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오서방 이야기>, 프랑스 극단 보이스오프의 <작은 서커스, 작은 황소들>, 일본 동경건전지의 <한여름 밤의 꿈>도 연일 매진되는 등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받고 있다.
야외무대는 한마디로 이색적인 첫 경험이었다. 하늘엔 별이 총총하고 바람이며, 모기며, 온갖 것들이 연극을 ‘방해’했다. 아니 연극에 ‘참여’했다는 편이 맞다.
대도시처럼 조용하게 볼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아이들이 울기도 하고 공연중에 자리를 뜨는 사람들도 있다. 관객들은 연극 마니아에서 시골의 촌부까지 다양하다. 그래서 짜증나고 한편으론 재미있다. 대도시에 집중된 문화예술이 작은 마을에도 열려 있다는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 외 무료공연도 눈여겨보자. 특히 독일의 거리극 전문극단 ‘스타피큐렌’은 매우 독특하고 흥미로운 공연을 보여준다. 다섯 사람이 막대 로봇을 조정하며 수승대 일원을 걷는데, 말 한마디 없이도 인간과 기계의 동화작용을 이끌어낸다. 막대로봇은 관객들의 어깨를 밟고 지나가기도 하고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춤을 추고 심지어는 잠을 자기도 하면서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멋진 공연이다. 그밖에도 하루 두 번씩 공연하는 페루의 ‘안데스뮤직’이나 러시아와 브라질의 민속무용극도 볼 만하다.
▲ 막대 로봇을 조종하는 독일 거리극 ‘스타피큐렌’. | ||
연극을 직접 보고 배우는 학술프로그램으로 연극아카데미와 키프트 연극캠프(초·중·고), 연극지도교사 워크숍 등이 마련돼 연극놀이와 즉흥연기, 연극구성 등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베를린 레벤스레움 무대미술전, 사진전시회 등이 펼쳐지고 있다.
거북극장 야외세미나 스페이스에서 열리는 다양한 주제의 워크숍은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진행된다. 또 은행나무 극장 주변에는 야외노천 카페인 은행나무 카페가 운영된다. 축제에 참여한 팀과 관객들, 연극제 관계자들이 모여 밤새도록 연극과 페스티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친교를 나누는 곳으로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그 외에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으로는 무대 분장하기, 무대의상 만들어 입기, 도자기 굽기, 열쇠고리 만들기, 페이스페인팅 체험 부스 등이 있다.
가는 길: ▶서울-경부고속도로-대전- 대전고속도로-무주, 함양(국도)-거창.
▶부산-남해고속도로-마산-구마고속도로-대구-88고속도로-거창.
예매 및 문의: 055-943-4152/ 성인 1만원, 학생 9천원/ 사랑티켓 관람가(성인 5천원, 학생 4천원) 쪾http://www.kif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