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종교계 미투 후속 취재2(끝)-한국이 ‘요더 사건’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
세계적인 신학자였던 존 하워드 요더. 사진=위키피디아
존 하워드 요더는 메노나이트 소속 최고의 기독교 윤리학자이자 세계적 신학자로 꼽힌다. 그는 미국 기독교 윤리학 회장을 역임하는 등 왕성한 학문 활동을 펼쳤다. 미국의 복음주의 잡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는 요더의 저작 ‘예수의 정치학’을 20세기 미국 신학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100권 가운데 5번 째 책으로 선정한 바 있다. 특히 이 책은 한국에도 번역본이 출간됐으며, 신학을 조금이라도 했던 사람들은 한 번쯤 살펴본 저작으로 꼽힌다.
요더는 아나뱁티스트(재세례파)의 가장 큰 분파인 메노나이트 신앙 배경에서 자라났다. 그는 직영 교육 기관인 고센대학교를 나왔고 스위스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아나뱁티스트 메노나이트 성경신학교(AMBS)의 전신인 고센성경대학원(GBS)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총장을 역임하는 등 종교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요더는 1991년 나이 육십이 넘었는데도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았다. 요더의 성폭력은 1970년대에 처음 불거졌다. 그는 1967년부터 GBS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말린 밀러 총장은 GBS 안팎의 여성들로부터 요더의 성폭력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이후 밀러는 성경적이라 여겨지는 징계 과정을 준비했고, 이에 따라 요더가 상호책임을 지게 될 것이란 희망을 가졌다. 1980년 밀러는 GBS의 내부 간부들로 구성된 소그룹에서 징계 절차를 입안했다. 초기에 상호 책임과 징계를 위해 비밀로 모이게 된 소그룹은 거의 4년 동안이나 모임을 진행해 나갔다. 여성들을 보호하려던 이들의 노력은 물거품 됐고, 요더는 GBS를 떠나게 된다.
김복기 선교사는 “밀러는 요더라는 신학자의 가정을 보호해줘야겠다는 잘못된 접근을 했다. 밀러는 요더를 설득시키고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 바뀔 것이라고 판단했다. 밀러가 요더보다 10살이나 어리고 요더는 밀러의 멘토였다. 요더의 사회적 위치는 총장보다 더 높은 존재였다. 또 학교의 명성을 고려한 처사다. 충분히 성폭력 사건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선 은폐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가라앉지 않았고 1992년 인디애나-미시간 지역 메노나이트 총회는 요더의 목회자 자격을 정지시켰다. 요더는 4년간 치리(교인으로서 교리에 불복하거나 불법한 자에 대해 당회에서 증거를 수합, 심사해 책벌하는 일) 과정을 밟는다. 메노나이트가 1991년부터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피해자 8명 등을 조사한 끝에 그가 “성적인 경계를 침해했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적 신학자의 성추행 사건은 가해자 요더의 치리 과정에만 집중됐다. 요더는 교수직을 정직당해 4년 뒤에 복귀한다. 피해자들을 향한 진정한 사과는 없었다.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 대장간 출판사 캡처
요더가 사망하면서 일단락된 문제는 2013년 사라 웽거 쉥크 총장이 AMBS 총장으로 부임한 뒤 ‘요더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로 천명하면서 다시 수면위로 부상했다. 피해자들에 대한 충분한 치유와 회복이 없었다는 판단에서다. 이 과정은 2015년 미국 ‘메노나이트 계간지’ 특집호에 실려 화제가 됐다.
김 선교사는 “최초 여성 총장으로 알려진 쉥크가 다시 문제를 정리하자고 천명했다. 그는 요더의 징계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미흡했던 ‘피해 여성들의 입장’에 대해 골몰했다. 시대의 변화도 한 몫 했고, 여성 리더십과 여성 신학이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고 말했다.
요더의 성추문에 대한 신학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일각에선 요더의 성폭력으로 학문적 연구 성과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보수 기독교계는 “신학은 신학자의 삶의 자리를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요더의 신학은 진정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김 선교사는 “메노나이트 관련 출판사에선 요더의 저작을 출판할 때마다 ‘요더는 여성들을 성추행하고 학대한 사람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우리는 요더와 그가 쓴 작품들, 업적에 대해서 앞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알고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서두에 써놓는다. 제대로 된 맥락 속에서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 선교사는 “대학에서 2013년 이전엔 요더 책을 참고자료 등으로 많이 활용했다. 그러나 2013년 이후론 많이 조심스러워진 게 사실이다. 교수들 가운데 요더의 저작을 아예 소개하지도 않는 분도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이어 “메노나이트의 자성 과정을 눈 여겨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문화·예술계를 비롯해 종교계까지 퍼진 ‘미투’ 운동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는 “젊은 시절 캠퍼스 선교단체와 한 교단에서의 성추행 사건 등 3건의 종교단체 내 성추행을 목격하고 진실규명과 피해자 구제를 위해 노력해 본 경험이 있다. 당시에도 교회는 피해자들의 트라우마와 회복에는 관심이 없고 교회가 이들을 왕따 시킨 후 담임 목사를 다른 교회의 문제가 있는 목사와 바꿔치기 하는 등의 모습으로 일단락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선교사는 ”종교가 사회적 기능을 하기 위해선 더 엄격하고 철저하게 성폭력 문제의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그동안 불의한 모습을 자행해 왔던 교회가 제대로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 시스템을 만들어야 된다. 또 피해자의 목소리를 우선적으로 들어야 하고 2차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앞장서야 한다. 형제와 자매가 교회 내에서 아픔을 당했을 때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하는 게 교회의 숙제다.”라고 강조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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