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꽃 보고 기관차 타고 추억이 ‘뭉게뭉게’
▲ 가을 하늘을 빼닮은 눈부신 섬진강변. 이곳에서 은어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다. | ||
이번에는 전남 곡성의 섬진강변. 가을이 뇌관을 당겨서일까, 누가 수류탄을 던진 것도 아닌데 목화 다래(목화열매)가 마치 팝콘처럼 망울을 터트려 강변이 온통 푸근한 솜이불을 펴놓은 듯하다.
지금 곡성에는 지극히 토속적이지만 언제부턴가 너무도 이국적인 풍경이 된 목화솜밭이 섬진강변을 따라 펼쳐져 있다. 바람이 제법 차가워진 이 계절, 그 포근한 솜밭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고려 말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온 이래 목화는 우리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고 그만큼 대접도 받았다. 그러나 나일론 등 화학섬유가 개발되고 도입되면서 목화는 지난 세기의 유물쯤으로 취급받는 신세가 됐다. 전국적으로도 이제는 목화 재배 농가를 눈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다.
전라남도 곡성 겸면에서는 그러나 이렇듯 ‘귀하디귀한’ 목화를 볼 수가 있다. 여름내 수줍은 꽃을 피웠던 목화는 지금 다래를 펑펑 터트리며 하얀 솜꽃을 피워내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겸면에서 목화는 코스모스처럼 천변을 장식하는 하나의 꽃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올해 들어 겸면천 부근 6천여 평의 부지 중 3천여 평에 목화를 심어 목화공원으로 거듭났기 때문. 공원에는 예닐곱 채의 원두막을 짓고 여남은 개의 장승도 한켠에 세웠다. 장승 주위와 공원 중앙에는 국화, 벌개미취 등 수십 종의 들꽃을 심어 가을 분위기가 물씬 배어난다. 공원은 겸면천을 따라 4백여m에 걸쳐 조성됐는데 산책하기에도 그만이다.
연분홍색 목화꽃은 단아해서 예쁘다. 그러나 일찍 지고 꽃잎이 약한 탓에 그 아름다움을 오래 간직하지 못한다. 꽃이 지고 나면 목화열매인 다래가 생기는데 완두콩만 하던 다래는 점점 자라 달걀만큼 커진다.
▲ 섬진강변을 따라 기적소리를 크게 울리며 달리는 증기기관차. 창밖 풍경이 너무 빼어나서 시속 40km의 기차가 더 천천히 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다. | ||
다 큰 다래는 십자모양으로 터지면서 솜꽃을 피운다. 그 자체로 너무 하얀 솜꽃은 만져보면 영락없는 솜이다. 사람들은 신기한 듯 솜꽃을 바라보며 한번씩 만져도 보고 따보기도 한다. 안방 이불솜이 헐거워졌는지 기념으로 한주머니 가득 채워 가져가는 이들도 간혹 있다.
목화밭과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완성시키는 원두막은 쉼터로 제격이다. 공원 앞 개천변으로 갈대가 우거져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맑은 개천에는 송사리가 워낙 많아 왜가리들이 더 신났다.
지금 한창 다래를 펑펑 터트리고 있는 겸면 목화공원에서는 11월 중순까지 목화솜꽃을 감상할 수 있다.
곡성은 역시 섬진강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구불구불 섬진강을 따라 달리는 17번 국도 드라이브에서부터 섬진강변 증기기관차와 하이킹까지 볼거리,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곡성에서는 폐선이 된 철도구간을 이용해 섬진강변 기차여행을 할 수 있다. 곡성군에서는 구 곡성역이 들어섰던 자리에 ‘섬진강변 기차마을’이라는 테마공원을 세우고 이곳에서부터 가정역까지 증기기관차를 왕복 운행하고 있다.
관광용 증기기관 열차는 1960년대에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운행했던 기차로 섬진강변을 달리며 우렁찬 기적소리를 울린다. 지난 3월 말 개통된 이 열차는 기관차 2량과 객차 3량의 미니열차. 탑승인원도 1백60명에 불과하다. 시속 40km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차의 속도는 요즘 열차에 비하면 그야말로 거북이 수준이다. 그러나 그 재미와 운치는 비할 바가 아니다. 1시간의 운행시간이 너무도 짧게 느껴질 정도다.
기차여행이 입소문으로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자 이제는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탑승이 불가능할 정도가 됐다. 평일에는 하루 두 번, 주말에는 네 번씩 운행하는데 그 숫자를 늘려야 할 때가 된 듯하다.
기차를 탑승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형 증기기관차와 철로자전거로 그 아쉬움을 달랜다. 모형 증기기관차는 실제 운행하는 증기기관차와 똑같은 모양이다. 객차에도 들어가서 앉아볼 수 있고 조종실 구경도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물 만난 고기처럼 즐거워한다.
▲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에서 철로자전거를 타는 연인(위)과 섬진강변 억새밭 사이에서 추억을 찍는 여행객들. | ||
섬진강 기차마을에서부터 압록역까지 17번 국도를 따라 달리는 섬진강변 드라이브도 권하고 싶은 여행코스다. 굽이굽이 강물과 함께 흐르는 도로 위에서 느끼는 가을 정취가 그만이다. 제대로 이 코스의 드라이브를 즐기려면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 게 좋다. 그 시간대에 섬진강가에 가본 사람이라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물안개가 구름처럼 강가에 펼쳐지고 도로 위에도 살포시 내려앉는다. 차를 타고 달리는 게 아니고 마치 ‘근두운’을 탄 것 같은 기분이다. 물안개는 새벽부터 시작해 아침 9시께까지 볼 수 있다. 매우 더운 여름철과 강이 얼어붙는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날에 물안개를 볼 수 있다.
증기기관차가 회차하는 가정역에서 즐기는 자전거하이킹도 추천할 만하다. 섬진강 위에 구름다리처럼 놓인 두가교를 건너면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보통 2시간이면 그 일대 하이킹을 즐기기에 적합하다.
보통 가정역에서 기차마을 방향으로 가다가 돌다리를 건너 돌아오는 코스를 많이 선택하는데 특히 추천하고 싶은 코스는 가정역에서부터 우리나라 강변역 중 가장 아름답다는 압록역까지의 왕복 6km 코스다.
압록역 주변은 섬진강이 보성강과 만나는 합수머리로 수량이 더욱 풍부해지고 큰 강으로서의 면모를 더한다. 강 두 줄기가 만나 하나가 되다보니 강폭도 넓어지고, 섬진강의 자랑인 모래도 드넓게 펼쳐져 절로 발길을 멈추게 한다.
▲문의: 곡성군청(http://www.gokseong. go.kr)061-363-2011, 겸면사무소 061-362-1031 섬진강기차마을(www.gstrain.co.kr)061-360-8850, 8378
[여행안내]
▲가는 길 <목화공원>호남고속도로 옥과 IC 우회전→곡성 IC방면 1.5km 직진→겸면 면사무소 맞은편 1km→겸면 목화공원 <섬진강 기차마을> 목화공원에서 곡성 방향 15km 직진
▲잘 곳 코리아모텔 061-362-1599 (겸면) 대곡관광호텔 061-362-9833 (오산) 알프스모텔 061-363-8115 (곡성) 세종장 061-362-5016 (옥과)
▲먹거리 곡성은 압록유원지 주변 참게탕과 은어회가 유명하다. 가격대는 참게탕이 2만5천~4만5천원, 은어회 2만~3만원 수준. 청솔가든(061-362-6931), 백운산장(061-362-2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