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올랐더니 바다가 내 품에
▲ 내변산 트레킹의 최고 코스인 월명암 가는 능선길. 올라서는 바위마다 절경이요, 비경이 펼쳐진다. | ||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중심을 차지하는 내변산은 산정(山頂)이 특별히 높거나 이름 난 곳이 아니다. 겨울의 꽃이라는 눈도 아직은 내리지 않았다. 게다가 쉽고 편하게 둘러볼 수 있는 외변산의 풍광 때문에라도 구태여 사람들이 내변산에 오르는 모습을 쉽게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기실 변산반도의 진면목은 내변산에 있다. 3면의 바다를 마주한 내변산은 변산반도의 중심에 우뚝 솟아, 서해 바다를 마주하면서도 조금의 흔들림이 없다. 그 호방한 기개는 산의 높이가 아니라 1백57㎢에 달하는 넉넉한 넓이에서 비롯하는 것 역시 의심할 바가 없다.
내변산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꽃도 없고 드리워진 녹음이나 아찔한 단풍도 없다. 대신 너르고 평탄한 흙길 옆으로 사람 키보다 한 뼘이나 더 자란 억새가 춤을 춘다. 또 신선대(486m) 신선샘에서 발원한 계류가 직소폭포를 거쳐 봉래곡, 실상사를 지나가면서 ‘봉래구곡’을 이루며 지루함을 덜어준다.
초입부터 실상사 터까지 약 30여 분간은 평탄한 길의 연속이다. 갑자기 시야를 밝게 만드는 너른 터가 나오면 그곳이 실상사지다.
실상사는 신라 신문왕 때 초의 스님이 짓고 조선시대 양녕대군 때 고쳐 지은 것이나 1950년에 모두 불타고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새로 지은 대웅전 뒤로는 선인봉이, 앞으로는 멀리 천왕봉, 세봉, 관음봉 등의 기암절벽들이 둥그렇게 감싸고 있어 명당으로 불리는 곳 가운데 하나다. 특히 선인봉에 기대어 선 대웅전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 능가산 내소사의 전나무 터널. 6백m에 이르는 전나무길은 아직 타오르지 못한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위). 아래는 내소사 대웅보전. 이곳에는 보는 사람에 따라 눈동자가 움직인다는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다. | ||
“낮은 산이라지만 마치 해발 1천m의 산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어느 등산객의 솔직한 감상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산은 높이만으로는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봉래곡에서 시작된 내변산의 호방한 기운은 선녀탕으로 내려서면서부터 더 뚜렷해진다.
전국 방방곡곡 선녀가 아니 내려온 산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이곳의 선녀탕은 좀 남다르다. 거대한 조각상을 빚은 듯 회색빛의 암벽들 사이로 옴팡하게 들어앉은 선녀탕에는 꽃잎 대신 낙엽이 지천이다. 이곳 바위에 앉아 있으면 선계가 뭐 별건가 싶다.
여기서 계류를 따라 올라가면 이내 직소폭포다.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는데 등산길로는 약 25분 정도 걸린다. 직소폭포는 봉래구곡 중에서 제2곡이자 변산8경의 제1경으로 알려진 명승지다. 높이 22.5m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우렁찬 물소리가 초겨울 추위도 얼려버릴 듯하다. 폭포 아래의 둥근 소(沼)는 매우 깊어서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직소폭포는 올려다보는 풍광보다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더 멋지다. 여름에는 위험하지만, 지금처럼 물이 없을 경우엔 폭포의 끝자락에 설 수 있다. 이곳에서는 뻥 뚫린 하늘과 산봉우리만이 여백 가득한 그림을 선사한다.
직소폭포까지 둘러봤다면, 이젠 갈림길이다.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거나 내소사로 가는 길, 혹은 월명암에서 낙조를 보고 남애치로 가는 길 등이다. 인솔자가 있거나 낙조(겨울에는 4시30분부터 낙조를 준비해야 한다)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월명암으로 가고, 해질 무렵까지 시간이 넉넉하다면 내소사로 가는 것이 좋다.
왔던 길을 되돌아 월명암으로 올라가는 데는 약 1시간 넘게 걸리는데, 이 능선길은 내변산 트레킹의 최고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월명암까지는 올라서는 바위마다 전망대를 방불케 한다. 첩첩이 쌓인 봉우리들이 안개 속에 살포시 고개를 내밀어 수묵화의 절경을 만들어 낸다.
특히 월명암의 법당 앞이나 낙조대에서 보는 석양은 ‘비교대상’이 없다고들 말한다. 고군산군도와 함께 붉게 물드는 바다가 사위를 평정하며 장엄한 순간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런 절경을 보는 날보다 구름과 안개 속에 들어찬 월명암을 보는 일이 더 많은 게 안타까울 정도.
▲ 실상사 뒤로 선인봉이 그림처럼 걸려 있는 모습(위)과 낙엽이 꽃잎처럼 뿌려진 선녀탕(가운데). 아래는 변산8경 중 제 1경으로 손꼽히는 직소폭포.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기막히게 아름답다. | ||
[트레킹 Tip]
내변산의 주요 등산기점은 내소사와 내변산 매표소, 그리고 남여치매표소 등 세 곳이다. 내소사에서 출발해 직소폭포를 거쳐 내변산으로 내려오거나 남여치로 하산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 반대의 경우라도 상관없지만 보통은 하산 후에 주차한 곳까지 택시나 버스로 되돌아가야 한다. 1박2일의 일정이라면 내소사는 일정에서 살짝 남겨두어도 좋다. 대신 주차료를 받지 않는 내변산 매표소나 남여치에서 출발해보자.
[여행안내]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부안IC 통과 후 바로 좌회전(부안군 관광안내소 사거리)-23번 국도(좌회전)-30번 국도-곰소-내소사-격포-변산해수욕장(내변산 입구는 23번 국도에서 705, 736번 지방도로를 따라 사자동까지 가면 된다.)
★별미 추천
▶바지락죽, 백합죽: 변산반도 어디를 가도 ‘백합죽’이라고 쓴 간판이 빠지지 않는다. 개펄에서 막 캐낸 백합조개, 바지락 등으로 만든 죽이라 영양만점, 맛도 일품이다. 바지락죽 8천원, 백합죽 1만원
▶막쓰러회, 해물만두: 막쓰러회무침은 신선한 제철 회를 이용한 회무침이다. 요즘엔 농어, 썰숭어, 광어를 섞어서 배와 쑥갓, 생고구마 등과 고춧가루를 버무려서 내놓는다. 입안에 살살 녹는 회무침과 매콤한 맛이 일품. 주인장이 직접 개발한 해물만두도 맛있다. 추천 맛집은 격포항 뒤편 해안촌(063-581-5740)
박수운 여행전문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