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 그룹은 이름 지우고, 후보들은 현수막 철거하고…
지난 5일 ‘뉴욕타임스’는 안희정 전 충청남도 도지사의 최근 상황을 보도한 기사 제목이다. ‘한국의 오바마’라서 ‘안바마’라고 일컬어질 만큼 명망이나 인품에서는 흠잡을 데 없어 보였던 안 전 지사가 사실상 정계 은퇴 상황으로 몰렸다. 지난 5일 김지은 전 충남도지사 정부비서가 ‘JTBC’에 출연해 안 전 지사의 위계에 의한 성폭행을 주장하면서다.
처음 안 전 지사 측은 ‘합의한 성관계는 있었으나 성폭행은 없었다’고 대응했다가 곧바로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입니다. 모두 다 제 잘못입니다’라는 사과문을 올렸다. 안 전 지사는 말 그대로 몰락했지만 민주당에서 안 전 지사를 따르거나, 충청도에서는 불똥이 튀었다. 안 전 지사 명망에 기대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 같이 찍은 사진이나 안 전 지사 이름을 건 홍보물을 제작했다가 낭패를 봤기 때문이다.
안희정 전 지사와 찍은 사진을 담은 박수현 충남지사 후보의 현수막. 연합뉴스
먼저 바로 수정할 수 있는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부터 ‘안희정 지우기’가 시작됐다. ‘안희정’을 앞에 건 페이스북 A 그룹은 지난 6일 안희정을 뺀 그룹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대선 때 안 전 지사를 지지한 이 그룹은 1만 명이 넘는 멤버가 있다.
이 그룹은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우린 가족이다. 그가 한 번 실수했다고 우리가 버릴 수는 없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실망했다. 그룹을 탈퇴한다’고 남긴 멤버도 있었다. 안 전 지사 이름이 빠진 이후에는 ‘(누구의 이름이 아닌) 모두의 그룹으로 만들어나가자’는 의견도 나왔다.
또 다른 ‘안희정’ 이름을 내세운 B 그룹은 방송 직후 아예 비공개로 전환됐다. 아예 그룹장이 그룹을 찾아볼 수 없게 세상에서 감춘 것이다.
충남도청에서도 안희정 지우기가 빠르게 진행됐다. 지난 6일 충남도청은 도청 홈페이지와 연결됐던 도지사 홈페이지를 폐쇄시켰다. 이 홈페이지는 도지사 인사말, 공약, 활동사진, SNS 게시판 등으로 구성됐다. 충남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충남도청에 배치됐던 도지사 방침 액자도 다 없앤 상태다”라고 귀띔했다.
안희정 지우기는 충남지역에서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수막이나 명함 뒷면에 같이 찍어뒀던 사진을 배치한 예비후보들은 급하게 해당 홍보물을 제거하고 있다. 전 청와대 대변인 박수현 충남지사 예비후보도 안 전 지사와 같이 찍은 ‘문재인, 안희정의 대변인’이라는 대형 현수막을 철거한 상태다. 앞서 관계자는 “안 전 지사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짓을 벌였고 충남 민심도 싸늘하게 식고 있다. 충남도청도 안 전 지사 관련 물건을 급하게 제거하고 있다. 도청도 그런데 코 앞에 선거를 앞 둔 후보들은 안 전 지사와의 친분을 감추는 게 당연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