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싫을 땐 잠시 딴세상에 가보자
▲ 파천은 시원하게 발을 담그고 피로를 풀기에 좋은 곳이다. 한 탐방객이 파천에서 여유롭게 쉬고 있다. | ||
울울창창한 산림도 좋고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처럼 잘 정돈된 가로수 숲길도 좋다. 그러나 구절양장처럼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화양구곡의 숲길만큼 매력적인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에 자리한 화양구곡은 너럭바위와 맑은 물, 기암절벽과 울창한 숲이 산수화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예부터 ‘금강산 아래로는 괴산의 화양구곡이 으뜸’이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였다.
화양구곡은 경천벽, 운영담, 금사담, 파천 등 눈을 뗄 수 없는 비경을 아홉 개나 품고 있다. 구곡의 총 길이는 3.7km. 천천히 걸어도 왕복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눈길 머무는 곳에 발길 또한 붙잡히는 법. 아침에 들어서나 오후 늦게 들어서나 되돌아 나오는 시간은 해가 뉘엿뉘엿 서녘 하늘로 지는 무렵으로 매한가지다.
화양구곡의 숲길은 잣나무를 비롯해 야광나무, 졸참나무, 물푸레나무, 물오리나무, 은사시나무 등 갖가지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사르르 잎들의 떨림이 맑은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청량감을 선사한다.
숲에는 까막딱따구리와 흑두루미 등 희귀조류들이 많이 산다. 워낙 산이 깊고 물이 좋아 새들의 서식지로 이만 한 곳도 없다. 까막딱따구리는 은사시나무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르는데 눈으로 확인하기는 쉽지 않아도 그 소리만은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계곡물은 도롱뇽이 보일 정도로 깨끗하다. 요즘은 도롱뇽의 산란기로 상류 쪽으로 올라가다보면 물속에서 긴 소시지같이 생긴 도롱뇽 알들을 볼 수 있다.
구곡은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시작된다. 길 오른쪽으로 계곡 건너편에 바위절벽이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제1곡 ‘경천벽’이다. 층암절벽이 깎아지른 듯 솟아 있는 바위의 모습이 마치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것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보통 자동차를 이용해서 화양구곡을 찾을 경우 놓치게 되는 절경이다. 매표소에서부터 500m 떨어진 곳에 자리한 주차장까지 내쳐 달리다보면 주변의 경치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 많은 사람들이 주차장이 있는 곳에서부터 구곡이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2곡은 ‘운영담’으로 주차장에서부터 400m 정도 걸어가면 왼쪽 편에 보인다. 구름의 그림자가 물속에 비칠 정도로 물이 맑다는데 주변 절벽의 층층소나무가 더 인상적이다. 이곳에서 200여m 전방에 ‘읍궁암’이 있다.
읍궁암은 제3곡으로 송시열이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대왕을 기리며 매일 아침 이 바위 위에서 슬피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제2곡 운영담은 구름의 그림자가 물 위에 맑게 비친다는 뜻을 지녔다. 기암절벽과 층층소나무들이 어우러져 절경을 자아낸다(맨위), 가운데는 별을 관측하는 바위, 제5경 첨성대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이 썼다는 ‘비례부동(非禮不動)’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맨아 | ||
제5곡인 ‘첨성대’는 경주의 천체관측소와 같은 이름이다. 경주의 첨성대가 인위적인 건축물이라면 이곳의 첨성대는 자연의 작품이라는 것이 다를 뿐 역할은 똑같다. 화양3교 우측 등산로에서 마주 보이는 이 바위덩어리에는 ‘비례부동’(非禮不動)이라는 큰 글씨가 새겨져 있다.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는 뜻의 이 글귀는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의종의 글씨라고 한다. 바위 맨 위에서 별을 관측했다는데 쏟아지는 별빛에 탄성을 자아냈을 선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큰 바위가 물가에 우뚝 솟아 그 높이가 능히 구름을 찌를 듯하다는 제6곡 ‘능운대’와 용이 계곡을 따라 길게 누워 있는 형세와 같다는 제7곡 ‘와룡암’, 높이 솟아 있는 바위 위에 장송이 멋스러운 자태를 드리우고 있는 제8곡 ‘학소대’는 마치 이웃사촌이라도 되는 듯 각 지점에서 300m 이내의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제9곡 ‘파천’은 여기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파천이 멀다고 학소대까지만 보고 돌아가는 경우가 꽤 많다. 그렇지만 파천을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듯하다.
계곡에 너럭바위가 펼쳐져 있고 그 위로 흐르는 물결이 마치 용의 비늘을 꿰어 놓은 것처럼 보여 파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은 신선들이 놀던 곳이라고 하는데 풍광을 보면 가히 그럴 만하다. 그리 깊지 않은 계곡의 물들이 너럭바위 위를 흐르며 층층계단 같은 물결을 만드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다. 햇살을 받아 따스한 바위 위에 드러누워 한숨 자거나 물속에 지친 발을 담그고 노느라면 시간이 어찌 가는지 모를 정도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곳이 바로 파천이다.
화양구곡은 조선 후기 대유학자 송시열이 머물면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화양구곡이라는 이름도 송시열이 지은 것이다. 이곳에는 화양서원이 있는데 송시열이 죽은 후 문하생인 권상하 등이 세운 것으로 조선 후기 사림을 이끌던 서원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화양서원의 위세가 대단해서 인근의 수령들은 화양서원의 요구를 그 누구도 거절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대원군도 젊은 시절 화양서원 앞 ‘하마소’를 말을 타고 지나다가 유생들에게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그 기억 때문일까. 화양서원은 대원군에 의해 철폐되는 아픔을 맛보았다.
과거의 역사야 어쨌든 조만간 화양서원을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 복원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건물에 대한 복원은 끝난 상태고 얼마 전부터 세세한 부분을 마무리하고 있다.
쌍곡구곡은 산수가 아름다워 퇴계 이황, 송강 정철 등 많은 유학자와 문인들이 즐겨 찾던 곳. 울창한 소나무숲과 기암계곡, 그리고 그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이 어우러져 호롱소, 소금강, 문수암, 쌍벽, 쌍곡폭포, 장암 등 쌍곡 구곡을 이루고 있다.
선유동계곡은 퇴계 이황이 칠송정(현 송면리 송정마을)에 있는 함평 이씨 댁을 찾아갔다가 산과 물, 바위, 노송 등이 잘 어우러진 절묘한 경치에 반해 아홉 달을 돌아다니며 구곡의 이름을 지어 새겼다는 절경지. 쌍곡과 화양계곡에 비해 여성적인 풍취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여행 안내]
★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증평IC→증평→질마재(592번 지방도)→부흥사거리에서 직진(37번 국도)→금평삼거리에서 좌회전(32번 국도)→화양구곡
★숙박: 화양구곡에는 계곡을 따라 민박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요즘 같은 비수기에는 숙박료가 2만~3만 원 선. 쌍곡구곡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먹거리: 쌍곡계곡 들머리 ‘비악산식당’(043-832-5833)은 산 깊은 괴산의 자연산 버섯들을 실컷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주인이 직접 산을 돌아다니며 따온 가지버섯, 솔버섯, 칡버섯, 밀버섯, 밤버섯, 닭다리버섯 등과 능이버섯, 싸리버섯 등을 푸짐히 넣고 끓인 생버섯찌개가 일품이다. 자연산 잡버섯전골(1인분) 1만 원, 버섯전 1만 원.
★문의: 괴산군청(http://www.cbgs.net) 043-832-2181, 속리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화양분소 043-832-4347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