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차고 올라간 꼭대기엔 백두대간 걸렸더라
▲ 천태산을 오르는 등산객들. 아찔한 암벽을 타고 올라야 비로소 산의 아름다움이 보인다. 등산로 초입에 조성된 꽃길(아래), 천태산지킴이 배상우 씨가 손수 가꿨다. | ||
‘천태산’(天台山). 풀이하자면 ‘하늘의 별이 잡힐 듯한 산’쯤 되겠다. 충북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에 자리한 천태산은 해발 714.7m로 그다지 높은 산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름이 붙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작지만 어찌나 매서운지 그 체구보다 서너 배는 더 높게 느껴져 정상에 오르면 정말 하늘의 별이라도 다 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천태산 등산로는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산치고는 잘 정비된 편에 속한다. 이정표가 중간중간 설치돼 초행이라도 헤맬 일이 없고 일정 간격마다 거리표식이 돼 있어 산행페이스를 조절하기 편하다. 천태산 등산로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한 사람의 절대적 헌신이 있었다.
천태산 매표소에서 손수 제작한 등산지도를 건네는 배상우 씨(75). 그는 ‘천태산지킴이’로 통한다. 영동이 고향인 배 씨는 20년 넘게 천태산을 가꾸고 등산로를 개척했다. 무슨 대가를 바라서가 아니다. 단지 천태산이 좋아서였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처럼 그 산의 매력에 빠지기를 원했을 뿐이다.
천태산 등산로는 모두 네 가지. 미륵길, 관음길, 원각국사길, 그리고 남고개길이다. 보통의 등산 경로는 미륵길로 오른 후 남고개길로 내려오는 것이다. 관음길과 원각국사길은 코스 유실 및 관리상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폐쇄됐다.
본격적인 등산은 천년고찰 ‘영국사’를 지나면서 시작되는데 매표소에서부터 영국사까지 가는 길도 꽤 운치가 있는 편이다. 1㎞쯤 되는 거린데 오른쪽으로 내내 계곡이 이어진다.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더위가 남아있는 까닭에 계곡이 더할 나위 없이 고맙다. 중간지점에는 폭포도 있다. 3단으로 이루어진 폭포로 예전에는 용추폭포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그냥 3단폭포라고 한다.
길섶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바람에 한들거린다. 야생화들도 있지만 사람의 손을 탄 흔적이 보인다. 오가는 길 지루해하지 말라는 천태산지킴이의 배려다. 그늘을 드리우는 숲과 향기를 퍼트리는 꽃, 청량감을 더하는 계곡의 노래에 산을 오르기도 전에 기분이 달뜬다.
슬슬 산보하듯 걸어 닿은 곳은 영국사. 1300년 묵은 은행나무가 있어 더 유명한 절이다. 이 은행나무는 금산 보석사 앞의 은행나무보다 더 커 보인다. 나무 아래에는 등산객과 절 탐방객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족히 어른 넷은 껴안아야 될 만큼 큰 덩치의 나무다 보니 드리우는 그늘의 넓이도 대단하다.
▲ 1300년 된 영국사 은행나무.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져 땀을 식히고 가기에 안성맞춤이다. | ||
절은 소담하다. 일주문이나 다름없는 만세루를 지나면 대웅전이 있고 그 왼쪽 뒤편으로 산신각이 세워져 있다. 절 마당에는 보리수와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고, 삼층석탑이 비어 있으면 허전해 보일 오른쪽 공간을 채우고 있다. 배롱나무 밑에는 차곡차곡 쌓인 ‘기와불사’의 꿈이 잠시 머물고 있다. 나무 밑동을 둘러친 기왓장에는 가족의 화목과 평안을 바라는 마음들이 들어 있다.
천태산을 마주볼 때 절 왼쪽으로 난 작은 길에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석종형부도와 원구형부도, 원각국사비 등의 문화재가 있다.
절 오른쪽으로 난 길이 등산코스인 미륵길이다. 정상까지는 1370m밖에 되지 않지만 꼬박 두 시간은 올라가야 한다. 그리 녹록지만은 않은 것이다.
천태산은 산 전체가 하나의 바윗덩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에서는 등산용 스틱이 전혀 필요 없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걷는 것보다 로프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곳이 더 많기 때문이다.
5m 정도의 암벽을 오르면 눈앞에 다시 10m 높이의 암벽이 기다린다. 이쯤이야 하고 넘어가니 또 다시 암벽의 연속이다. 점점 더 높이를 더하더니 30m쯤 되는 높이의 암벽이 또 막아선다. 지도상에 표시돼 있는 암벽코스인가 싶어 우회로를 찾는데 길이 없다. 분명 지도상에는 우회로가 그려져 있다. 할 수 없이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로프를 끌어당기면서 산을 오른다. 아니 암벽을 탄다.
사람들은 그게 다인 줄 안다. 하지만 웬걸? 채 100m도 못 가 벼루처럼 펼쳐진 거대한 벽이 가로막는다. 아찔한 높이. 무려 75m가 넘는 암벽코스다. ‘등반시 정상까지 남은 거리 620m, 우회할 경우 720m’라고 친절히 거리표식이 돼 있다.
사실 돌아서 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왠지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든다. 벽면은 경사각이 80도 이상이다. 이 코스에는 그 흔한 안전문구가 없다. ‘어린이와 노약자는 우회할 것’이라는 푯말뿐이다. 그러나 안전사고가 났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겁부터 나게 만드는 암벽이지만 사실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 막상 시도하고 보면 군데군데 잠시 숨을 고를 만한 곳도 있고 약간 경사가 완만한 지점도 있다.
특이하게도 천태산 정상에는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자그마한 물품보관함 속에 방명록 한 권이 들어 있다. 천태산지킴이가 가져다 놓은 것이다. ‘여기가 바로 충청의 설악, 암벽을 타고 오르니 펼쳐지는 아름다운 산하.’ 누군가 방명록에 적어놓은 한 줄 소회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잠시 쉬었다 나서는 하산길. 이제는 힘들게 오르느라 놓쳤던 풍광을 눈에 담으며 쉬엄쉬엄 내려가자. 두꺼비 등처럼 툭툭 튀어나온 큰 바위덩어리들이 유난히 많은 남고개길. 이 바위들이야말로 천태산 최고의 조망대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실루엣으로 넘실대는 백두대간이 너무도 찬란해 등산 때보다 더 지체되는 하산길이다.
여행 안내
★길잡이: 경부고속국도 옥천IC→이원·영동 방면 4번 국도 이용(11㎞ 직진)→이원면사무소 지나 501번 지방도로 우회전(12㎞ 직진)→누교리에서 영국사·천태산 이정표 따라 우회전(1.7㎞) 직진→천태산 매표소
★잠자리: 천태산 들목인 누교리 일대에 푸른산민박(043-744-4659), 천태산맑은물(043-745-2939) 등의 민박집이 있다. 양산팔경이 있는 수두리에도 민박을 놓는 집들이 더러 있다.
★먹거리: 영동은 올갱이(다슬기)가 유명하다. 금강에서 잡은 올갱이에 집된장을 풀어 끓인 올갱이 국밥이 별미. 영동읍 계산리 영동경찰서 근처 뒷골집(043-744-0505)이 유명하다. 중국산 올갱이가 식탁을 점령한 지 오래지만 이곳의 올갱이는 100% 금강에서 잡은 것들이다. 올갱이국 5000원, 무침 1만 3000원. 몸이 허하다고 느껴진다면 용봉탕을 한번 먹어보자. 오골계와 잉어, 자라를 함께 안친 뒤 찹쌀과 인삼 등을 넣어 끓인 것이 바로 용봉탕. 원기회복에는 그만이다. 심천면 고당리 난계사당박물관 옆 신미식당(043-742-7002)에서 맛볼 수 있다. 재료가 재료이니만큼 값은 꽤 비싼 편. 용봉탕(4~6인분) 15만~20만 원.
★문의: 영동군청(http://yeongdong.go.kr) 문화공보과 043-740-3214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