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맘만 먹으면 악용 가능…할리우드 이어 국내 피해 속출 우려
걸그룹 AOA의 설현의 얼굴을 붙인 문제의 사진이 급속히 퍼지기 시작한 때는 3월 18일 밤이다. ‘설현 나체’ 등 자극적인 제목이 붙인 이 사진의 확산성은 예상대로 빨랐다. 아이돌 스타가 거론되는 자극적인 사진을 향한 익명의 호기심이 더해져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순식간에 퍼졌다. 사진의 진위 여부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유포 과정에서 그럴듯한 설명까지 덧붙여졌다. 물론 이런 설명 역시 전부 루머로 드러났다.
사진 출처 = 설현 인스타그램
문제가 되고 있는 설현의 사진은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구분할 만큼 합성한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자세히 보면 목 부위가 부자연스럽게 연결돼 있는 게 그 증거다. 설현의 얼굴을 나체 상태의 누군가와 합성한 모습이 역력하다. 그런데도 익명성의 뒤에 숨은 사람들은 문제의 사진이 마치 진짜 설현의 것인 양 빠르게 퍼날랐다.
사실 스타들이 입는 이런 피해는 처음이 아니다. 몇 년 전 가수 아이유는 팬 미팅 무대에 오른 자신의 얼굴과 노출 의상을 합성한 사진으로 곤욕을 치렀다. 평소 이미지 관리에 누구보다 철저했던 아이유마저도 이름 없는 누리꾼이 악의적으로 만들어낸 합성사진으로 마음고생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아이유 측도 이번 설현과 마찬가지로 강력 대응에 나섰지만 ‘선 유포, 후속 조치’의 실효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수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심지어 수지는 걸그룹 미쓰에이로 한창 활동하던 2013년, 미성년자임에도 비슷한 피해를 당했다. 노출이 심한 누군가의 몸에 자신의 얼굴을 붙인 합성사진이 유포됐기 때문이다. 당시 수지가 미성년자라는 사실에서 논란은 가중됐고, 유명 여성 연예인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성희롱 등 성적 모욕 행위 역시 성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한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분명한 악의성을 갖고 만든 합성사진이 유포되면 당사자는 속수무책으로 그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며 “아이유나 수지, 강민경처럼 주로 연령대가 낮은 가수나 아이돌스타를 상대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상황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우려했다.
명백한 합성사진인 데도 마치 진짜처럼 속이기 위해 덧붙여지는 설명은 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대목이다. 사진과 함께 붙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설명은 또 다른 루머로 확산되기 때문. 이번 설현의 경우 합성사진의 출처로 ‘전 남자친구가 분실한 휴대전화’라는 그럴듯한 설명으로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 피해 속출…대책 마련 시급
설현의 합성사진 피해로 인해 연예계 안팎에서는 ‘딥페이크’(Deepfakes)에 대한 우려 역시 커지고 있다. 아직 국내서는 낯선 용어이지만 할리우드 등 미국에서는 심각한 피해를 만들어내면서 뜨거운 감자로 통한다.
딥페이크는 같은 이름을 쓰는 해외의 한 유저가 유명 할리우드 스타의 얼굴에 포로노 배우의 몸을 합성한 사진을 커뮤니티사이트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원리는 간단하다. 설현처럼 유명한 스타의 사진은 어디서나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만큼 이를 갖고 해당 프로그램에 데이터를 입력, 특정 영상이나 사진을 합성하는 방식이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악용할 수 있고 그만큼 높은 위험성을 내포한 행위다.
할리우드에서는 딥페이크에 따른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엠마 왓슨이나 ‘원더우먼’의 주인공 갤 가돗 등 유명 여배우들이 피해의 직격탄을 맞았다. 음란물 영상이나 사진에 자신의 얼굴이 합성된 채 SNS 등으로 삽시간에 유포되는 식이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가진 유명세로 인해 이런 합성사진과 영상은 국내서도 자주 목격된다. 만연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음지’에서 활동하는 악의적인 누리꾼의 움직임을 차단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국내서도 비슷한 피해가 반복해 일어나면서 딥페이크 확산 우려 역시 커져만 가고 있다. 이런 악의적인 방식을 이용하려는 이들에 의해 유명인은 물론 일반인도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재발방지를 위한 ‘성숙한 의식’에만 기대하기에는 피해가 빈번하고, 그 방법 역시 더욱 악의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은 이번 설현의 합성사진 유포를 기점으로 한쪽에서는 딥페이크에 대한 문제제기 또한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피해 당사자인 연예계 관계자들뿐 아니라 일반 누리꾼 사이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자는 자발적인 움직임도 목격된다.
딥페이크 등 악의적인 합성사진과 영상 유포에 대해서는 보다 강력한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는 연예계 내부는 물론 일반 누리꾼 사이에서도 목소리가 커지는 부분이다. 딥페이크의 피해를 입은 스타들이 그 어떤 상황에서보다 법적인 대책을 총동원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설현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는 19일 “온라인과 SNS,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유포되는 설현의 사진과 관련해 가능한 모든 자료를 취합, 유포 경로를 파악해 고소장을 접수했다”며 “합성 사진 제작은 물론 허위 사실과 함께 이를 유포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강력한 법적 조치를 하겠다. 합성사진을 제작하고 유포한 사람들을 전부 찾아 엄중하게 처벌하고 어떠한 선처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