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에 감춰있는 ‘순백의 알프스’
▲ 흰 눈으로 뒤덮인 언덕과 파란 하늘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는 양떼목장.건초주기를 체험 중인 여행객, 성질이 온순한 양은 처음 보는 사람이 건네주는 먹이도 잘 받아먹는다, | ||
우리나라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강원도 평창, 그중에서도 백두대간의 매봉(1173m)과 곤신봉(1131m) 바로 아래 자리한 선자령은 겨울산행의 특별한 매력이 숨 쉬는 고개다. 태백산이나 덕유산과 같은 기막힌 설화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장쾌하게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파노라마와 눈 덮인 초원의 부드러운 능선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터뜨리게 만든다. 게다가 선자령은 동네 뒷산처럼 등산하기 수월하다. 겨울산행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별 무리 없이 도전할 수 있다. 고갯마루가 해발 1157m로 꽤 높은 편이지만 등산 시점이 840m 높이에 자리한 탓이다.
선자령 등산은 예전 영동고속도로 대관령북부휴게소에서 시작된다. 횡계 시내를 지나 구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보면 커다란 풍력발전기 서너 대가 눈에 들어온다. 신재생에너지전시관이다. 이곳 맞은편이 휴게소. 양떼목장과 선자령 트레킹의 출발점이다.
등산로는 임도로 가는 길과 우측으로 난 소로가 있다. 어느 곳으로 가도 상관은 없지만 소로를 따라 가는 것이 다소 편하다. 선자령 가는 길은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안하다. 약간의 오르내리막이 있을 뿐 급한 경사가 거의 없다. 산을 오른다기보다 그저 눈길을 헤쳐 걷는다는 느낌이 강한 산행이다. 걸음을 옮길수록 멀리 언뜻언뜻 드러나는 능선이 포근하다.
그렇게 30여 분쯤 걷다보면 처음의 임도와 소로가 다시 만나고 잣나무가 등성이 좌우로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하늘을 향해 뾰족뾰족 창을 세운 듯한 잣나무설화가 인상적이다. 멀리 풍차도 보인다. 거센 바람을 받아 제 몸을 휘돌리며 전기를 생산하는 풍력발전기는 선자령의 명물이다. 그 모습이 동화 속 한 장면 같기도 하고 무척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정상에 가까워오면서 쌓인 눈의 양이 점점 많아진다. 눈이 더 쌓였다기보다는 그간 쌓인 눈이 녹지 않은 것이다. 워낙 바람이 세차 이곳에 쌓인 눈은 2월이 다 가도록 그대로다. 출발한 지 2시간 30분 정도 지나자 드디어 선자령 정상이다. ‘백두대간 선자령’이라고 적힌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백두대간 보호구역 설정 1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10월 26일 설치한 것이다. 이 표지석보다 더 정겨운 것은 ‘선자령1157m’라고 적힌 자그마한 옛 표지석이다. 새로 만든 것에 비해 볼품없어 보이긴 하지만 거슬림은 없다.
선자령 정상에서는 강릉 앞바다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밀가루를 뒤집어쓴 것 같은 발왕산, 계방산, 오대산, 황병산 등이 벼루처럼 주위를 둘러치고 있다. 햇빛에 부서져내리는 하얀 설원은 시리도록 아름답다.
▲ 선자령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는 등반객들(위), 선자령 겨울산행. 이곳의 명물인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 ||
하산 길은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것보다 강릉 초막골로 내려가는 것을 추천한다. 이곳에는 눈이 워낙 많이 쌓여있는 데다가 경사 또한 적당해 썰매를 타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곳곳에 등산객들이 만들어놓은 썰매코스가 있다. 미리 비료포대나 마대자루 등을 준비해간다면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다.
이 방향의 하산코스는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아이젠과 스틱이 없다면 다소 위험하므로 반드시 안전장구는 챙겨가야 한다. 하나 더, 선자령 일대는 워낙 바람이 세기 때문에 방한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선자령 산행길에는 양떼목장에도 들러보자. 대관령북부휴게소에서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양떼목장이다. 5분쯤 걸어가면 매표소가 나온다. 이 목장의 원래 이름은 풍전목장. 드라마 촬영 이후 양떼목장으로 바꾸고 관광상품화했다. 예전에 비해 호젓한 맛은 줄었지만 목장길을 따라 거니는 맛이 참 좋다. 번잡한 시간대를 피한다면 꽤 낭만적인 데이트를 즐길 수도 있다.
이곳에서는 겨울이라 비록 초원을 뛰노는 양떼를 보지 못 하는 대신 양들에게 건초주기 체험을 할 수 있다. 가족여행객들이라면 꼭 한 번 들러볼 만하다. 매표한 티켓을 보여주면 건초를 내준다. 순한 양들은 누가 내밀든 먹이를 거부하지 않고 머리를 만져도 도망치지 않는다. 이곳에서 특히 신나는 것은 아이들이다. 폭신폭신한 양털을 만져보기도 하고 양의 울음소리를 흉내도 내는 등 즐거운 추억을 남기느라 정신없다. 목장을 둘러보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하다.
시간이 닿는다면 오대산 월정사도 추천한다. 사찰 자체도 훌륭하지만 정신이 맑아지는 전나무숲길이 있어 더 좋은 곳이다.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번뇌에 찌든 머리와 가슴을 씻고 마음을 다잡자. 음이온이 충만한 이 길에 들어서는 순간 정신이 맑아지고 새로운 기운이 넘쳐흐른다.
여행 안내
★길잡이: 영동고속국도 횡계IC 우회전→선자령·양떼목장 방향 456번 지방도에 합류→대관령북부휴게소
★잠자리: 용평리조트 가는 길에 있는 펜션 ‘대관령가는길’(http://www.pension700.com 033-336-8169)을 추천한다. 로즈힐, 페퍼민트, 라벤더 등 7개 룸으로 구성됐고 분위기가 마치 동화나라 같아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강추’. 양떼목장 근처에는 ‘스카이라인펜션’(http://www.skylinepension.com 033-335-4568)이 있다. 레드, 옐로우, 바이올렛 등 5개 룸이 있다.
★먹거리: 평창에는 눈구경이 아니라 오삼불고기를 먹으러 간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납작식당’(033-335-5477)이 있다. 오징어와 삼겹살을 고추장양념에 버무려 불판에 구워먹는 맛이 일품이다. 칼칼한 물김치로 입가심하면 속까지 다 시원하다. 횡계 시내 새마을금고 옆에 있다. 주 메뉴인 오삼불고기 7000원, 오징어불고기 6000원. 월정사 입구 식당가에 자리한 ‘오대산 산채1번가’(033-333-4604)에서는 반찬 가짓수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무려 30가지가 넘는 산채반찬이 상을 가득 채운다. 이걸 다 어떻게 먹나 보는 사람이 걱정이 될 정도. 곰취, 단풍취, 복취, 누르대 등 희한한 나물들이 가지가지다. 산채정식이 주 메뉴로 2인 이상 주문 가능하고 1인분에 1만 3000원. 산더덕구이(1만 3000원)도 추천할 만하다.
★문의: 평창군 문화관광포털(http://yes-pc.net) 033-330-2753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