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바다가 우리를 부른다
▲ 운무에 뒤덮인 억새밭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맨위). 억새꽃 외에도 오서산은 정상부 기암과 첩첩이 이어지는 능선들이 볼 만하다. 바다를 굽어볼 수 있는 오천성(맨 아래). | ||
오서산은 그리 높지는 않은 산이다. 해발 고도 791m로 높이로 따지자면 어디다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하지만 가을만 되면 오서산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억새 때문이다. 오서산은 억새군락이 곱기로 유명하다. 민둥산이나 영남 알프스처럼 거대한 군락은 아니지만 키 작은 억새들이 정상부 비탈을 곱게 덮은 모습이 장관이다.
오서산 등산은 정암사 아래 상담마을에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주차장에서 왼쪽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오른쪽으로 정암사까지 찻길도 나 있지만 그 길은 단지 정암사 승려와 불자들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이다.
정암사까지는 약 30분이면 닿는다. 그리 험한 길은 아니다. 정암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되었다는 유서 깊은 절이다. 일주문이 없는 대신 범종각이 서 있다. 경내는 단순하고 또 정갈하다. 비구니들이 사는 절답다. 범종각을 지나면 오른쪽에 갈증을 풀어줄 약수터가 있다. 건너편에는 장독대들이 단풍으로 물드는 참나무 아래 고즈넉이 앉아 있다.
목도 축였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산행을 해보자. 등산화 끈을 단단히 조여야 한다. 정암사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로 들어서니 나무를 대어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제법 길고 가파르다. 계단길은 약 100m 넘게 이어져 있다. 계단을 다 오르면 또 다시 가파른 산길이다. 경사각이 40~60도를 넘나든다. 마치 코가 땅에 박힐 것만 같다. 낮은 산이라고 얕본 것이 후회막심이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더니 오서산과 이웃하고 있는 아차산 던목고개 갈림길에 이르자 그나마 낫다.
이곳 갈림길을 지나 다시 30분쯤 산길을 부지런히 오르면 오서산의 정상 능선이 눈앞에 드리워진다. 소나무와 참나무에 가려 있던 시야가 뻥 뚫리고 드러나는 오서산 마루는 마치 소가 옆으로 길게 누워 있는 것 같다.
이 ‘소’의 잔등을 아래쪽에서부터 타고 오르기로 하고 다시 부지런히 걷는다. 몇 개의 작은 기암을 넘자 억새군락이 펼쳐진다. 멀리 정자도 하나 보인다. 오서정이다. 오서산 등산객들이 지친 다리를 쉬어 가라고 2003년 지은 팔각정자다.
오서정을 중심으로 억새군락은 정상까지 1.5㎞ 정도 펼쳐져 있다. 예부터 까마귀가 많이 산다고 해서 까마귀 오(烏)자 살 서(棲)자를 써서 오서산이라고 하는데 요즘엔 까마귀 보기가 쉽지 않다.
▲ 운무에 싸인 억새꽃이 만발한 오서산을 오르는 산행객(왼쪽). 인근 남당항은 요즘 대하가 제철이다. 통통 살이 오른 대하를 굵은 소금 위에 올려 구워 먹는 맛이 기막히다. | ||
구름만 없다면 이곳은 최고의 전망대다. 멀리 안면도에서부터 군산 앞바다에 이르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가야산과 칠갑사도 보인다. 해질녘 특히 이곳은 멋진 장관을 연출한다. 서녘 하늘이 불을 놓은 듯 타오르고 은빛 억새들도 덩달아 하늘의 붉은 물감에 물들어간다.
누군가 아쉬움에 한숨을 쉰다. 그러나 또 누군가는 구름도 좋단다. 운무에 휩싸인 오서산도 운치가 있다며 어서 정상으로 올라가보자고 재촉한다. 구름 속 억새들은 촉촉이 물기를 머금고 있다. 내딛는 발걸음에 억새의 이슬이 털린다. 언뜻 구름 사이로 해가 비치면 그 이슬이 영롱이 빛나며 억새들이 춤을 춘다.
하산은 내원사 방면으로 하거나 또는 월정사, 성연저수지 등 어느 쪽을 택하든 좋다. 오서산은 3개 군이 맞닿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내원사는 같은 홍성군이지만 월정사 방면은 청양군, 성연저수지 방면은 보령군에 속한다.
월정사 방면으로 내려가면 다락골 줄무덤이라는 천주교성지가 있다. 이곳에는 임자를 알 수 없는 무덤 37기가 있다. 구한말 천주교 박해 때 희생된 이들의 무덤으로 청양성당에서 이곳으로 오르는 길을 단장하고 묘비도 세웠다.
성연저수지 방면으로 내려가면 오천항과 오천성이 10분 거리에 있다. 오천성에 오르면 오천항이 내려다보인다. 이 지역은 백제 때부터 중국, 일본 등과 교역하던 곳으로 원래 토성이 있었던 것을 1509년(조선 중종 4년)에 석성으로 다시 쌓았다. 성의 길이는 총 1300m로 큰 편은 아니다. 지금은 장교청, 진휼청, 공해관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오서산 억새여행은 대하구이로 마무리하자. 인근 남당항은 요즘 활기가 넘친다. 살이 통통 오른 대하가 제철이기 때문이다. 천수만 바로 앞에 자리한 남당항은 봄이면 주꾸미, 여름에는 활어, 가을이면 대하, 겨울에는 새조개로 전국의 미식가를 불러모은다.
대하는 날로 초장에 찍어 먹거나 소금구이를 하거나 전골요리를 하기도 한다. 펄떡 뛰는 대하를 날로 먹기란 초보자들에게는 쉽지 않다. 전골은 또 대하 본래의 맛을 보기에 적절치 않다. 가장 좋은 방법은 소금구이다. 석쇠 위에 은박지를 깔고 굵은 소금을 충분히 깐 후 대하를 넉넉히 올려 굽는 것이다. 소금에 구운 대하는 잡균과 잡냄새가 제거된다. 누렇던 대하는 점점 빨갛게 변하고 익어가는 냄새 또한 고소하다. 다 먹고 난 후 그냥 가 버리면 섭섭하다. 머리만을 놓고 눌러가며 바삭하게 구워먹으면 마치 과자처럼 고소하다.
대하구이를 실컷 맛보고도 아쉬움이 든다면 어촌계공판장을 찾으면 된다.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당 3000~5000원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여행 안내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 광천IC→광천 방면 96번 국도→정암사 방면 우회전→오서산 ★먹거리: 가을이 깊어지면서 서해안의 대하도 더 살이 올랐다. 홍성 남당리대하촌에 가면 남당리 전망대 횟집(041-634-4886), 팔도수산(011-323-9874) 등 대하를 파는 집들이 즐비하다. ★잠자리: 광천읍과 홍성읍에 모텔 등 숙박시설이 많다. 남당리 쪽에도 솔밭천수모텔(041-631-0840), 씨월드모텔(041-634-9222) 등 잘 만한 곳이 몇 군데 있다. ★문의: 홍성군 문화관광포털(http://tour.hongseong.go.kr) 041-630-1114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