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가을 품고 오는 겨울 맞는다
▲ 한산 이씨 가정 이곡과 목은 이색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문헌서원(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신성리 갈대밭. | ||
신성리 갈대밭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이 무성한 갈대숲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순천만, 고천암호, 천수만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갈대밭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신성리 갈대밭은 한산면 금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금강 하구 둑에서 부여 방면으로 20분쯤 길을 달리면 닿는 곳이다. 갈대밭은 그 길이가 1㎞가량 되고 폭도 100m가 넘는 곳이 많다. 금강 하구 둑이 건설되기 전에는 갈대밭의 제방 건너편 농경지까지도 전부 갈대로 뒤덮여 있었다.
대부분의 갈대밭이 습지 내에 있는 반면 이곳의 갈대밭은 강가의 마른땅에 넓게 분포돼 있어서 산책하기 좋다. 바깥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갈대밭 안은 포근하다. 2~3m씩 하늘을 향해 높게 자란 갈대들 속에 있으면 바람도 함부로 덤벼들지 못한다.
갈대밭에는 산책로가 마치 미로처럼 나 있다. 어쩌면 애당초 길이라는 것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누군가 갈대밭을 헤쳐 지나간 것이 길이 되기도 한다. 산책하다 보면 길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흔적이 갈대밭 이곳저곳을 향하고 있다. 사람들은 호기심에 그 흔적 너머를 궁금해 하며 들락날락거린다. 흔적에 지나지 않던 것이 결국 길이 되고 마는 것이다.
갈대의 서정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주말보다 주중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주말이면 갈대밭 위쪽 제방 위에 자동차들이 빽빽이 들어차고 다소 혼잡한 느낌마저 든다. 주중이라면 갈대밭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조용히 갈대밭을 걸으며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갈대밭 산책을 하다보면 주기적으로 강물이 밀려와 강둑을 때리는 소리, 갈대가 저희들끼리 부딪혀 서걱거리는 소리, 갈잎이 바람결에 떠는 소리, 갈대숲 속으로 숨어든 철새들의 울음소리 등 온갖 자연의 소리가 들려온다. 거대한 도시 속에서 소음에 길들여져 있던 귀가 비로소 진짜 소리를 접하는 것이다. 자연이 빚어내는 놀라운 하모니를 귀 기울여 듣는 것만으로도 혼탁하던 정신이 맑아진다.
신성리 갈대밭은 갈대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군데군데 핀 갈대꽃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곳이다. 갈대꽃은 해 지기 한두 시간 전쯤이 가장 예쁘다. 갈대꽃의 생김새야 어느 시간이나 매한가지지만 그 때의 빛이 꽃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 왼쪽은 서천 이하복 가옥.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우리나라 전통 초가로 민속박물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유물이 있다. | ||
한산모시는 잠자리 날개처럼 섬세하고 가늘어 여름철 옷감으로는 최고로 친다. 한때 ‘저산팔읍’이라고 해 판교, 임천, 양화 등지에 모시장이 섰는데 지금은 한산모시장이 유일하다. 1일, 6일, 11일, 16일 식으로 매 1일과 6일에 닷새 간격으로 장이 서는 모시장에서는 세계 최고의 모시들이 흥정에 붙여지며 팔려나간다.
한산면에는 여행객들을 위한 모시 체험공간이 마련돼 있다. 1993년 개관한 한산모시관이 그것으로 한산모시를 처음 생산했던 건지산 기슭에 모시각, 전통공방, 전수교육관, 한산소곡주 제조장, 토속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전수교육관 내 전시실에는 모시의 역사를 전해주는 고증 서적과 베틀, 길쌈 도구, 모시 제품 등이 전시돼 있다. 전통공방에서는 모시풀 재배에서부터 모시짜기까지의 공정을 재연한다. 전수관 1층 전시실에는 한산모시를 소재로 한 모시옷 패션쇼가 열린다. 모시 작품도 상설 전시된다.
한편 전시관 인근에 자리한 모시마을은 최근 이색적인 단장을 했다. 충남애니메이션고등학교 학생들이 곳곳에 벽화를 그려놓은 것이다. 한산 소곡주를 주제로 한 이야기 벽화, 한산시장 사람들의 캐리커처, 만화적인 상상력을 발휘한 화려하고 예쁜 꽃들이 허전하던 벽을 채우자 이 마을은 금세 명소가 되었다.
서천은 고려 말 충신으로 ‘삼은’ 중 하나였던 목은 이색의 고향이기도 하다. 서천은 목은과 떼어 생각할 수가 없는 곳이다. 우선 한산면 종지리에는 그의 후손으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이상재 생가가 있다. 초가 두 채로 이뤄졌는데 한 채는 생가, 또 다른 한 채는 유물전시관으로 서적을 비롯한 역사적 유품과 유물 244점이 보관돼 있다.
기산면 신산리에는 이하복 가옥이 있다. 국가지정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될 정도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는 건물이다. 19세기 후반 지어진 집으로 모두 초가다.
기산면 영모리에는 문헌서원이 있다. 한산 이씨 가정 이곡과 목은 이색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으로 이색의 신도비와 영정 그리고 문집 목판각 975권이 보관돼 있다. 현재 문헌서원, 이상재 생가, 이하복 가옥에는 문화해설사가 상주하면서 방문객들에게 역사와 문화 등을 친절히 설명해준다.
여행 안내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 서천IC→4번 국도 서천읍→한산 방면 602번 지방도→부여 방면 29번 국도→한산모시관 지나 우측 613번 지방도→이정표 따라 좌측 다리 건너 직진→신성리 갈대밭
★먹거리: 서천읍에 순두부를 잘하는 집이 있다. 서천여자정보고 옆에 자리한 향토식당(041-952-4186)이 그곳이다. 겉절이, 오래 묵힌 깍두기, 양파 간장절임, 콩나물무침 등 반찬은 그냥 소박하다. 하지만 순두부찌개는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워 입에 감기며 손두부는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두부는 그날 팔 양만큼만 새벽에 만든다. 손님이 많은 날은 구경조차 못할 수도 있다. 순두부찌개 5000원, 손두부 3000원.
★잠자리: 갈대밭 주변에는 숙박업소가 없다. 가까운 한산면으로 나오면 건지산장(041-951-9442), 서광장(041-951-0817), 귀빈장(041-951-0424) 등이 있다.
★문의: 서천군청(http://www.seocheon.go.kr) 문화관광과 041-950-4224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