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7권 날짜별 이름·금액 빼곡히…피의자 측 “허무맹랑” VS 피해자 측 “수사 시급”
시청 접대비로 300만 원을 지출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건축과장 접대명목으로 돈을 지출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사기 피의자 변 아무개 씨는 지난 2017년 농수산물 유통단지를 리모델링해 농수산물 도매 시장을 운영하겠다면서 출자자들을 모집했다. 그러나 출자자들로부터 수억 원씩의 자금을 출자 받은 이후에도 사업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뒤늦게 확인해보니 사업을 시행할 자금도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였고, 출자 받은 돈은 사업과는 관련 없는 곳에 대부분 지출된 후였다. 피해자들은 피의자 변 씨가 처음부터 출자자들에게 농수산물 판매업을 운영하게 해줄 의사나 능력이 없었음에도 출자금을 모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출자금 외에도 새로운 사업장에서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기존 사업을 정리하는 바람에 금전적인 피해가 막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피해자는 사건 이후 통신비를 내지 못해 휴대전화가 정지될 정도로 생활고를 겪고 있다. 현재까지 전체 피해자 수나 피해액은 밝혀지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변 씨 측이 개별적으로 접촉한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 의원까지 동원은 어렵다는 메모. 자신의 사업에 정치권 인사를 개입시키려 한 정황이다.
김00가 00시청을 접수했다는 내용의 메모.
피해자들은 변 씨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앞서 언급된 장부를 발견했다. 총 7권 분량인 장부는 변 씨가 2012년부터 2015년까지의 행적을 날짜별 메모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장부에서는 공무원과 검찰, 지역 정치인들의 이름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피해자 A 씨는 “장부는 변 씨의 사무실에서 발견한 것으로 몇 년 전 누구와 점심 먹은 일까지 적어 놨다. 장부에 적힌 사실이 거짓일 리가 없다. 필체 역시 변 씨와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A 씨는 “2015년 이후에는 변 씨가 장부를 컴퓨터로 작성해 전자파일 형태로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장부에 대해서도 수사를 추가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부를 직접 살펴봤다. ‘300만 원 시청 접대비’ ‘건축과장 접대명목’ ‘인천 검찰 500만 원 송금’ ‘김 의원 소개비 240만 원’ ‘최 의원까지 동원 어려워’ ‘(경찰)○○청과 5000만 원 물건 주는 것으로 협의’ 등 정관계 로비로 의심할 수 있는 문구들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2012년 3월 19일자 메모에서는 ‘김 ○○ ○○시청 접수’라며 특정 시청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을 자랑하듯 써놓은 문구도 발견됐다.
장부에서는 특히 소개비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는데 A 씨는 “변 씨가 브로커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소개비 명목의 돈을 주고 정관계 인사들과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브로커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수차례에 걸쳐 소개비 명목으로 돈을 보냈다는 내용이 장부에 나온다”고 말했다.
A 씨는 “이름과 직책이 장부에 기재되어 있어 공무원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름만 적혀 있어 추적이 어려웠다”면서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지만 장부에 적혀 있는 이름들을 검색해보니 당시 변 씨가 사업하고 있던 지역 공무원들과 이름이 같았다.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도 있지만 이런 부분은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부에는 시청 공무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수백만 원 단위의 금액을 보냈다는 내용이 여러 차례 적혀 있었다. A 씨는 “장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히 돈 몇 백만 원만 전달한 것이 아니라 공무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에게 땅이나 지분을 넘긴 것으로 의심되는 메모들도 발견됐다”면서 “변 씨 측은 이 같은 의혹에 침묵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 B 씨는 “변 씨는 자기도 피해자라며 돈이 없다고 하는데 들리는 이야기로는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투자자를 모집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변 씨에 대한 수사를 빨리 진행하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아직까지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B 씨는 “변 씨가 정말 사기를 치려고 투자금을 모은 것인지 어쩌다 사업이 흔들리게 된 것인지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투자금을 받아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은 분명한 횡령 아닌가. 그럼에도 수사기관은 아직까지 뒷짐만 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A 씨도 “검찰에 문의를 해보니 변 씨가 우리 사건뿐만 아니라 여러 건의 고발을 당했다고 들었다. 왜 변 씨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면서 “변 씨의 사기 전과를 조회해달라는 요구도 묵살당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피의자인 변 씨는 “재판 중이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출자금을 개인적으로 가져다 쓴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저도 손해를 본 것이 많다”면서 사기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장부에 대해서는 “내 사무실을 침입해서 불법적으로 가져간 것 아니냐. (장부에 로비 내역이 적혀 있다는 주장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런 사실이 없다. (자신 있으면) 차라리 고발을 하라고 해라”라고 말했다. 왜 장부에 그런 내용을 적은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런 거까지 일일이 답할 수는 없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했다.
피해자 측은 “변 씨가 버리고 간 캐비닛에서 발견한 장부다. 무단 침입해서 확보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변 씨는 피해자들의 출자금을 이용해 다른 사업을 추진하면서 큰 이익을 본 것으로 알고 있다. 변 씨도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은 황당하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