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추정 원칙 탓 의원실 유지…보좌진 급여 합치면 어마어마한 예산 낭비
여기에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소속 민병두 의원은 미투 폭로가 터진 후 의정활동을 중단했지만 사퇴서가 수리되지 않아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으로부터 1억 원의 특수활동비를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1월 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국회의원이 구속돼도 의원직과 의원실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아는 일반인은 많지 않다. 국회의원은 모두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지난 2016년 기준으로 4급 보좌진 연봉은 7750만 9960원, 5급 6805만 5840원, 6급 4721만 7440원, 7급 4075만 9960원, 9급 3140만 5800원이었다.
의원 1인당 보좌진 9명(인턴 2명 포함)의 연봉 합계는 4억 원을 훌쩍 넘는다. 의원실은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므로 의원이 없으면 사실상 기능이 멈춘다. 20대 국회에서 추가로 구속되는 의원들이 나오고 구속기간이 길어지면 한 해 수십억 원의 예산이 낭비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의원 4~5명이 구속되는 일은 매 기수마다 반복되고 있다. 지난 19대 국회의원 중 구속영장이 청구된 의원은 새누리당 조현룡, 정두언, 박상은, 송광호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신계륜, 김재윤, 신학용, 박기춘 의원, 그리고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현영희 전 무소속 의원 등 10명이다. 이 중 김재윤, 박상은, 이석기, 조현룡, 박기춘 의원 등 5명이 임기 중 구속됐다.
예산 낭비가 예상되지만 국회 사무처 측은 무죄추정의 원칙 때문에 의원실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저축은행에서 수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새누리당(한국당 전신) 정두언 의원은 재판을 받는 도중 10개월의 형을 다 채우고 만기 출소 했지만 파기환송심에서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던 사례도 있다.
하지만 일반 공무원들과 비교하면 국회의원은 특혜를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반 공무원도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신분을 유지하지만 구속기간이 길어지면 공무원 급여규정에 따라 기간별로 급여를 차감해 지급받는다. 이후 최종 무죄판결을 받을 경우에만 그동안 차감된 급여를 모두 소급해 지급받는다.
반면 국회의원은 공무원 급여규정 적용을 받지 않는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국회의원은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리 오랫동안 구속되어 있어도 급여가 차감되지 않고 매달 똑같은 급여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국회의원의 월 평균 세비는 1100만 원가량이다.
해당 국회의원 보좌진들도 마찬가지다. 의원 구속으로 업무량은 크게 줄겠지만 법의 심판을 받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급여에 영향은 없다. 일반 정부기관의 경우에는 해당부서가 맡은 업무량이 줄면 소속 공무원을 인력이 필요한 다른 부서에 재배치한다. 이에 대해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보좌진들은 의원이 뽑은 별정직 공무원이기 때문에 그런 조치도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국회의원이 구속된 후 의원실에 남은 보좌진들은 어떤 업무를 하고 있을까. 평일 오후 최경환 의원실을 찾았을 때 보좌진들은 대부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최경환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님이 구속됐다고 해서 직원들이 놀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출퇴근도 모두 정상적으로 하고 있다”면서 “의원님이 구속됐지만 지역구 관리도 계속해야 되고 보좌진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우현 의원실 관계자도 “지방선거가 얼마 안 남아서 보좌진들이 지역구 선거를 돕고 있다. 의원님이 구속되었지만 의견을 구해서 옥중 법안발의도 할 수 있다. 구속 상태에서 법안 발의를 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아서 안 하고 있는 것”이라며 “의원님이 나오시면 바로 의정활동에 복귀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전직 보좌진은 “사실 의원이 구속되면 보좌진들의 업무량이 크게 줄어드는 것이 사실일 것”이라면서 “상반기에는 딱히 바쁜 일정이 없어서 다른 의원실과 비슷하겠지만 하반기 국정감사나 예산 심사 앞두고는 다른 의원실에서 모두 부러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직 보좌진은 “나름대로 일은 하겠지만 의원이 구속되면 의원실은 마비된다고 보면 된다. 의원 없는 의원실이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봐야 속된 말로 ‘허공에 삽질’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편 새누리당은 지난 2012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겠다면서 국회의원이 구속, 출석정지 등으로 의정활동이 불가능한 기간 세비를 반납하는 방안을 공개적으로 검토했으나 결국 관철되지 못했다.
정종섭 한국당 의원은 지난 2016년 국회의원이 구속되는 경우에는 그 기간만큼 수당 등(수당, 입법활동비, 특별활동비)이 지급되지 아니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까지 계류 중이다. 정 의원은 국회의원이 각종 범죄에 연루되어 구속되는 경우 사실상 그 기간 동안에는 의정활동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당 등이 아무런 제한 없이 지급되는 것을 개선하자는 것이라고 법안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일각에선 전반적인 국회의원 근태 문제도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대 국회 임기가 반환점을 돈 가운데 국회 본회의 84회 동안 서청원 한국당 의원은 46회나 결석(청가, 출장 등 제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석률 상위 20명 중 이해찬 민주당 의원을 제외한 19명이 보수야당 의원들이었다.
본회의 결석왕을 차지한 서청원 의원은 법안 발의 실적도 저조했다. 20대 국회 시작 후 서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단 3건이었다. 원혜영 민주당 의원은 지난 2016년 회기 중 전체 회의일수 4분의 1 이상을 무단결석하면 해당 회기 특별활동비 전액을 삭감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역시 계류 중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