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부위 ‘노동력 상실’로 인정 안 돼…연예인 직업 특성상 기대수입 따지기도 요원
지난 4월 20일 지방종 의료 사고 소식을 알린 배우 한예슬. 상단의 흉터가 지방종 수술 과정에서 생긴 화상 흉터다. 한예슬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 4월 20일 한예슬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한 장의 사진을 올렸다. 거칠게 꿰맨 듯한 두 개의 흉터 자국에 대해 “지방종 제거 수술을 받다 의료 사고를 당했다”고 설명했다. 수술은 지난 4월 2일에 진행됐으며, 한예슬은 의료 사고가 발생한 뒤 2주 동안 병원 측에서 어떠한 보상 논의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지방종은 성숙한 지방세포로 구성된 양성종양으로 몸통, 허벅지, 팔 등에서 주로 발생한다. 통증은 없지만 그대로 놔두면 거대 지방종으로까지 자랄 수 있어 간단한 외과 수술로 제거한다. 크기가 클 경우에는 전신마취 후 제거하는 경우도 있다.
한예슬의 인스타그램이 뜨거운 관심을 받자 수술을 진행했던 강남 차병원 측이 곧바로 입을 열어 의료 사고 과실을 인정했다. 차병원 측에 따르면 인두를 이용해 한예슬의 지방종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화상이 발생했다. 화상이 발생한 부위는 한예슬의 사진에서 동그랗게 꿰매진 부위로 왼쪽 겨드랑이 아래 옆구리다.
한예슬의 수술을 집도했던 강남 차병원 이지현 교수는 “환자가 배우이기 때문에 지방종이 위치한 부위가 아니라 상처를 가릴 수 있는 위치를 통해 수술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본래대로라면 간단하게 지방종이 위치한 부위를 절개해 제거할 수 있는 수술이었다. 그러나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감안해 흉터 부위가 최소한으로 보일 수 있는 위치를 찾아 수술을 진행했다는 것.
그런데 화상 발생 직후 긴급 봉합 수술에 들어갔지만 치료 과정에서 수술로도 봉합되지 않은 부위가 확인됐다. 이 때문에 화상성형 전문 병원으로 동행해 치료를 부탁했다고도 덧붙였다. 한예슬은 지방종 수술 후 이틀 정도 차병원에 입원했다가 현재는 화상성형 전문 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예슬의 인스타그램 게시로 사건에 불이 붙자 이 교수는 직접 의학전문보도채널 ‘비온뒤’에 출연, 의료 사고 과실을 인정했다. 그는 수술 당일 한예슬에게도 직접 의료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렸다고도 밝혔다. 특히 지난 4월 23일 한예슬이 심하게 괴사된 피부 사진을 다시 올리자 차병원 측은 두 번째 공식 입장을 내놓고 과실을 인정하며 치료에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수술을 진행한 강남 차병원의 1차 공식 입장 발표 후 두 번째 사진을 올린 한예슬. 수술 부위가 심하게 괴사된 것이 확인됐다. 한예슬 인스타그램 캡처.
이처럼 대형 병원에서 직접 의료 사고를 인정하는 것은 이제까지 의료계의 의료 사고 사례에 비춰 이례적이다. 실제 과실이 발생하더라도 1차적으로 부인해야 이후에 이어질 재판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의료 사고 관련 재판에서 피해자가 완전히 승소할 확률이 약 1% 남짓이라는 통계도 이런 이유에서 기인한다. 환자로서는 복잡한 진료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고 재판에 임할 수 없으며, 실제 수술에 참여한 의료진들이 기록을 남기지 않았거나 과실 자체를 전면 부정한다면 재판부로서도 환자의 주장을 들어주기 어렵다.
그런 만큼 차병원이 직접 의료 과실을 인정하고 피해 지원까지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에 대중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유명한 연예인이 피해자이기 때문에 발 빠르게 대처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예슬에게 제공될 피해 보상액이 그의 이름값에 비하면 턱없이 적기 때문에 빠른 인정과 사과가 이어졌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의료 사고로 인한 피해 보상액을 산정할 때 노동력의 상실 여부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대외 업무가 많은 피해자의 경우, 신체적으로 큰 부상이 아닌 단순 외모 추상(추한 모습)에 그치더라도 노동력 상실을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외모 추상 장해에 따른 노동력 상실률은 최대 15%가량이 인정된다. 이마저도 모든 상실률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손해의 공평 타당한 부담이나 추상의 정도, 향후 치료 과정 등을 참작해 3~5% 정도만 인정되기도 한다. 실제로 2007년 치과 진료를 받던 방송사 여직원이 의사의 실수로 얼굴에 5cm가량의 상처를 입은 사건에서 재판부는 외모 추상에 따른 노동력 상실을 인정하면서도 상실률은 3%로 제한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실제 업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개된 부위에 한한다는 한계가 있다. 장해 판정 기준에서 외모는 이목구비를 포함한 얼굴 전체와 머리, 목으로 한정된다. 또 ‘추상 장해’라는 용어는 성형수술 후에도 영구히 남게 되는 흉터를 말하며, 재건수술로 줄일 수 있는 경우는 추상에서 제외된다.
한예슬 인스타그램 캡처.
이어 “화상으로 인한 피부의 변색 등도 추상에 포함되기는 하나, 이것을 재건 수술비를 제외하고 그가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높은 배상액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4월 24일 ‘비온뒤’에 출연한 의사 출신 이용환 변호사도 “(한예슬의 사고는) 노동력 상실에 포함되는 추상이 아니어서 노동력 상실이 0%이므로 치료비 손해와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만 배상을 지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추상 장해 기준을 떠나더라도 ‘한예슬의 이름값’만큼의 손해를 배상받는 것 역시 요원하다는 의견도 있다. 앞선 변호사는 “연예인이라는 특수 직업상, 일반적인 피해자들의 피해 보상 기준이 되는 월급액이나 월실수입액, 평균임금이 소송에서 그대로 인정되는 경우가 드물 것”이라며 “만일 한예슬이 사고 발생 당시 CF나 방송 출연 등 수익 발생 계약을 체결한 상황일 경우에는 객관적인 손해액과 기대 수입을 산정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았다면 만족스러운 배상을 받아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근 방송 활동을 하지 않은 한예슬의 기대 수익을 정확하게 산정해 요구하는 것이 어려우며, 이번 의료 사고가 그의 향후 연예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거나 끼칠 것이라는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힘들다. 별도로 위자료를 추가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노동력 상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위자료 역시 노동력 상실 여부를 따져 산정되는 이유에서다.
한편 법조계에서 산정한 한예슬에게 지급될 수 있는 최고 손해배상액은 약 5000만 원가량이다. 아직까지 한예슬과 차병원 양측 모두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져 향후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