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다가오는데 ‘사공’은 비실
▲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위 사진)과 한나라당 내 개혁성향의 초선 의원 모임 ‘민본21’이 올 상반기에도 조기전대 개최 등 쇄신안을 주장했다. | ||
먼저 이들은 세종시 수정안 관철 좌초를 전제로 내년 3월에 강력한 당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 지도부 등 주류 일각에서 내년 3월 조기전당대회 무용론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다”라며 강력한 반론을 제기한다. 또한 내년 조기전대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나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 등 가용한 모든 전력을 총동원해 당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한나라당 일부 ‘탈레반’(소장개혁파) 세력들이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주저앉을 경우 지난 노무현 정권의 레임덕 후유증을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침몰을 보고도 손 한 번 쓰지 못한 타이타닉호의 몰락처럼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집권 여당을 ‘탈레반’들이 과연 구할 수 있을까.
“세종시 정국에서 당의 상황은 너무나 위선적이다. 실권도 없는 ‘승계직 대표’가 복잡한 현안들에 대해 거의 교통정리를 못하고 있지만 누구 하나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내년 지방선거도 정몽준 대표 체제로 치러야 한다고 말한다. 이대로 가면 지방선거는 물론 2012년 대선 승리도 어림없다. 지금은 여권 전체의 각성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한나라당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세종시 정국에서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는 여당의 ‘식물정치’에 대해 할 말이 많다. 하지만 공개적 언급은 되도록 자제하고 있다. 일단 정부의 수정안 초안이 나올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는 내부 입장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탈레반’을 자처하고 있지만 대부분 ‘커밍아웃’은 꺼리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뻔히 침몰이 보이는 현 세종시 정국 상황을 두고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라며 속내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
기존 소장파 의원 가운데 일부와 민본21의 초선 의원 일부가 중심이 된 이들은 당의 선명개혁 노선을 이끄는 ‘탈레반’을 자임하며 여권의 현 정국 상황 대처 방식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먼저 당내 ‘탈레반’ 의원들은 역대 정권의 지방선거 패배 학습효과를 분명히 인식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에 지방선거를 치렀다가 모두 야당에 패배했다. 당시 선거는 모두 현직 대 통령의 지지도가 낮은 상황에서 치러지면서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 대한 회고적 평가로 인해 야당이 승리할 수 있었다. 특히 지난 2006년 5월 31일 치러진 지방선거 결과는 2006년 3월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31.8%였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는 20% 안팎 정도에 머물렀기 때문에 이미 여당의 패배가 예견되고 있었다. 그러나 5·31 지방선거는 예상보다 훨씬 충격적인 열린우리당의 대참패로 끝이 났다.
이런 점을 여당의 ‘탈레반’ 의원들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들은 역대 정권이 중간평가 성격이 강한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정국 장악력을 상실, 야당에 끌려 다니며 개혁 작업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지방선거 후유증 학습효과’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현재 지지율이 높은 편이다(일부 여론조사에서는 50%에 육박한다는 결과도 있음). 이 지지율이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어질 경우 역대 정권에서 누려보지 못했던 선거 승리도 기대된다. 하지만 현재의 당 체제로는 어림도 없다. 면모를 쇄신해야 한다. 역대 정권에 비해서 현재의 성적이 좋기 때문에 개혁의 진정성을 보여준다면 분명히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해 이명박 정권의 개혁 정체성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이 제안하는 것이 내년 3월 조기전당대회의 개최와 당 대표의 젊은 피 수혈을 통해 지방선거 정국을 정면 돌파하자는 안이다. 하지만 당의 권력 구도를 재편하는 조기전당대회의 경우,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당 지도부와 골치 아픈 당의 문제를 ‘적당히’ 관리하려는 청와대의 소극적 자세 때문에 내년 3월 개최도 물 건너가는 분위기가 포착되고 있다.
현재 여당 내에는 세종시 수정안 좌절론과 함께 지방선거 패배론도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 관철이 무산될 경우 이명박 정권의 신뢰도에 금이 가면서 지방선거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최근 당 지도부 등 친이계 주류 중심으로 나오는 ‘조기 전당대회 무용론’도 결국 이 같은 패배론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어차피 질 선거에 무리하게 당력을 총동원해 애써 교체한 지도부를 ‘1회용’으로 희생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지도부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정치 일정상으로도 내년 3월 조기 전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1월에 세종시 수정안 초안이 나오고 2월에 어떻게든 처리가 될 텐데 3월에 전대를 해서 6월 지방선거를 준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차라리 선거 결과에 따라 전당대회를 해서 당 면모를 일신하는 게 현실적인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주류인 친이 세력에서 내세울 만한 후보가 마땅치 않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당내 소장파 사이에선 현 지도부의 이러한 정치적 인식은 매우 안이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선거를 준비하는 데 패배를 전제로 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는 것이다. 당에서 대표가 될 만한 모든 정치인들이 내년 조기전당대회에 총출동해 제2의 도약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게 ‘탈레반’의 주장이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 등이 모두 그 대상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으로 이어질 것이 예상되는 지방선거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조기전대를 해야만 역대 정권이 지방선거에 패한 뒤 물 먹은 솜처럼 늘어지며 급속하게 무기력해졌던 시행착오를 예방할 수 있다는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친이 직계와 소장파 등이 뒤섞인 ‘탈레반’ 내부에서도 조기전당대회를 주장하는 배경이 각 계파의 시각과 얽혀 있어 향후 관철 여부는 높지 않아 보인다. 먼저 일부 친이계 초선 의원들은 “임시국회가 끝나고 세종시 문제가 해결되면 조기전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다. 당 지도부의 면모를 일신해야 내년 지방선거가 겨우 해볼 만한 게임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친이계의 한 핵심 의원이 사석에서 “반드시 3월 조기전대를 실현시키겠다”라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친박계가 긴장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기에는 현재 ‘골프장 게이트’로 검찰 조사 대상에 오른 공성진 최고위원의 ‘낙마’를 전제로 조기전대 필요성이 다시 부상할 것이라는 이유도 덧붙여진다.
조기전대를 주장하는 친이 직계 일부는 “지방선거 전에 당권을 다시 잡은 뒤 공천권을 적극 행사해 계속 당내에 영향력을 유지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세종시 수정안에 적극 반대한 친박 의원을 선별해 출당 조치한다는 강경책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탈레반’은 내년 3월에 조기전대를 추진하면서 원희룡 남경필 정두언 의원 등 ‘젊은 피’가 대거 당권 경쟁에 뛰어 들어 ‘늙고 무기력한’ 여당을 ‘젊고 역동성 있는’ 소장파 중심으로 일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초선 중심의 민본21도 가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본21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정치권 전체가 갈등 상황이어서 쇄신론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 예산과 세종시 문제가 일단락되면 (내년 초쯤)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재선 이상 중진의 소장파 본류와 민본21이 중심이 돼 후보 단일화를 이뤄낸다면 향후 당권 경쟁에서 분위기 쇄신을 위한 선취권을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양대 세력의 연대가 주목된다.
여당의 ‘탈레반’ 세력이 조기 전대를 주장하는 또 다른 배경은 ‘실권과 장악력’이 거의 없는 정몽준 대표 체제로 지방선거를 치르려는 것 자체를 ‘위선적인 해악행위’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당 권력구도가 엄연하게 친이와 친박으로 나뉜 상황에서 조직기반이 전혀 없는 정 대표가 갈등을 해결할 적임자가 아님에도 계속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겠다는 것은 암에 걸렸음에도 손 한 번 쓰지 않고 죽기를 기다리겠다는 패배주의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집권 여당을 보는 청와대의 시각도 한몫하고 있다. 청와대는 기본적으로 “여당이 항상 분열하고 갈등만 부추길 뿐 청와대의 개혁 정책을 전혀 추동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적 지지율로 한 번 돌파해보자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당은 박근혜 전 대표도 선거 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고, 친이-친박의 갈등만 노정할 것이기 때문에 선거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인식도 저변에 깔려 있다. 그래서 차라리 현재의 ‘식물체제’인 정몽준 대표를 그대로 둬 여기에서 더 악화되지 않는 수준으로 유지, 지방선거를 ‘대충’ 맞겠다는 계산인 셈이다.
▲ 이명박 대통령(왼쪽)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 ||
하지만 친이 세력 일부는 여전히 “현재 지도체제로 갔다가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완패하고, 이후 당의 주도권이 박 전 대표 측에 통째로 넘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는 전언이다. 내년 3월 조기전대를 개최해 당을 친이 위주로 재편하지 않으면 지방선거 패배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박근혜 전 대표가 당을 통째로 접수할 명분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여전히 내년 7월 재보선을 통해 정치권에 돌아오는 시나리오가 유력했던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조기복귀 필요성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싹트고 있다.
여당의 ‘탈레반’임을 자임하는 세력들은 여권 주류가 지방선거 패배주의론의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손을 쓰지 않는 것은 분명한 책임 방기라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탈레반’의 ‘봉기’가 성공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 과거 한나라당에서 소장파(16대 국회에서는 남경필 김영선 김부겸 의원 등이 주축이 됐던 ‘미래연대’와 박형준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등이 참여했던 17대 국회의 ‘새정치수요모임’ 등이 대표적임)로 활동했던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계파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지만 당시에는 정치적 위상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현재의 ‘탈레반’들은 조직적이고 전략적인 접근보다는 계파 논리와 이상론에 사로잡혀 당내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오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여당이 세종시 정국에서 계속 헤매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빠질 경우 이명박 대통령이 탈레반의 손을 잡고 세종시 수렁에서 탈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행보는 여전히 주목 대상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