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걸쳤다하면 대유행 ‘롤모델이자 완판녀’…주민들도 블루진 입고 하이힐 신고 ‘변화의 바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가 최근 들어 김 위원장 못지않은 화제의 인물로 급부상했다. 단아하면서도 기품있는 이미지를 통해 국제 무대에서 북한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평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동안 베일에 싸인 인물로 묘사되어 왔던 리설주는 이번 방중 및 방한 회담을 통해 국제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함과 동시에 전세계에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게 됐다. 이 가운데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것은 리설주의 탁월한 패션 감각이다.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리설주의 패션은 어딜 가나 화제가 되고 있으며, 이런 분위기는 비단 해외뿐만 아니라 자국인 북한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스타일 아이콘’으로 떠오른 리설주의 의상과 액세서리는 북한 여성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완판이 될 정도로 유행이 되고 있으며, 명품 브랜드의 경우에는 짝퉁까지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4월 27일 리설주 여사가 파스텔톤의 산호색 투피스를 입고 판문점을 방문했다. 국내외 언론은 평화와 화합 무드에 어울리는 탁월한 패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리설주 여사와 김정숙 여사.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파스텔톤의 의상 조합은 ‘소프트 파워’를 상징하는 북한의 미묘한 플레이를 잘 나타냈다고 말했다. 또한 이런 문화적 영향력은 지금까지 북한이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았던 전술이라고 말하면서 이제 김정은 위원장도 퍼스트 패밀리에 대한 이미지를 통해 얻는 이점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가령 미국의 멜라니아 트럼프, 프랑스의 브리짓 마크롱, 중국의 펑리위안 등의 경우처럼 세련된 패션 감각으로 남편의 정치적 지위를 강화하는 한편, 자국의 디자이너 의상을 선택함으로써 내수 경제를 진작시키는 영부인의 역할이 그렇다는 것이다.
리설주의 패션은 이번 판문점 만찬 때처럼 화려하고 밝은 색상에 허리 라인은 잘록하게 들어간 단아하면서도 세련된 투피스 혹은 원피스가 주를 이룬다. 옷깃에는 이례적으로 김일성이나 김정일 배지 대신 화려한 모양의 브로치를 착용하고 있다.
이런 리설주의 패션 감각은 지난 3월, 2박 3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단연 화제였다. 당시 총 세 벌의 의상을 입었던 리설주는 첫날은 무릎 길이의 황갈색 투피스에 하이힐을 착용하고, 나비 모양의 브로치로 포인트를 줬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프릴 달린 칠부 길이의 소매와 하이넥 스타일이 인상적인 크림색의 투피스 정장 차림을 선보였으며, 셋째 날에는 라임 그린색 원피스에 흰색 상의를 걸쳐 입고 꽃모양 브로치로 멋을 부렸다.
이런 리설주의 패션에 대해 중국 누리꾼들은 즉각 반응을 보였다. 한 누리꾼은 리설주의 세련된 감각에 대해 찬사를 보내면서 “리설주는 상당히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김여정보다 더 ‘퍼스트 레이디 외교’를 잘 수행할 것 같다”고 말했는가 하면, 또 어떤 누리꾼은 “시진핑 부인 펑리위안보다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홍콩의 패션 디자이너인 윌리엄 탕은 “리설주의 패션 감각은 미묘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보수적이진 않다”고 평하기도 했다. 또한 탕은 “리설주의 패션은 다소 시대에 뒤떨어지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설주가 전체주의 국가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인상적인 건 사실이다”라고 덧붙였다.
리설주의 스타일 가운데 또 주목할 점은 그녀가 해외 명품 브랜드를 즐겨 착용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 역시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자국민들에게는 애국심을 고취시키고자 국산품 애용을 강조하면서 정작 김 위원장 부부는 해외 명품을 즐긴다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영국의 ‘더선’은 리설주가 특히 애용하는 브랜드는 샤넬, 크리스티앙 디오르, 프라다, 구찌, 레드 발렌티노, 티파니앤코 등이라고 말했다. 또한 자녀들에게는 독일 분유인 ‘압타밀’을 먹이고 있으며, 아기 침대는 전부 미국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한번은 리설주가 김정은의 스시 담당 셰프인 겐지 후지모토에게 디오르 가방을 선물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당시 리설주를 만났던 후지모토는 “리설주는 아주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목소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리설주는 패션 리더다. 특히 젊은 북한 여성들 사이에서는 롤모델이 됐다”라고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4월 초에 촬영된 옥류관 앞 평양시민들. 연합뉴스
북한 여성들 사이에서 리설주 열풍이 불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2012년부터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리설주가 북한 여성들 사이에서 패셔니스타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하면서 리설주가 착용하는 서양 스타일의 의상과 가방 등은 새로운 패션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한 북한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이는 과거 서양 패션을 ‘타락한 자본주의 부르주아들의 겉치레’라고 치부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이런 북한의 변화에 대해 패션 전문가들은 인스타그램이나 패션잡지가 없는 북한에서 이런 변화는 분명 ‘리설주 효과’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가령 한때 리설주가 즐겨 입었던 물방울 무늬 투피스는 원단이 없어서 못팔 정도로 북한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리설주 효과’에 대해서 “리설주는 패션 리더다. 특히 젊은 북한 여성들 사이에서는 롤모델이 됐다”라고 말하면서 “한 탈북 여성은 리설주가 TV에 나올 때마다 북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리설주가 어떤 의상을 입고 나왔는가 하는 것이었다”라고 전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북한에서 이런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거리에는 장식이 화려하지 않은 무채색의 보수적이고 평범한 의상과 한복이 주를 이루었었다. 이는 북한 정부가 규정한 복장 지침 때문이기도 했다. 가령 색상은 튀지 않는 무채색이어야 하고, 몸에 붙지 않는 헐렁한 스타일에 스커트는 무릎 아래로 내려와야 하며, 또 청바지는 반드시 검정색을 입되 가능한 롱코트로 가려야 했다. 푸른색 청바지인 ‘블루진’은 미국의 상징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성들의 경우에는 반드시 머리를 짧게 깎아야 하고, 어떤 색으로든 염색은 할 수 없었다.
만일 이를 어겨 적발될 경우에는 공개적 망신주기, 자이비판, 혹은 심한 경우에는 노역으로 처벌을 받아야 했다. 북한 정부가 이렇게 주민들의 복장을 통제하는 이유에 대해 로이터 통신원이자 ‘북한 컨피덴셜’의 공동 저자인 제임스 피어슨은 “북한 주민들은 개인이 아니라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와 같은 일원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하면서 “북한은 단일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체제다. 모두가 역할을 맡고 참여하는 극장과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리설주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패션 스타일이 평양 시내 곳곳에서 제법 눈에 띄고 있는 것이다. 가령 무릎 위로 올라오는 스커트를 입거나 굽 높은 하이힐을 신고, 세련된 스타일의 가방과 허리라인이 들어간 셔츠를 입기도 하며, 때로는 자유롭게 블루진을 입는 등 스타일이 부쩍 서구화된 것이다.
이와 관련, 피어슨은 ‘북한 컨피덴셜’에서 평양에서 나팔 모양의 스키니진이 유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한 북한 여성은 스키니진이 다리를 가늘고 날씬하게 보이도록 해 몸매를 돋보이게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한 이런 북한의 변화에 대해서 피어슨은 “최근 평양에서 블루진을 입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봤다. 몇 년 전만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하면서 “특히 북한의 젊은 세대일수록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패션을 이용해서 개성을 강조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남성 패션 역시 마찬가지다. 강인한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서 한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연두색 집업 스타일의 인민복이 유행했지만 이제 인민복 스타일은 구시대적인 것이 됐다. 가령 깔끔한 화이트 셔츠에 푸른색 재킷과 푸른색 바지를 맞춰 입는 등 스타일에 신경을 쓴 모습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뉴요커’의 에반 오스노스는 “평양 거리에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이 넘쳐난다. 어떤 여성들은 하이힐을 신고 있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다. 비록 노동당 규율에 따라 무릎 위로 살짝 올라온 길이긴 하지만 말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변화가 가장 눈에 띄게 일어나고 있는 곳은 수도인 평양보다는 주로 항구도시들이다. 북한 제3의 도시인 함경북도 청진이 그렇다. 사실 청진은 북한에서 유행을 선도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는 항구도시이자 중요한 무역 허브이기 때문이다. 외국 문물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데다 공공질서에 대한 규제가 평양보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까닭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곳 주민들은 최신 유행에 상당히 민감하고, 경제적 수준을 드러내기 위해 서로 경쟁적으로 패션에 대해 대범해지는 경향이 있다.
사실 북한의 패션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비단 ‘리설주 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북한 중산층의 약진과 함께 남한, 일본, 미국 등 외국 문물에 대한 노출이 증가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가령 엘리트층의 증가와 엘리트층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업가들의 번창으로 인해 적은 수이긴 하지만 중산층 수가 부쩍 늘어난 것이다.
또한 한국의 TV 드라마나 할리우드 영화들이 암암리에 북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통되면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이런 변화에 한몫하고 있다. 이런 콘텐츠들은 USB나 SD카드 혹은 DVD를 통해 중국 국경지대에서 비밀리에 반입되고 있으며, 이를 본 북한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생활이 궁핍하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기도 한다(다만 불법 동영상을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될 경우에는 10년의 노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런 까닭에 한때는 중국의 옷들이 유행이었다면, 지금은 일본에서 만든 옷이나 한국의 화장품, 서양의 명품 브랜드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북한 전문여행사에서 근무했던 뉴질랜드 출신의 트로이 콜링스는 북한 사람들은 최신 유행에 민감하다고 말하면서 “북한 사람들은 브랜드에 관심이 많다. 웬만한 브랜드는 다 알고들 있다. 북한의 한 현지 가이드는 나에게 폴더형 레이밴 선글라스를 구입해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브랜드에 민감하다고 해서 이것이 민주주의로의 체제 변환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닉 크리스토프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외국 문물이 밀수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북한 사회가 아직 완전히 개방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평양에서 만난 몇몇 어린이들에게 비욘세, 비틀스를 혹시 아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페이스북은 아냐고 물었다. 한 명이 들어봤다고 말했지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런 패션의 변화는 분명히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외국 브랜드와 패션에 대한 취향은 광채 나는 피부나 명품 가방, 그 이상의 것에 대한 욕망을 암시한다고 호주의 ‘나인닷컴’은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북한 상류층과 명품 시장 “남포항, A급 짝퉁 생산 도시” 자자 ‘리설주 효과’로 인해 북한 사회에서는 덩덜아 해외 명품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비즈니스 오브 패션’은 북한의 문화, 경제, 패션의 변화에 리설주 여사가 작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많은 여성들이 리설주의 스타일을 모방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상류층을 제외하고는 높은 가격 때문에 진품 대신 가품이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가품들은 평양 시장이나 혹은 백화점에서 공개적으로 팔리고 있으며, 대부분은 중국에서 밀수되고 있지만 일부 제품은 평안남도 항구 도시인 남포에서 직접 제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포항은 이런 까닭에 ‘최고급 품질의 짝퉁 생산 도시’로 소문이 나있기도 하다. 사치품 거래는 주로 암시장이나 백화점에서 이뤄지고 있다. 가령 극소수인 상류층들은 상류층들과 미국인들만 출입이 가능한 평양의 고급 백화점인 낙원 백화점에서 이런 물품들을 구입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샤넬, 크리스티앙 디오르, 랑콤 등 수입 화장품을 비롯해 미국 브랜드인 아디다스 신발도 팔리고 있다. CNN은 이에 대해 “북한의 가장 부유한 소비층들은 이곳에서 프리미엄 위스키, 보석류, 향수를 구입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결제는 오직 현금으로만 이뤄진다. 한류의 영향을 받은 스타일도 곳곳에서 눈에 띄고 있다. RFA(자유아시아방송)는 평양의 한 백화점에서 김태희가 드라마에서 신고 나왔던 것과 똑같은 디자인의 구두가 120달러(약 13만 원)에 팔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오브 패션’이 소개한 바에 따르면, 북한의 사치품 수입 액수는 2016년 6억 6600만 달러(약 7000억 원)에 달했으며, 이는 전체 수입품 가운데 20%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주된 수입품목은 가죽제품, 시계, 자동차, 고급 전자제품 등이었다. 이는 김정일 통치 시절에는 연평균 약 3억 달러(약 3200억 원)였던 것에 비하면 두 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