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질 듯 빛나는…‘상고대’와 첫 키스
▲ 평화의 댐 하류에 있는 ‘염원의 종’. 이 일대에 ‘평화의 종 공원’이 조성돼 있다(원 안 사진). 물안개가 자욱하게 낀 파로호선착장. | ||
<여행안내>
▲길잡이: 서울→46번 국도→가평→춘천→403번 지방도→5번 국도→화천읍→구만교→461번 지방도→파로호선착장→용호리→두음리→46번 국도→박수근미술관→262번 지방도→한반도 섬→평화의 종 공원→460번 지방도→꺼먹다리
▲먹거리: 파로호선착장 앞에 매운탕집들이 있지만, 화천읍 대이리 콩사랑(033-442-2114)을 추천한다. 주인장이 직접 만든 두부와 그 두부를 주재료로 내놓은 음식들이 정갈하고 맛있다. 양구는 막국수가 제법 유명하다. 남면 도촌리에 도촌막국수(033-481-4627)가 맛있다. 편육도 소문이 났는데, 기름기가 쪽 빠진 게 쫄깃하다.
▲잠자리: 화천 파로호선착장이 있는 구만리에 강릉민박(033-442-5650), 딴산민박(033-442-3656) 등이 있다. 양구에서 묵는다면 상무룡리를 추천한다. 오지마을이나 다름없는 곳인데, 마을 바로 앞에 파로호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곳에 다래골팬션(033-482-3354), 별장낚시터민박(033-481-5055) 등이 있다.
▲문의: 화천군청 문화관광포털(www.hwacheon.gangwon.kr/tour) 033-440-2543
▶양구군청 문화관광포털(http://www.ygtour.kr) 033-480-2360
파로호는 해방 이전인 1943년 만들어진 담수량 10억 톤의 거대한 인공호수다. 파로호는 한자로 깨뜨릴 ‘파’(破), 오랑캐 ‘로’(虜), 호수 ‘호’(湖)를 쓰는데 이승만 전 대통령이 오랑캐를 크게 무찌른 호수라며 지어 붙인 것이다. 한국전쟁 때 이곳에서 중공군 3개 사단이 수장되었다고 하니, 그런 이름을 가질 만하다.
화천과 양구를 고루 적시는 파로호는 어마어마한 크기에 걸맞게 새벽마다 짙은 물안개를 피워내며 두 고장을 지도에서 ‘지워’버린다. 파로호로 떠나는 안개여행은 춘천을 경유한다. 북한강을 따라 오르는 길이다. 의암호 못 미쳐 선택의 기로에 선다. 춘천호를 향해 갈 것인가, 이제껏 타고 달리던 46번 경춘국도를 따라 양구 방면으로 오를 것인가다.
조언을 하자면 전자가 낫다. 청평과 가평을 지나온 경춘국도는 의암호 앞에서 왼쪽으로 길을 하나 허락한다. 403번 지방도다. 붕어섬·하중도·상중도를 거쳐 5번 국도에 합류하는데, 강줄기를 따라 달리는 길이 무척 유려하고 여유롭다. 특히 새벽의 어스름에도 스멀스멀 피어나는 물안개가 파로호에 닿았을 때의 절정을 예고하고, 그 설렘으로 마음이 즐겁다.
5번 국도로 바꿔 타고 20분쯤 가면 화천군에 접어든다. 곧 화천읍이 나오고 파로호로 데려다 줄 461번 지방도를 만나게 된다. 화천읍에서 가던 길을 따라 조금 더 달리면 오른쪽으로 구만교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면 파로호에서도 가장 멋진 물안개를 볼 수 있는 파로호선착장 방면으로 안내하는 461번 지방도가 시작된다.
▲ 파로호 근처는 물안개가 만들어낸 설화로 아름답다. 물안개의 증기가 나무에 엉겨 얼어붙으면 그것이 마치 하얀 꽃처럼 빛난다. | ||
선착장에는 유람선을 비롯해 예닐곱 척의 작은 배들이 정박돼 있다. ‘중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위는 몸을 동강동강 해체할 것처럼 달려든다. 선착장으로 내려가자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몇 개의 낚시좌대들이 보인다. 뒤로 호수를 가둔 험산준령들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안개는 마치 눈보라처럼 삽시간에 주위를 지웠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한 시계를 선사한다.
안개는 해가 떠오를 무렵부터 더욱 기승을 부린다. 특히 이때부터는 안개 그 자체보다 상고대가 더욱 눈길을 사로잡는다. 호수에 가득 담긴 안개는 주변의 나무들에 엉겨 얼어붙는데, 이것이 상고대다. 푸르스름한 새벽의 상고대도 장관이지만 동이 튼 후 그 빛을 받아 반짝이는 상고대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절경이다. 살얼음을 뒤집어 쓴 나무들은 햇빛이라는 양분을 머금자마자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미소를 선보인다.
선착장 옆에는 수력발전소로 가는 좁은 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가며 파로호의 물안개를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드문드문 좌대와 수초로 엮은 커다란 물고기 조형 등이 호수에 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선착장에서 지체할 수는 없다. 어서 용호리 방면으로 떠나야 한다. 선착장에서 용호리로 이어지는 길은 파로호 물안개 여행의 백미다. 가는 길에 말골낚시터를 비롯해 규모가 작은 낚시터들이 곳곳에 있다. 옹기종기 떠 있는 수상좌대와 안개 낀 주변 풍경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 양구읍 파로호 습지에 조성된 ‘한반도 섬’.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한반도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 ||
양구의 파로호 풍경은 화천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화천이 빙 둘러친 산맥에 담긴 호수의 모양이었다면 양구는 평지에 흐르는 거대한 강 같다. 화천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습지도 있다. 청둥오리를 비롯한 철새들이 수초를 거처 삼아 겨울을 난다. 다만, 상무룡리는 화천의 파로호와 닮았다. 오지마을을 방불케 하는 곳으로 산 속 깊이 마을이 자리하고 있고, 그 앞으로 파로호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곳 또한 새벽이면 물안개로 몸살을 앓는다.
한편, 화천과 양구 파로호 주변에는 볼거리가 많다. 일단 경로대로 꼽아보자면 화천에서 양구로 넘어가면 박수근미술관과 정림리창작스튜디오 등이 있다. 양구 출신의 화가 박수근을 기리는 미술관에는 유품과 스케치, 드로잉, 판화, 삽화 등 여러 유작과 현역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인근의 정림리창작스튜디오는 양구 출신의 작가들이 꾸려 가는 곳으로 참신한 아이디어가 담긴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양구에서 화천으로 262번 지방도를 타고 넘어가면 평화의 댐이 위치한 곳에 최근 ‘평화의 종 공원’이 조성되었다.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나온 탄피를 재료로 만든 거대한 ‘평화의 종’이 댐 상류에 설치돼 있다. 오전 10시, 11시 30분, 오후 2시, 4시에 일반인의 타종을 허락한다. 댐 하류에는 ‘염원의 종’을 비롯한 다양한 설치물이 있다. 세계 각국에서 남북평화를 기원하면 보내온 종들이 전시되어 있고, 에티오피아와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이 그린 평화엽서도 보인다.
평화의 댐을 지나 460번 지방도를 타고 화천으로 넘어가면 구만교 목전에 꺼먹다리가 있다. 광복 전에 일제가 기초를 놓고 한국전쟁 당시 소련군이 교각을 설치한 뒤, 휴전 후에는 화천군이 상판공사를 한 사연 많은 다리다. 등록문화재 제110호로 지정돼 있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