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비 1500만 원짜리 ‘프라이빗 클럽’도…32개의 식사 도구까지 외워
베르나닥이 중국 여성들에게 프랑스식 에티켓을 가르치고 있다.
“숙녀 여러분, 자세에 집중하세요!”
프랑스 출신의 기욤 뤼 드 베르나닥(29)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중국인 여성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블 앞에는 먹음직스럽게 생긴 참치 샐러드가 놓여 있지만 덜컥 식기를 집어들고 맛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신 베르나닥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인 채 다소곳이 앉아 있을 뿐이다. 베르나닥의 수업은 계속됐다.
재킷에서 붉은색 리본을 꺼내든 베르나닥이 여성들의 목에 리본을 두른 후 겨드랑이를 지나 등 뒤에서 매듭을 지었다. 이렇게 리본을 묶으면 자연히 등과 허리를 꼿꼿이 세운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게 된다. 그리고 여성들의 양쪽 겨드랑이 아래에 종이 한 장씩을 끼워 넣은 베르나닥은 농담조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양팔은 항상 몸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우린 꼬꼬댁 닭이 아니잖아요?”
베르나닥의 모든 말은 옆에 서있는 중국인 보조가 중국어로 통역해주고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베르나닥은 “음식이 입으로 오도록 해야지, 입이 음식으로 가선 안 됩니다”라고 강조했다.
근사한 콧수염과 멋스러운 3피스 양복을 입고 있는 베르나닥은 현재 상하이와 베이징 두 곳에서 프랑스식 에티켓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베르나닥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CEO다. 불어, 영어, 독어, 만다린어를 구사하는 그는 2011년 교환학생으로 중국으로 건너와 상하이 퉁지대학에서 비즈니스를 공부한 후 프랑스로 돌아갔다가 지난 2014년 다시 중국으로 들어왔다. 이유는 하나.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프랑스식 에티켓을 가르치는 아카데미를 운영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이런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조모와 부친의 특이한 경력 때문이었다. 조모와 부친이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대를 이어 모로코 왕족들에게 궁정 에티켓을 가르쳤던 개인 교사였던 것. 중국과 프랑스의 예의범절이 달라도 너무 다른 데 대해 흥미를 느꼈던 베르나닥은 할머니와 아버지의 경험을 토대로 사업 구상을 했고, 결국 중국인들에게 서양식 에티켓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중국인들의 필요와 기대에 딱 맞는 교과 과정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베르나닥은 “서양식 에티켓을 배우는 데 관심을 갖고 있는 중국인들은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거나 다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중국에서는 성공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해외에 나가서도 성공하길 원한다면, 다른 나라의 예의범절 역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학생들에게 각각의 상황에 맞는 예절을 가르치고 있다. 누구를 만나는가, 어느 나라를 방문하는가에 따라서 체면을 구기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현재 그의 아카데미는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에서 부쩍 늘어난 비슷한 성격의 예절 학교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상하이에서 이런 예절 학교는 더욱 성행하고 있다. 수강생 대부분은 부잣집 사모님들이며, 이곳에서 배우는 것은 애프터눈티 마시는 법, 올바르게 자세 잡는 법, 담소를 나누는 법, 저녁 만찬에 초대받았을 때 어느 자리에 앉아야 하는지 등 일반 사람들은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며, 또 설령 안다고 해도 금세 잊고 마는 그런 규칙들이 대부분이다.
자세를 교정하기 위해 몸통에는 붉은색 끈을 묶고 있다.
사실 중국인들의 나쁜 매너는 해외에서 더욱 악명이 높다.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떠들거나 새치기를 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중국 정부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해외여행을 나가는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해외여행시 올바른 행동 요령’을 담은 소책자도 발간한 상태다. 여기에는 바닥에 침을 뱉지 말 것, 공공장소에서 코를 파지 말 것, 바닥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 것, 큰 소리로 사람을 부르지 말 것, 외국인들에게 함께 단체사진을 찍자고 요구하지 말 것 등이 나열돼 있다.
치엔 지에(34)라는 여성도 이런 이유에서 ‘베르나닥 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렸다. 이 여성은 투자 은행에 근무하는 남편과 함께 종종 파리의 최고급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는 그녀는 “마치 레스토랑 안의 다른 손님들이 모두 중국인인 우리 부부가 실수를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베르나닥의 수업은 보통 5성급 호텔이나 회원제 클럽, 혹은 개인 저택에서 진행된다. 가령 지난달 상하이의 한 프라이빗 클럽에서 진행됐던 수업에는 28~64세의 여성들 여섯 명이 참가했으며, 거의 대부분이 자신의 직업을 ‘가정주부’라고 소개했다. 이 클럽의 연회비는 1만 2000유로(약 1500만 원)로, 재력가들만이 가입할 수 있는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날 하루 동안 진행된 세미나의 수강료는 480유로(약 61만 원)였으며, 이는 중국의 한 달 평균 임금보다 높은 액수다.
수업이 시작되자 베르나닥이 포크 하나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혹시 이 포크가 무슨 용도인지 알고 있는 분 계십니까?” 놀랍게도 여성들은 그 포크가 굴을 먹는 데 전용으로 사용되는 ‘굴 포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 여성들은 놀랍게도 32개의 은수저, 나이프, 포크, 국자 등의 용도도 모두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품위 있게 걷는 방법을 가르치는 수업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모델인 스베틀라나 쿨니에바가 맡았다. 그녀는 “굽 높은 하이힐을 신고 걸을 때는 절대로 뒤꿈치가 땅에 먼저 닿도록 걸어선 안 됩니다. 그렇게 걸으면 잘 미끄러지고 품위 있게 걸을 수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쿨니에바는 수업에 참가한 여성들에게 머리 위에 책을 얹은 채 걷는 연습을 하도록 지시했다. 이 상태에서 바닥에 있는 그릇을 집어든 후 의자에 앉는 고난도 과제를 성공한 여성에게는 “네, 그렇게 걸으니까 정말 아름다우세요”라며 칭찬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밖에도 ‘베르나닥 아카데미’에서는 수강생들에게 중국과는 다른 다양한 형태의 예의범절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령 프랑스에서는 선물을 받은 즉시 그 자리에서 열어보는 것이 예의인 반면, 중국에서는 이렇게 할 경우 결례가 된다. 또한 리무진에 올라타거나 내리는 법, 카메라 앞에서 자세를 취하는 법, 품위 있게 걷는 법, 우아한 자세로 서있는 법, 하이힐을 신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법 등도 가르친다.
해외여행을 나갔을 때의 예의범절도 따로 배우게 된다. 예약을 잡는 법, 종업원을 대하는 법, 팁을 주는 법, 프랑스 명품을 이해하고 유행하는 가방을 고르는 법 등을 비롯해 어떤 박물관을 가야 하는지, 또 가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사교성을 키우는 수업 시간에는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법, 악수하는 법, 거짓말을 알아채는 법, 속임수를 간파하는 법 등을 배우게 된다.
어린이들을 위한 수업도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창의력과 자신감을 키우는 방법과 감정을 통제하고, 해외로 유학을 나갔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가르친다.
남성들의 경우에는 주로 비즈니스 에티켓을 알려주며, 여기에는 테이블 매너,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법, 와인을 음미하는 법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의자에 앉는 법, 식기 다루는 법 등과 같은 테이블 매너 수업은 대개 버락 오바마, 레이디 가가, 앤젤리나 졸리, 시진핑 등 유명인사들이 참석한 디너 파티에 초대되었다고 상상하면서 행동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이런 식의 수업에 대해 모든 중국인들이 반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언론들은 “너무 과하다”라고 지적하면서 과연 이런 수업이 중국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차이나유스데일리’는 특히 명품 브랜드의 올바른 발음법을 가르치고 있는 베이징의 한 에티켓 아카데미에 대해 보도하면서 “이런 곳은 돈 많은 남자를 낚아채는 것이 목표인 여성들을 키워내는 공장을 떠올리게 한다”고 비난했다.
그런가 하면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의 예의범절은 서양의 그것보다 훨씬 더 역사가 깊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2500년 전에 이미 중국인들은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올바르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단정한 행동양식을 배워왔다는 것이다. 가령 공자는 특히 젓가락 문화에 대해 찬사를 보냈는데, 이는 칼은 사람을 죽이는 용도로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음식을 먹는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했었다.
왜 중국인들이 굳이 서구식 에티켓을 배워야 하는지 불만을 갖고 있는 중국인들도 있다. ‘베르나닥 아카데미’에 참가했지만 수업 말미에 불만을 표출한 한 여성은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네 나라에는 참 규칙이 많기도 하네요!”
화이트 와인, 레드 와인, 샴페인, 물을 마실 때마다 제각각 다른 잔을 사용하는 것도 너무 과하다고 말한 그녀는 “중국에는 숟가락과 젓가락만 있다. 때문에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라고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