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과 각별했던 전우 류경수 가문에 들어간 이후 탄탄대로…김정일 이어 김정은까지 보필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4월 27일 판문점 남측에 도착해 김창선 부장(오른쪽)에게 가방을 건네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여러 의미 있는 장면이 있었지만, 필자가 주목한 장면은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의 자신감 있는 행동들이다. 그는 두 정상의 레드카펫 동선을 위해 손가락으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제지하는가 하면, 김영철 통전부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에게도 스스럼없이 행동했다.
김창선 부장은 이번 정상회담 때 실무대표단장으로 기획을 진두지휘했으며, 북측의 최종적인 의전 책임자였다. 김 부장의 자신감 있고 스스럼 없는 행동들은 그의 위치가 북한 권부에서 어느 정도인지 대략 추측해 볼 수 있는 단서가 되고 있다.
필자는 이미 2년 전인 2016년 2월, 본지 연재(제1238호)를 통해 김정은 시대의 국방위원회(현 국무위원회)를 조명하면서 국무위원회 서기실장으로서 김창선을 자세히 언급한 바 있다. 2년 전만 해도 국제사회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김 부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림자 보좌’를 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1945년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태어난 김창선은 평양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를 졸업했다. 김창선이 중앙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는 사별한 부인 류춘옥과 장인 류경수(본명은 류삼손) 때문이다. 류경수는 김일성 주석의 항일빨치산 전우다. 그는 6·25전쟁 초 105탱크여단 여단장으로 활약하다 전사했다. 김일성은 그와 의형제를 맺으며 ‘수도를 보위하는 장수’가 되라는 의미에서 ‘경수’란 새 이름을 하사했다. 북한이 자랑하는 ‘류경수 탱크사단’은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명명한 것이다.
이러한 관계로 류경수의 딸 류춘옥은 김일성의 가계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되었고, 모친 황순희 역시 김정일의 친모인 김정숙과 특별한 우정을 나눴던 것으로 알려졌다. 류춘옥은 당연히 김씨 가문의 김정일-경희와 가까웠다. 특히 김경희와는 친구사이였다.
류춘옥은 김창선의 대학 후배였고, 둘은 캠퍼스 커플로 연애하며 결혼에 골인했다. 이런 관계로 김창선은 김경희, 김정일 등 김씨 가문 인사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특히 장성택은 생전에 김창선을 ‘형님’이라 칭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김창선이 대학 졸업 후 배치된 곳은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소련 담당 지도원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떼었다. 1969년의 일이다. 이어 그는 1970~1973년 사이 소련 대사관 무관부 부무관으로 임명돼 활동한다. 이 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로서 권력 확장 사업을 꾀하던 시기였다. 북한 내부관계자에 따르면, 김창선은 이 무렵 여러모로 김정일의 눈에 단단히 들었다고 한다.
특히 김정일은 당시 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항일투사들에게 선물 공세를 펼쳤는데 이 작업에 김창선이 충실히 임했다는 전언이다. 외국을 오가던 김창선은 각종 선물 리스트를 하달받아 물자 공급에 나섰고, 김정일은 그의 결과물에 퍽 만족했다고 한다.
김창선은 또한 아주 꼼꼼한 성격으로 애주가이며 사격과 유흥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성격과 특성들이 김정일과도 잘 맞아떨어졌던 셈이다.
북한 조선중앙TV가 3월 29일 방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중국 방문 영상에서 김 위원장이 3월 2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을 방문했을 때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붉은 원)이 수행하는 모습. 연합뉴스
부인 류춘옥을 통해 김씨 가문과 관계를 형성한 김창선은 그들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상급지도원, 부부장, 부장, 부국장까지 탄탄대로로 승진한다. 1982년 북한 주요기관들을 감찰하고 인사에도 큰 영향을 끼치던 중앙당 행정부 과장급 당 일군을 거친 뒤 드디어 1992년 김정일의 서기실 부실장으로 입성한다. 그는 누구나 그렇듯 1999년 평안남도 안주시당위원회 조직비서로 좌천되며 잠시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남들에 비하면 회복기도 빠른 편이었다.
김창선은 류춘옥 사망 이후 김정일의 전속 간호사 출신인 ‘강옥’이란 여성과 재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한 내부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일은 사망 전 서기실 및 조직지도부 핵심 측근들과 조명록, 김영춘, 리명서 등 군 실세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아들(김정은)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자리에서도 김창선이 함께했다는 전언이다. 그만큼 김씨 가문에서 김창선의 역할은 특별했다.
김정은 시대에 와서도 김창선은 ‘비서실장’으로서 더욱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모양새다. 기존 서기실이 당 서기실과 국방위원회(현 국무위원회) 서기실로 나뉠 때도 그는 국방위원회 서기실장(청와대 비서실장 격)으로 김정은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김창선은 김정은 시대 국정운영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으로 알려진 ‘선군혁명소조’에도 주요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김씨 가문 주요 인사들과 핵심 인사들만 참여하는 이 소조에 김창선이 포함된다는 것은 북한 권부에서 그의 위치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김창선은 오랜 기간 김씨 가문과 함께하며 여러 경험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김정은-여정 남매에게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정치·군사·외교 등 다양한 분야의 조언을 해주고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향후 김창선은 김정은 위원장의 국정운영 담당 국무위원회 ‘비서실장’으로서 남북관계에서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