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일 잘하고 싹싹했는데…남성 혐오 전혀 몰랐다”
경찰 수사 결과 홍익대 누드크로키 몰카 사건의 범인이 동료 모델인 것으로 밝혀졌다. 박혜리 기자
5월 10일 서울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20대 여성 A 씨를 피해자 B 씨의 나체 사진을 촬영해 유포한 혐의로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다. A 씨는 B 씨와 같은 모델 에이전시에 속한 동료모델이다. 조사 과정에서 A 씨는 ‘쉬는 시간 동안 휴게 공간 자리 문제로 B 씨와 말다툼을 벌였고 홧김에 몰래 사진을 찍어 유포했다’고 시인한 것으로 알려진다.
‘홍익대 누드크로키 몰카 사건’은 5월 1일 홍익대 회화과 전공수업에서 누군가 쉬고 있는 모델의 나체를 촬영해 유포한 사건이다. 논란은 5월 2일 페이스북 페이지 ‘홍익대 대나무숲’에 ‘워마드에 누드크로키 수업 도중 찍힌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올라왔다’는 글이 게재되며 확산됐다. 5월 4일 학교로부터 수사를 의뢰받은 경찰은 당시 실기실에 있던 학생과 교수 등을 대상으로 참고인 조사를 벌였지만 범행을 자백하는 사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이 수사망이 좁혀오자 결국 A 씨는 범행을 시인했다. A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도 횡설수설하며 말을 바꾸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관계자는 “유출된 사진 속에 찍힌 A 씨의 소품이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다는 점이 범죄자의 심리를 대변하는 듯해 수상하게 느껴졌다”며 “A 씨가 새로 개통한 휴대폰에서 관련된 자료가 나왔고 참고인 조사를 할 때 자신의 휴대폰 두 대 중 한 대를 분실했다고 진술했는데 사실이 아니었다. 장소에 대해서도 버벅거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피해모델과 가해모델이 속한 모델 에이전시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충격에 휩싸였다. 5월 11일 에이전시 대표 C 씨는 ‘사죄문’이란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수사가 진행되던 과정에서 몇 차례 모델에게 물었으나 범인이 아님을 자신있게 주장하여 의심을 접었던 차에 기사로 가해자임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수사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 교수님들 그리고 관계자 분들께서 말 못할 고생을 하였던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마음이 더욱 무겁다”고 입장을 밝혔다.
사건 직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번 사건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했던 하영은 한국누드모델협회장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에 당혹감을 나타냈다. 하 회장은 5월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협회 소속 모델이 아니라 에이전시에서 보낸 모델이다 보니 남·여 모델 4명이 한 수업실에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며 “쉬는 공간이 무대 위밖에 없다보니 서로 불편함이 있어서 다툼이 있었던 걸로 생각된다. 하지만 여자모델의 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라고 입장을 밝혔다.
주변인들은 A 씨의 평소 행동으로 볼 때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이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나타낸다. 모델 에이전시의 한 관계자는 “(A 씨와) 함께 일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는데 지각 한 번 하지 않고 일도 아주 잘하는 친구였다“며 ”그 친구가 남성을 혐오한다는 느낌을 전혀 받은 적이 없고 두 사람이 평소에 특별한 마찰을 빚는 것도 본 적 없다”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범인이 특정된 직후 모델 에이전시는 책임을 인정하고 학교 측에 곧바로 사과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의 에이전시 관계자는 “학교 측에 연락을 해 사과를 한 상태다. 재학생들이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하지만 다른 모델들은 전혀 잘못이 없다. 일부 모델들은 벌써부터 이번 일로 인해 앞으로의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온갖 비난에 시달렸던 학생회도 범인이 검거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곧바로 입장을 발표했다. 사진이 유포된 이후 회화과 학생들은 문제의 사진을 돌려 본 공범이라는 루머에 시달리며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와 SNS 등에서 무차별적인 비난에 시달렸다. 홍익대학교 총학생회는 5월 10일 오후 입장문을 통해 “사건 해결과정에서 회화과 학생회에는 협박 문자, 가계정 등을 통한 비난 등이 가해졌고 신변의 위협 또한 있었다”며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루머와 악성 비난을 가했던 사람들을 지탄하며, 마음고생이 심했을 홍익대학교 회화과 학생들 및 전체 재학생들에게도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범인 검거와 별개로 이번 사건을 통해 누드모델들을 위한 휴식 공간 마련, 누드모델 수업 강의실 관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홍익대 회화과 재학생은 “그동안 쉬는 시간을 이용해 친구를 만나거나 준비물을 챙기기 위해 누드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옆 반 실기실에 방문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고 털어놨다. 홍익대 회화과는 사건 발생 직후 ‘누드모델 수업 매뉴얼’을 발표해 실시하고 있다. 6가지 항목으로 구성된 매뉴얼에는 △실기실 창문과 문을 모두 가리고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는 경고문 부착 △지각생 및 외부인(타반 학생 포함) 출입금지 △모델이 가운을 완착한 뒤 지도교수 지도하에 문 개방 △수강생은 출석과 동시에 휴대전화 전원 끈 뒤 지도교수에 제출 △모델은 쉬는 시간과 동시에 가운 완착 및 간이휴게공간에서 휴식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피의자 A 씨는 성폭력범죄 특례법 14조(카메라등을이용한촬영)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