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주주 충실 의무’ 도입에 따라 부실 회사 ‘손절’ 가능성…HDC “한계 봉착해 경영진이 결단”

채권시장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대기업 계열사가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 시장이 난리가 났는데, 이번 아이파크영창은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됐다”면서 “과거에는 당연했던 계열사 지원이 언젠가는 아주 낯설게 느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이파크영창, 6년 적자에 법정관리행
HDC그룹의 지주회사 HDC가 지분 94.3%를 보유하고 있는 아이파크영창은 지난 4월 16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2006년 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강한 의지에 힘입어 563억 원 가격에 인수한 아이파크영창(당시 영창악기)은 악기 수요가 꾸준히 감소해 점차 사세가 위축되던 가운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2020년부터 단 한 해도 흑자를 내지 못한 아이파크영창은 아이파크현대산업개발(90억 원), HDC랩스(30억 원) 등 계열사로부터 차입을 받아 연명하다가 이번에 회생절차 신청 결정이 내려졌다. 아이파크영창에 돈을 빌려줬던 아이파크현대산업개발과 HDC랩스는 상장사인데, 주주들로부터 직접적인 문제 제기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영진 입장에서 지속적인 자금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추가 대여 불가 방침을 정했다.
지주회사 HDC도 2012년과 2015년 유상증자를 통해 각각 51억 원, 365억 원을 지원한 바 있다. HDC그룹 전체적으로는 1000억 원 넘게 쏟아부었으나 살아나지 못한 셈이다. 악기업계 전문가들은 아이파크영창이 디지털 피아노로의 전환이 늦었다고 설명한다.
HDC그룹 관계자는 “아이파크영창의 기업회생절차 개시 신청은 회사를 살리기 위한 영창 경영진의 결단이었다”면서 “계열사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 왔으나 한계에 봉착해 법률에 정해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아이파크영창이 회생절차를 수행하는 데 성실히 협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채권업계에서는 HDC가 다른 계열사들에도 단순한 생명 연장 목적의 자금 지원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건설사 중심인 HDC그룹은 다른 건설사와 비교해도 유독 국내 사업 비중이 높다.
대부분 건설사가 해외 플랜트 및 인프라, 화공 프로젝트 등을 수주하며 사업 다각화를 추구하는 반면, HDC그룹은 중소형 건설사들처럼 국내 주택사업, 도시 정비 사업만 맡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예상하지 못했던 저가 수주 리스크는 적지만, 성장성 또한 높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유통업체인 아이파크몰이나 리조트 부문 등은 수익성이 너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장사인 HDC랩스도 그룹 내 IT 일감 덕에 흑자는 내고 있지만 영업이익률이 1% 안팎에 그쳐 존재감이 미미하다. 신규 사업도 신통치 않다.
2018년 637억 원을 들여 인수한 부동산114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고, 그 외에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추진했던 인수합병(M&A)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즉 아이파크영창처럼 언젠가 법원 문을 두드리는 곳이 더 늘어날 수 있다.
#부실 계열사 지원 축소 불가피
과거에는 달랐다. 불과 2~3년 전인 2023년 말 태영건설이 대표적이다. 당시 태영건설은 과도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우발채무로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자연스레 여론은 최대주주 측의 희생을 요구했다. 결국 모회사인 티와이홀딩스는 글로벌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공동 경영 중이던 알짜 계열사 에코비트를 2조 7000억 원에 매각하고 그 자금을 태영건설에 지원해야 했다.
당시에는 대주주가 부실 경영의 책임을 물었다고 했으나, 엄밀히 말하면 에코비트는 모회사 티와이홀딩스 주주들의 자산이다. 부실 계열사 태영건설에 대한 지원은 지금 사회 분위기로 보면 티와이홀딩스 경영진이 주주 충실 의무를 저해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아이파크영창 사례처럼 모기업이 배임 가능성을 이유로 적자 계열사에 대한 지원을 끊는 일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는 대기업 계열사라고 하면 부실한 기업이어도 신용등급을 1~2노치(Notch·단위) 상향 조정하곤 한다. 모기업 지원 가능성을 신용평가에 반영하는 것이다. SK온, 신세계건설 등이 그룹 지원 가능성을 근거로 신용등급이 다소 올라 있다.

육성훈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이번 사례가 HDC 계열에 국한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개별 기업에 대한 계열사의 지원 수준을 결정하는 데 있어 지배적, 사업적, 재무적 긴밀함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향후 변동되는 법적 규제 하에서 관련 법원의 판례나 공정거래위원회의 해석 등에 따라 기업의 의사 결정 행태가 유의미하게 변동될 경우 이를 평가 과정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금 조달 순탄치 않은 기업 많아질 듯
올해 들어 회사채 시장은 전년 대비 20~30% 위축돼 있다. 중동 전쟁에다 이로 인한 금리 급변동 때문에 기업들이 발행 일정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월 이후로는 회사채 발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온다. 대기업 분할 상장은 막혀 있고, 유상증자에도 부정적 기류가 역력하다 보니 회사채 발행에 의존하는 기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석유화학, 2차전지 분야 기업들은 대규모 자금 조달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이 기업들은 모회사 지원이 없으면 자금 조달이 순탄치 않을 가능성이 있다.
재계에서는 벌써부터 모회사 눈치를 보고 있다고 토로한다. 주력 계열사에 대한 지원조차 모회사 의사결정권자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A 사는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는데, A 사의 모회사인 그룹 지주회사 사외이사들이 이사회에서 유상증자 참여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다.
A 사 관계자는 “소액주주들이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싫어하기 때문에 최대주주는 초과 청약이라도 해야 한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으나 너무 강하게 반대 의사를 밝혀서 애를 먹었다”면서 “성장을 위한 투자조차 부정적인데, 부실기업을 살리는 의사 결정은 더욱 어려워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한화솔루션의 경우 사외이사들이 유상증자에 찬성표를 던졌으나 소액주주들은 경영진 감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손해배상 소송 청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앞서의 채권시장 관계자는 “지금 반도체, 전력 기기 정도를 제외하고는 산업 전반적으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면서 “계열사 지원 의지마저 줄어든다면, 전체 회사채 시장에 미치는 악영향도 상당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민영훈 언론인 journalist@ilyo.co.kr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