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뉴스] 집중호우 속 드러난 서울시 맨홀 위험 실태 고발
광화문역 인근 맨홀 사진. 고성준 기자
맨홀은 수도관·하수관·지하전선에 대한 정비를 위해 지하와 지상을 연결하는 통로다. 하지만 관리 부실로 내려앉거나 솟아오른 맨홀 뚜껑은 사고를 유발한다. 맨홀의 ‘양면성’인 셈이다.
맨홀은 특히 비에 취약하다. 맨홀에 미끄러진 차량이 파손될 수 있고 지반 침하로 보행자들이 갑자기 땅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 최근 ‘맨홀천국’인 서울시에도 약 120mm의 폭우가 내렸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그 순간, 서울시 중심 지역의 맨홀은 어떤 모습일까.
서대문역 사거리 전경. 고성준 기자
지난 5월 15일 오후 2시경 기자는 서울 서대문역 사거리를 찾았다. 서대문역 2번 출구 앞은 공사를 위한 가림막이 줄지어 쳐져있었다. 약 1m 높이의 가림막에 쓰인 ‘안전제일’이라는 문구가 보였지만 공사 업체 측이 인도의 보도블록을 걷어내 바닥은 흙으로 가득했다.
출구 옆쪽에 우뚝 솟아오른 맨홀 뚜껑이 선명해 보였다. 바닥에 있는 보도블록이 사라지면서 맨홀이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행인들이 자칫 맨홀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경고 문구나 안전판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15일 서대문역 인근 맨홀 사진(좌). 17일 서대문역 인근 맨홀 사진 비교. 고성준 기자
5월 17일 오전 10시경 기자는 같은 장소를 또 한 번 찾았다. 전날 약 120mm의 ‘집중호우’가 이곳을 강타한 뒤였다. 서대문역 2번 출구 앞에는 ‘진흙탕’으로 변한 바닥 위에 카펫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맨홀은 예외였다. 카펫이 맨홀의 일부만을 덮어 더욱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행인들이 맨홀 뚜껑을 발견하지 못할 뿐더러 맨홀 뚜껑 표면에 빗물이 흘러 상당히 미끄러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서대문 역 사거리 인근 맨홀 사진(위). 확대 사진(아래)
‘인도 위 맨홀’보다 ‘도로 위 맨홀’은 더욱 위험해 보였다. 5월 15일 오후 3시경 서대문역 사거리 인근에서 폭우가 내리고 잠시 비가 멈췄을 당시, 기자는 아찔한 상태에 놓인 맨홀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맨홀 3개가 한 곳에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맨홀 하나의 주변 땅은 이미 ‘쩍쩍’ 갈라진 상태였다. 지면의 높이보다 낮은 상태로 금방이라도 ‘푹’ 꺼질 것처럼 보였다. 차들이 지나칠 때마다 맨홀들이 들썩였다.
이처럼 맨홀 주변 도로에 균열이 일어나면 안전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 지반이 침하하면 빗물이 맨홀 쪽으로 모이고 빗물이 역류하면서 느슨해진 뚜껑은 언제든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
실제로 2014년 6월 집중호우가 쏟아지던 경남 창원시의 한 도로에서 시내버스가 갑자기 공중으로 솟구쳤다. 버스 아래 있던 맨홀 뚜껑이 튀어 올라 버스에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2017년 7월 광주광역시 북구에선 맨홀 위를 지나던 차량 2대가 파손됐다. 맨홀이 솟아오르면서 차량들의 범퍼가 깨졌다.
맨홀 전문가들은 위험성을 경고한다. 한 맨홀 보수업자는 “맨홀을 파보면 밑에 벽돌을 쌓아놓은 게 많다. 지반을 벽돌이 받치고 있다. 굉장히 취약한 구조라서 위험하다”며 “옛날에는 이같은 방식으로 시공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런 맨홀이 대부분이다. 정기적으로 들어가서 벽돌들을 꺼내고 콘크리트로 메우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결과도 집중호우와 맨홀의 상관관계를 증명했다. 2017년엔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도로 침수를 가정해서 실험을 한 결과, 시간당 50mm의 폭우가 쏟아지자 무게 40kg에 달하는 맨홀뚜껑은 순식간에 튀어 올랐다.
서대문 역 사거리 인근 맨홀 사진
현재 서대문역 사거리는 ‘맨홀천국’이다. 이 곳에서도 솟아오른 맨홀 등을 찾기 쉬었다. 택시 등 자동차들이 맨홀 위를 지나칠 때마다 ‘덜컹’하는 소리가 나는가 하면 버스와 덤프트럭의 경우는 더 아찔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다른 맨홀 보수업자는 “불량맨홀이나 부실공사는 맨홀 사고의 주요 원인이 아니다. 기술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과적 차량들이 가장 큰 문제다. 특히 덤프트럭이 맨홀 위를 내달리면 맨홀 주변 땅에 균열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서대문 역 인근 횡단보도 사진. 고성준 기자
‘횡단보도 위 맨홀’도 위험해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위 사진 처럼 무려 맨홀 4개가 나열되어 있는 곳도 있다.
‘인도 위 맨홀’은 과적 차량이 다닐 일이 없어 무게를 견디는 힘 자체가 적어 ‘도로 위 맨홀’보다는 그나마 안전한 편이지만 보행자와 차량이 지나다니는 횡단보도는 도로위 맨홀만큼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주의와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사진 속 맨홀 3개 주변에 보수공사를 거친 흔적이 보이는 만큼 보행자들이 갑자기 맨홀 밑으로 사라지거나 차량이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날 여지도 남겨두고 있다.
광화문 전경. 고성준 기자
광화문 인근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5월 17일 폭우가 내린 뒤 프레스센터 횡단보도 주변에도 빗물이 맨홀 주변에 가득했다. 움푹 들어간 맨홀 2개는 언제든 땅으로 꺼질 것처럼 보였다. 솟아있는 맨홀 1개 때문에 보행자들이 맨홀을 밟고 미끄러져 넘어질 우려도 있었다.
그렇다면, 맨홀을 관리해온 서울시의 입장은 어떨까. 서울시는 2016년부터 맨홀과 도로면의 높이차이가 10㎜를 넘는 곳을 평탄화하기 위한 계획을 추진해왔다. 맨홀 안전 등급제에 따라 각 구청은 연 2회 정기 점검을 하고 있다.
광화문 프레스센터 인근 횡단보도 사진. 고성준 기자
서울시 관계자는 “2017~2018년도에 도로포장 구간에 대한 맨홀 평탄성 조사를 했다. 불량한 지역은 추가 정비를 하도록 도로관리청에 요청했다”며 “도로관리청과 맨홀 관리기관이 횡단보도 주변 맨홀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맨홀 관리는 여전히 부족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곧 닥칠 장마철. 어디서든 튀어오를 맨홀들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