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경무관이 검찰총장에게 호통을 칠 수 있었던 것은 직급이 높아서가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권력핵심에 가장 가까이 있는 직책 때문이었다.
‘끗발은 계급이 아니라 보직’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관계다. 권력의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은 직급과 관계없이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여우가 호랑이 앞을 걸으면서 `백수의 왕’인 양 행세하는 이른바 호가호위(狐假虎威)의 효과다.
가쓰라 다로(桂 太郞)라는 일본 정치인은 총리를 세 번이나 역임한 인물이다. 총리직에서 물러나 왕명의 출납과 궁정의 살림을 총괄하던 내대신으로 옮겨 앉았던 그가 다시 총리로 지명되자 국회가 들끓었다. 그때 가쓰라를 규탄한 어느 중의원의 연설은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명연설이었다. “그들은 옥좌(玉座)를 흉벽으로 삼고 조칙(詔勅)으로써 탄환을 대신하여 정적을 타도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연설이 그것이었다.
하기야 중국의 고사에도 ‘곤룡의 소매 뒤에 숨어’라는 표현이 있다. 임금을 가까이서 모시는 환관이나 측근의 정치적 횡포가 나라의 기틀을 흔들 지경에 이르렀을 때 흔히 ‘곤룡의 소매 뒤에 숨은 자들이’ 운운하는 말로 그들을 규탄한 것이다. 용을 수놓은 곤룡포는 바로 임금의 옷을 가리키는 것으로 곤룡의 소매 뒤란 바로 임금의 위세를 이용하는 측근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청와대의 제1부속실장이 지방에 내려가서 업자로부터 향응을 받은 것이 뒤늦게 말썽이 되었다. 저녁만 먹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나이트 클럽을 거쳐 호텔 숙박비까지 모든 경비를 제공받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전에 철저하게 기획된 몰래 카메라에 사진까지 찍혀 만천하에 공개되었으니 참으로 망신스럽게 되었다. 별 생각없이 향응을 받은 것이 처음부터 업자가 쳐놓은 덫에 걸린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의 몸가짐에 허점이 있었다는 점이다. 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시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몸가짐이나 일거수 일투족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정상의 권력 가까이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정치적 야심을 가진 사람이나 권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표적이 되게 마련이다.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그들이 쳐놓은 덫에 걸리거나 스스로 부패의 함정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선비가 권문(權門)과 요로(要路)에 있을 때는 몸가짐을 엄정하고 명백하게 해야 하며 마음은 항상 온화하고 평이해야 하나니 조금이라도 ‘비린내나는 무리’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며 또한 너무 격렬하여 독침 가진 자를 범하지 말지니라”.
<채근담(菜根譚)>에 실린 이 말이 오늘날에도 설득력을 갖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권문에 있는 사람들을 노리는 덫이나 올가미는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양(梁)씨 사건은 정몽헌 회장의 자살사건에 덮여 당분간 여론의 화살은 피하겠지만 권문(權門)에 있는 사람들의 몸가짐이 어떠해야 한다는 교훈만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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