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바로 국체(國體)를 규정한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조항이 그것이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임을 선언한 이 조항은 신성불가침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리가 민주국가임을 의심치 않으면서도 공화(共和)에 대해선 의외로 무관심하다. 물론 헌법에서 얘기한 공화국은 전제정치나 군주제도에 대칭되는 개념인 서양의 리퍼블릭(Republic)을 한자어로 옮긴 것이다.
그러나 공화라는 단어에 담겨있는 훌륭한 뜻은 제대로 실천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는 뿌리를 내렸지만 서로 공존하고 화합하는 공화의 정신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좁은 의미에서의 공동체의식은 매우 강하면서도 다른 공동체와의 화합이나 협력에 대해선 의외로 인색하다. 요즘 우리사회에 넘쳐나고 있는 집단과 지역의 배타적 이기주의는 더불어 사는 공화의 정신이 실종된데서 싹튼다. 더군다나 지방자치가 되면서 지역의 이기주의적 요구는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며칠 전 건설교통부는 그동안 ‘천안역 또는 `4-1공구역’으로 불러 온 경부고속철도역 이름을 ‘`천안·아산’역으로 최종 결정했다. 천안시와 아산시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맞서다보니 결국 두 도시의 이름을 다 넣어서 ‘`천안·아산역’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낙착된 것이다. 이렇게 된데는 역사 전체부지의 96%는 아산시에 자리잡고 있지만 나머지가 천안시에 걸쳐 있고 교통·생활권 면에서는 천안과 더 가깝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비단 천안·아산역뿐만이 아니다. 경기도 평택과 충남 당진에 걸쳐 있는 항구의 명칭도 두 지역간의 갈등으로 정부가 ‘`평택·당진항’으로 중재안을 마련했으나 지역주민들이 헌법소원까지 내가며 반발하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딱한 처지에 놓여있다. 부산 신항과 부산·진해신항 이름을 두고 벌이는 부산과 경남간의 힘겨루기도 끝간데 없이 계속되고 있다.
더욱 볼썽사나운 모습은 국민의 대표가 되어야 할 국회의원들까지 이 지역싸움에 편승해 지역구 챙기기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하기야 내년 총선에서의 표를 생각해서라도 지역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눈앞의 표를 의식해서 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긴다면 이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는 헌법에 명시된 국회의원의 의무조항을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50여 년간의 민주화투쟁을 통해 이젠 선진외국에 비해서도 뒤떨어지지 않는 민주국가를 만드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사회에 필요한 또 하나의 덕목인 공화정신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젠 집단과 지역의 이익을 내세우기 전에 그것이 민족공동체나 국가의 이익과 어떻게 상충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 공화의 정신은 민주적 가치와 함께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수레바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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