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 ||
진실로 정치권이 과거를 반성하고 개혁의 의지가 있다면 불법 비자금 거래의 내역을 밝히고 새로운 입법을 추진하는 데 조건을 달면 안 된다. 이의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잘못을 인정하고 자기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눈을 속이며 위기국면을 피하겠다는 뜻이다. 올바른 정치개혁을 위해 정치부패의 실체를 밝히는 것은 절대적 전제이다. 비자금 부패를 척결하지 않고 정치 개혁을 추진할 경우 지구당 폐지, 완전선거공영제 등은 비리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정치비용을 국민에게 모두 떠넘기는 것을 법제화하는 것이 된다.
검찰은 엄정한 수사의지를 천명하고 여야의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에 전념하고 있다. 정치권은 무조건 수사에 협조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한 후 과감한 정치개혁 입법에 나서야 한다.
최근 경제가 극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근로자는 일자리가 없어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고 서민들은 빚더미에 눌려 자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경영이 어려운 기업들은 해외로 이전하고 있어 산업이 공동화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를 들어 검찰의 정치자금 수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불법비리를 덮으려는 의도로 비칠 수 있다.
기업 임원들이 정치자금에 대한 수사를 받는다고 해서 돌아가던 공장이 멈추지 않는다. 정치자금 비리는 기업의 불법 비리 경영을 강요하는 악의 근원이다. 기업들의 정치비자금의 실체를 스스로 밝히고 정치비리의 덫에서 해방을 선언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본연의 생명력을 회복한다. 난치의 종양병 환자가 수술을 과감하게 해야 생명을 되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경제는 뿌리 깊은 정경유착 비리와 기업 경영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이미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각한 상태다. 주가가 극히 낮게 평가되고 해외 투자 자본이 들어오지 않는다. 헐값의 주가를 이용하여 국부를 유출시키는 투기 자본이 판을 치고 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정치권과 재계는 죽어서 다시 사는 결연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일체의 수사를 검찰에 맡기고 국민의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야 한다. 여기서 물론 검찰은 정치적 압력을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 국민의 감시 하에 철저한 공개수사를 펴야 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단죄를 내려야 한다. 다음 돈 안 드는 선거, 투명하고 생산적인 정치를 위한 전면적인 정치개혁에 국민의 뜻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또 다시 비리 척결과 정치개혁이 말잔치로 끝난다면 나라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