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 ||
카드위기는 정부와 카드사들이 부른 인재(人災)다. IMF 위기 이후 정부는 1백60조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하며 구조 개혁에 나섰다. 그러나 경제의 근본적인 경쟁력 회복이 지연되고 경기가 침체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그러자 정부는 카드의 무제한 발급 허용 등 무모한 소비 촉진책을 내놓았다. 카드사들은 마구잡이식으로 카드를 발급하여 서민들로 하여금 빚잔치를 벌이게 했다. 또한 돈을 못갚는 소비자들에게 고리의 현금서비스까지 제공하며 돈벌이에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이후 서민들은 카드 돌려막기의 덫에 걸려 대거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자금 회수가 어려운 카드사들은 부도 위기를 자초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정부와 카드사들이 결탁하여 서민들을 빚수렁에 빠뜨리고 경제의 무덤을 판 셈이다.
IMF 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성장동력을 잃었다. 무모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고용불안이 심각하다. ‘사오정’이야기가 나온 지가 엊그제인데 이제 ‘삼팔선’ 이야기가 유행이다. 30대도 언제 직장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초불안 상태다. 더욱 문제는 근로자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경제 발전을 이끌어야 할 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중국으로 가거나 양자택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지 막막하다.
이런 상태에서 발생한 카드위기는 우리 경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 가계부채가 4백40조원이 넘는다. 가구당 빚이 3천만원에 육박한다. 여기에 카드 돌려막기의 실패로 추가로 발생할 수 있는 신용불량자가 1백만 명이나 된다. 이에 따라 총 신용불량자가 4백6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경제 활동인구 5명 중 1명은 경제호적에 빨간줄을 그은 사람들이다. 실업이 극심한 상태에서 금융위기는 경제의 숨을 막는 극한적 상황을 초래한다.
그렇다면 카드 위기에 대한 근본 대책은 무엇인가? 우선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카드위기의 실상을 국민들에게 정직하게 밝혀야 한다. 다음 카드사들은 부실채권의 처분을 서두르고 채권단 지원자금을 출자전환한 후 매각 또는 통폐합을 추진하여 카드산업의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이미 엘지카드를 위해 국내외자본들이 물밑 인수경쟁을 시작했다. 국민의 경제활동 수단인 카드사를 외국자본에 넘겨줄 경우 내국인의 정보유출은 물론 금융질서의 지배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부실 카드회사는 국내자본이 인수하거나 통합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IMF 위기는 부실기업을 계속 지원하다가 기업과 금융기관이 동반 붕괴한 위기였다. 이제 부실 카드사를 계속 지원하면서 소비자와 금융기관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 고통과 혼란이 따르더라도 제2의 IMF를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근본적인 카드 산업의 수술이 시급하다.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