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 ||
어느 철학자는 아침에 이상주의자였던 사람이 대낮엔 현실주의자가 되고 저녁엔 허무주의자가 된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젊을 때는 나름대로 원대한 야망을 가꾸며 살아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야망은 현실의 벽에 부서지고 풍파에 깎이게 마련이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내일은 오늘과는 뭔가 다른 하루가 될 것이라는 기대속에 살아간다. 한 달, 한 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될 때마다 사람들은 작년과는 뭔가 다른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그러나 막상 한 해가 저물 무렵엔 사람마다 크기와 깊이는 달라도 ‘또 한 해가 덧없이 지나갔구나’하는 회한에 젖어들곤 한다. 한 해가 기우는 세모(歲暮)에 세설(細雪)이라도 흩날리면 사람들은 곧잘 지난날을 돌아보는 회귀(回歸)사상에 빠져들거나 뭔가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한 감상(感傷)에 빠져든다. 이렇다 할 매듭도, 흔적도 없이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아쉽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 시청 앞에서 낙도의 마을회관 앞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뜨겁게 달구었던 ‘대~한민국’의 벅찬 감동을 안고 시작했던 2003년은 다른 어느 해보다도 큰 기대속에 출발한 한 해였다. 더군다나 정권교체를 통해 보다 젊은 대통령, 보다 개혁적인 대통령, 그리고 그동안 우리사회의 상류지배층을 점령하고 있던 세습적인 엘리트 출신이 아닌 대통령을 선택한 참여정부의 출범이 있었기에 그 기대는 다른 어느 해보다도 컸다.
그러나 그 벅찬 기대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실망과 좌절로 점철되고 말았다. 정치권의 갈등은 사회계층간, 지역간 갈등으로 증폭되고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경기는 바닥 없는 함정으로 가라앉았고 중요한 국책사업은 고비마다 발목이 잡혀 제자리걸음을 했다. ‘오륙도’니 ‘사오정’이니 해서 중년 실업자가 넘쳐나고 신용불량자가 양산되더니 급기야는 20대의 태반이 백수로 헤매는 현실을 두고 ‘이태백’이라는 말까지 유행하기에 이르렀다.
해가 바뀌면서 사람들은 새해에는 뭔가 조금은 달라지길 기대하지만 총선을 앞둔 올해에도 장밋빛 전망은 기대하기 어렵다.
정국은 벌써 선거전으로 접어들어 민생은 뒷전으로 밀린 데다 정부가 제출한 나라예산이 국회에서 오히려 늘어났다는 소식이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나누어 먹기식으로 선심성 예산을 대폭 늘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민생을 외면한 정치싸움은 백성들을 고달프게 하고 나라경제를 좀먹는다. 그러나 비록 다시 밤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아침마다 새로운 희망을 가꾸게 마련이다. 사람은 안락과 풍요속에서 나약해지고 역경에서 오히려 강인한 저력을 발휘한다지 않는가. 올 한 해가 역경속에서도 희망을 가꾸는 그런 한 해가 되길 기대해 본다.
언론인 이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