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어떤 정치활동도 할 수 없었던 그가 생계를 위해 엮어냈던 이 책엔 조선어학회사건 등 일제하에서 사상범으로 체포 구금되었던 분들의 생생한 감옥체험기가 실려있었다.
이 체험기를 읽어보면 서대문형무소를 비롯한 당시의 교정(矯正)시설이 얼마나 열악했던가를 알 수 있다. 사상범이라고 해서 일반 잡범들과 격리수용하긴 했지만 그 독방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까막소’ 수준이었던 것 같다.
그 일제시대의 독방에 비하면 요즘 각급 교도소나 구치소의 독방시설은 활동의 자유만 없을 뿐 웬만한 여인숙 수준은 되는 모양이다. 넓이가 1평 정도로 비좁긴 하지만 칸막이가 된 수세식 변기에다 세면대가 따로 있을 뿐 아니라 텔레비전도 비치되어 있다. 급식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몰라도 옛날처럼 콩밥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요즘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서울구치소의 독방들이 때아닌 호항을 맞았다고 한다. 내로라하던 정치인들이 줄줄이 ‘입주’하는 바람에 이들을 찾아온 면회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는 것이다.
2004년 2월2일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있는 현역의원만해도 12명에 이른다. 그것도 각 당이 골고루 ‘안배’되어 한나라당은 서청원 전 대표를 비롯한 6명의 의원이, 민주당은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음에도 법적절차가 끝나지 않아 아직까지 금배지를 달고 있는 김운용 의원 등 3명의 의원이, 그리고 열린 우리당의 정대철 의원과 이상수 의원, 무소속의 송영진 의원 등 모두 12명의 현역의원이 영어(囹圄)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현역의원들뿐 아니라 정·재계의 거물과 대통령의 측근인사 등 한때 이름 석 자가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던 인사들도 ‘포진’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서울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정치인들만으로도 원내교섭단체를 만들어도 되겠다는 빈정거림까지 나오고 있다. 2일부터 시작된 임시국회로 불체포특권의 보호를 받게된 한화갑 의원 등 앞으로도 검찰에 불려갈 정치인이 몇 명 더 있다니 구치소로 갈 정치인의 숫자는 더 늘어날 모양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구속된 정치인은 좁은 방에서나마 발을 뻗고 자겠지만 언제 검찰에서 연락이 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잠 못 이루는 정치인이 상당수 더 있다는 점이다. ‘걸면 걸린다’는 말처럼 불법정치자금으로부터 자유로운 국회의원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야당이 편파수사니 뭐니해서 반발하고 있는 것도 정치판이 온통 진흙탕인데 누구는 잡아가고 누구는 봐주느냐는 불만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현역의원들이 이처럼 무더기로 쇠고랑을 차는데도 정치권은 여전히 돈 안드는 정치, 깨끗한 정치풍토를 위한 개혁엔 우물쭈물하고 있다는 점이다. 잡혀간 사람은 재수가 없어서 걸린 것이고 우리만 걸리지 않았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이러저럭 넘어가자는 속셈인가. 총선은 앞으로 채 석 달도 남지 않았다.
이번에도 정치개혁을 미루었다간 앞으로 정치인들의 옥중체험기를 담은 또 한 권의 ‘독방’이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