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말의 측면에서라면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은 오히려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경제는 어렵고, 환경은 위태하고, 외교는 아직도 제 자리를 찾아가지 못하고 있지만, 검찰과 국정원을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는 달콤한 유혹을 포기한 대통령, 언론도 움켜잡지 않은 대통령, 그럼으로써 제왕적이기를 그만둔 대한민국의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써준 원고대로 근엄한 말, 지당한 말만 하고, 뒤로는 안기부와 검찰을 조정하고 언론에 어두운 힘을 행사하는 대통령이 여지껏 우리의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그렇게 힘있는 대통령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당연히 토론을 통한 설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 말이 많아지다 보니 간혹 말실수를 하기는 해도 자기 말을 할 줄 아는 대통령, 그런 대통령이야말로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드는 민주적 리더십이 아닐까요?
사실 대통령의 말에 자극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옳다고 생각되면 상대에게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점, 그래서 상대는 여지없이 악이 된다는 점! 그런 소신이 긍정적으로 나타날 때는 돌파력이 되지만 부정적으로 나타날 때에는 포용력 부재가 됩니다. 그러나 그 자극적인 말에 ‘탄핵’이라는 수를 뽑아 쓴 국회는 함정에 빠져 무를 수 없는 수를 놓은 것입니다. 마음만 앞서가는 것은 언제나 파탄의 원인입니다.
박관용 국회의장이 말했습니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조순형 민주당 대표가 말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그들이 노 대통령의 탄핵을 두고 평가한 그 말은 어쩐지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탄핵안 가결로 정신없었던 그 날,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마치 그네를 탄 것처럼 훌쩍 올라간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더불어 민주당 지지가 곤두박질친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서울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대전에서 일제히 켜진 항거의 촛불들은 대의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 것이 아닐까요? 무리한 탄핵에 주가는 불안하고 6월항쟁을 방불케 하는 집회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나는 하루 사이에 쑥 올라간 열린우리당의 돌연한 지지가 마음에서부터 열린우리당의 정책적 방향을 지지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폭발력은 국민들의 주권선언입니다. 세상에,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국민이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끌어내리려 하다니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당연한 입장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탄핵이 가결된 후 최병렬 대표가 말했습니다. “승리했지만 기쁘지 않습니다.” 혹시 그의 무의식은 그날부터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가는 여론을 미리 내다본 것이 아닐까요? 눈앞에 승리에 연연하느라 더 크고 귀한 것을 잃어버린 그들이 정말 아픈 만큼 성숙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