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 ||
허영만 만화 <타짜>에서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라고 했던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지만 좋은 것, 기대했던 것을 얻었을 때의 기쁨이 강렬한 만큼, 기대했던 것이 가버렸을 때는 허망함을 견디지 못해 무너지기 쉽다. 그 자리에 슬픔과 고통이 맹렬하게 찾아든다. 때로는 잃은 채로 가야할 때가 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해 찾아드는 것이 고통이므로.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해 찾아오지 못하는 것이 새로운 인생이므로.
‘탄핵심판’과 ‘거여견제론’으로 뜨거웠던 시간이 가고 이제 승자와 패자가 남았다. 기쁨으로 충만한 승자에 가려 응달로 사라지는 패자들에게는 평화를! 그리고 승자에게는 무엇보다도 겸손을!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열린우리당의 과반수 의석, 한나라당의 선전과 지역정당화, 민노당의 입성이라는 굵직한 특징을 보았다. 이중에 열린우리당의 승리가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단순하다. 그것은 지역주의를 탈피한 전국정당의 가능성도 아니고, 견제보다 안정을 바라는 국민의 심리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탄핵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다.
노 대통령이 탄핵되기 이전에 누가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점할 거라고 예측할 수 있었을까? 과반수는커녕 1백석도 어려웠다. 당연히 열린우리당의 선전은 무리한 탄핵에 대한 반사이익이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의 관점에서는 십자가를 진 예수였다. 당연히 문제가 남는다. ‘노 대통령 탄핵’이라는 반사이익을 업고 당선된,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여당의 속성은 안정감이고 든든함인데 열린우리당엔 그것이 없다. 선거와중에 터진 정동영 의장의 발언은 당 지도부의 경박함을 그대로 노출시키기까지 하지 않았나! 열린우리당은 이번 선거가, 미래를 끌고 나갈 수 있는 정치세력으로 열린우리당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면서 겸손하게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한나라당.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에서 지역정당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탄풍을 피해 그나마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영남지역주의의 방풍막과 정동영 의장의 실언에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역주의의 방어막을 통해 살아난 국회의원들이 TV에 나와서 탄핵이 잘못된 게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을 보면서 의아했다. 저들은 왜 자신들의 동지가 영남권 이외의 지역에서 왜 그렇게 어려운 싸움을 하고, 왜 그렇게 추풍낙엽처럼 허무하게 떨어져야 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단 말인가? 최소한도의 동지적 애정이라도 나누는 관계였다면 자신들의 동지들이 왜 그렇게 힘든 싸움을 해야했는지 성찰해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야당의 장점은 여당보다 쉽게 국민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그것이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 멀지 않은 미래에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서민을 대변하는 민노당이 야당을 교체하리라는 전망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 아닌지.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