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 ||
개그맨보다도 더 명랑하게 말을 하지만 깔깔거리고 나면 어,하고 툭, 울림을 주는 사람이 있는데, 대전중문교회의 장경동 목사가 그런 사람이다. 충청도 사투리, 구수한 얼굴, 능청스런 말투가 잘 버무려진 그가 묻는다.
“예수님이 이 땅에 안 오시는 이유가 뭔지 아세유?... 바로 배 터질까봐 안 오시는 거예유.”
예수가 이 땅에 오시면 이 땅의 큰 교회 목사님들이 예수님 오셨다고 너도나도 식사대접 하겠다고 줄을 설 거고, 그러다 보면 자신도 그 대접행렬에 서서 순번을 기다릴 거란다. 매일매일 진수성찬에 배 터지는 게 무서운 예수가 이 땅에 오시지 않고 대신 이런 말씀을 주신 거란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니라.”
목마르고 배고프고 헐벗은 자를 외면하는 것이 주를 외면하는 것이요, 그들을 대접하는 것이 바로 주를 대접하는 거라는 성경을 보고 깨달았단다. 예수는 하늘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와 함께 계시는구나! 그러니 예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 그건 이상한 거구나!
지난주에는 그렇게 지극히 작은 자와 함께 한 여자를 만났다. 악이 악순환되고 있는 이라크의 팔루자에 다녀온 평화운동가였다. 그녀가 말한다. “평화운동가라고 하지만 죽은 자의 숫자만 셌을 뿐, 한 일이 없어요. 소독약도 없는 병원에서 마취약도 없이 팔 다리를 끊어내야 하는 이라크 사람들과 그저 울기만 했습니다.”
함께 안타까워하고 함께 비장했을 뿐 아무 것도 해줄 게 없었는데 미군측에서 기한을 정해놓고 외국인은 나가라고, 안위를 보장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절망적인 이라크 사람들을 남겨놓고 나올 수가 없었단다. 그런데 정 많은 이라크 사람들이, 너는 네가 돌봐야 하는 자식이 있지 않느냐, 여기 있으면 죽을 지도 모르니 나가라, 너에게는 네 아이들을 돌보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평화다,라고 말해주면서 마음 편히 가라고 했단다. 눈물을 훔치면서 그녀가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평화를 짊어지고 그곳에 간 줄 알았는데 거기에 평화가 있어 그들의 평화가 자기에게 임했다고.
그러니까 우리가 지극히 작은 자라고 했던 사람들은 지극히 작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그런 거추장스런 벽이 없이 만날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자유롭게 마음을 열고 있으니까 예수의 사랑도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스미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랑으로 뭉클해지고 그 뭉클해짐으로 힘을 얻어 평화의 불꽃을 태우는 사람들, 거기에 예수가 있고 부처가 있다.
상대의 처지를 느껴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싹트는 게 평화이고 보면 평화야말로 살아있는 생물이다. 그러니 평화를 위해 싸우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아름다울 수밖에. 이래저래 천국까지 가는 모든 길이 천국이라는 말을 실감한 한 주였다.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