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 ||
그러나 감사원의 감사결과는 딴판이다. 정부 관료들에게 정책실패에 대한 면죄부와 금융감독기구의 정부기구화라는 두 종류의 선물을 한꺼번에 안겨주었다. 그리고 ‘신용카드 대란의 1차 책임은 카드 사용자에게 있다’고 밝혀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카드대란의 책임자들이 대부분 현직 관료나 국회의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전윤철 감사원장도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카드 대란의 근본적인 문제는 카드회사들에 고리대금업을 허용하고 서민들을 빚더미에 올려놓는 방법을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자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방식으로 금융기관들과 기업들을 대거 퇴출시키거나 합병시켰다. 또, 정리해고를 법제화하여 수많은 근로자들을 실업자로 만들었다. 다음 공적자금을 대거 투입하여 주요금융기관과 기업들을 외국자본에 매각했다.
이러한 정책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산업기반 붕괴, 고용불안, 국부유출, 재정부실 등 심각한 후유증을 낳았다. 그리고 경기를 불황으로 몰아가 국민들의 고통을 날로 심화시켰다.
다급해진 정부는 신용카드의 무제한 발급을 허용하여 경기부양으로 정책을 바꿨다. 카드발행을 통해 소비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침체된 경제를 살리겠다는 논리였다. 실업과 부채 등으로 주름살이 컸던 서민들은 자연히 카드 사용을 확대하였다.
그러나 곧 상환능력이 한계에 달하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여 취업은 물론 일상적인 경제활동까지 제한을 받는 함정에 빠졌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이 현금서비스 한도의 폐지인데 결국 이 조치는 카드빚으로 카드빚을 막는 연쇄적 덫을 만들어 4백만 명이나 되는 신용불량자를 발생시켰다.
이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지 않고서는 경제가 한 걸음도 나가기 어려운 것은 물론 자살이 꼬리를 물고, 범죄가 판을 치는 사회 파괴현상을 막을 수가 없다. 이런 중대 사안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금융감독위원회의 지시를 받아 감독업무를 하는 금융감독원 부원장 1인을 희생양처럼 징계요구한 것은 반도덕적이다.
더욱이 감사원은 금융감독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금융감독기구를 정부기구화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세계적으로 민간기구화하고 있는 추세를 거스르며 IMF위기와 카드대란을 연이어 불러온 관치금융을 회생시킨다는 면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이 방안은 모든 것을 행정 권력으로 해결하고 그에 따른 책임은 국민에게 넘기는 초월적 관료주의를 제도화하는 것밖에 안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카드대란의 책임규명은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신용불량자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 대책을 한시바삐 내놓아야 한다. 정부는 IMF 위기 때 부실기업들에게 공적자금을 대거 투입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신용불량자 문제해결에는 소극적이다. 더 나아가 관치금융과 관료주의를 부활시키는 발상에서 벗어나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금융감독기구를 만드는 진지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