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 ||
주덕이 먼저 “주석동지,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건네자 모택동이 “총사령동지, 안녕하십니까. 당신은 붉은 사령관입니다”라며 인사를 받았다. 그러나 주덕이 얼른 “아닙니다. 주석동지가 총사령이십니다”라며 모택동을 치켜세웠다. 그러자 모주석은 “아닙니다. 주모(朱毛)니까 당신은 저(猪)고 나는 그 몸의 털입니다. ‘저’가 없으면 어떻게 ‘모’가 붙어 있을수 있겠습니까”라고 받았다. 중국어의 주(朱)와 저(猪)의 발음이 똑같다는 점을 빗대 주덕은 돼지 몸통이고 자신은 거기에 달린 털이라고 조크를 던진 것이다.
이날 모택동과 주덕이 나누었던 조크는 중국판 몸통과 깃털의 에피소드인 셈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몸통과 깃털이 화제에 오른 것은 김영삼 대통령시절, 대통령의 한 측근인사가 한보사건으로 구속되면서 ‘나는 깃털에 지나지 않는다’고 털어놓으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대형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법망에 걸리지 않은 몸통이 누구냐를 놓고 뒷말이 오가곤 했다.
얼마전 대선자금 비리사건 공판에서 또 다시 ‘몸통론’이 불거졌다. 한나라당의 김영일 전 사무총장이 “검찰의 대선자금수사는 형평성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정치인이든 기업인이든 몸통은 죄다 면죄부를 주면서 고생한 실무자만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다”고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몸통은 건드리지 못하면서 왜 돈 심부름한 깃털들만 잡아 넣느냐는 불만이었다. 대선자금 수사를 하면서 정치권에서는 실무자들만 처벌받고 정작 대선후보들에겐 면죄부를 주고 재벌총수는 나 몰라라 하고 돈을 전달한 ‘고용사장’만 법정에 세우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며 깃털의 억울함을 토로한 것이다.
그러나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말은 하나의 레토릭일 뿐 아직까지도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다. 굳이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이라는 말을 끌어대지 않더라도 비리는 법을 당하지 못하고 법은 권력을 당하지 못한다는 것이 세상사의 진면목이다. ‘바늘을 훔친 자는 주륙을 당하고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는 중국의 격언도 있듯이 법망도 큰도둑 앞에서는 한낱 거미줄에 불과할 따름이다. 정권이 바뀌고 과거의 비리가 드러나도 잡혀가 단죄받는 것은 언제나 깃털들이고 몸통은 건재했다는 것은 우리의 50여 년 헌정사를 돌아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섰던 것은 유일한 예외적 ‘사건’이었다.
몸통에겐 법망이 미치지 못하는 법치가 깃털들에겐 참으로 억울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깃털에게 잘못이 있다면 권력의 자장(磁場)안에 있을 때는 왜 침묵하고 있었으며 비리임을 알고도 왜 일찍 손을 떼지 못했느냐는 점이다. 도천(盜泉)의 물을 함께 마신 것이 죄가 된다는 점을 진작 깨닫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