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 ||
끊일 줄 모르는 기침, 탈진으로 2주 이상을 입원했던 어머니는 삶의 계획을 수정했다. 이제 손을 필요로 하는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는데 메마르기만 한 서울생활이 무슨 미련이겠냐며 고향에 내려가서 잘생긴 산에 기대 살겠다고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는데, 안 가시겠다는 거였다. “아파보니까 알겠어, 얘, 독감으로도 죽을 수 있는 게 노인이야. 늙을수록 종합 병원이 가까워야 해.”
어머니 고향에는 큰 병원도, 병원으로 데려다 줄 자식도 없다는 이유로 어머니는 공기도 나쁘고, 물가도 비싸고, 인심 좋은 줄도 모르는 서울을 완강하게 고집하셨다.
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고, 병원 좋은 곳, 그곳이 순천인 것 같다. 아직도 많이 먹으라고 이것저것 권하는 그 친구는 순천에서 살고 있다. 아직도 자고 가라고 붙들고 아직도 터미널까지 배웅해 준다. 이미 서울에서는 낯설기만 한 인심이 거기서는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그 친구를 만나면 나는 바쁘다는 사실을 잊고, 오히려 바쁠 게 뭐가 있냐며 나도 모르게 느긋해진다.
그 인심 좋은 친구가 입원을 했다고 해서 병문안을 갔다. 처음엔, 그렇게 아프면 서울로 올라와야지, 왜 순천이냐고 타박했는데 가보고 놀랐다. 친구가 입원한 성가롤로 병원은 서울의 대학 종합병원 규모였다. 인구 30만, 크지 않은 도시에 엄청난 규모의 종합병원! 이윤을 생각한 자의 안목이라면 그렇게 거기에 투자했을 리 없었다. 그것은 이윤이 아니라 인연이었다. 월급도 받지 않고 봉사하는 마음이라는 우월한 생각도 놓아버린 수녀님들은 하느님을 섬기듯 환자들을 섬기고 있었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아 정갈하기만 한 수녀님들을 보면서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마음의 힘을 본 것 같아 괜히 부끄러워지고 괜히 착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수녀님들 때문에 건강하게 운영되는 병원은 이제 전남 동부 지역의 핵심 병원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그 병원이 술렁인다. 한 기업이 병원과 동일한 암반에서 골재채취를 하겠다고 순천시에 발파허가를 신청했고, 이에 순천시가 발파허가를 내 준 것이었다. 서울이라면 가능했을까?
하루에 2천 명 이상의 환자가 진료를 받고 입원환자의 보호자나 방문객까지 합하면 5천 명 정도의 사람들이 상주하는 그곳과 같은 암반에 발파허가라니! 먹고 살기 어려웠을 때는 먹고 살자고 그랬다지만 아무 곳이나 깨고 자르고 폭파하고 세우는 일은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평생 법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을 수녀님들이 진정서를 내고, 평생 자기주장이라고는 모르고 살았을 수녀님들이 우리의 입장을 발표하고 순청시청 앞에서 3개월 이상 릴레이 침묵시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저 가슴이 메었다. 쓸쓸하고 시리고 아픈 마음을 위로하는 이 시대 마리아들의 아픔은 아직도 생명보다도 개발을 선택하는 우리들의 이기심과 각박함의 결과였다.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