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 ||
최근 유학과 연수 목적으로 해외로 나가는 초·중·고교생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나가는 조기유학생의 숫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방학을 이용한 단기 어학연수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얼마가 되는지 파악도 안 된다. 몇 년 전만해도 조기유학생은 연간 1천 명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리고, 어학연수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소수에 그쳤다. 이러한 조기유학과 연수는 선진국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국제학교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나라건 가리지 않는다. 건강한 교육과 연수에 굶주린 청소년들이 세계 곳곳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이 나가면서 재산도 함께 나가는 것이다. 올 들어 유학, 연수, 해외여행, 재산반출 등 개인자본의 해외유출이 지난 8월까지 15조원이 넘는다. 더욱 큰 문제는 해외여행 관련 경제범죄 행위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90년대 이후 금융기관에서 고의적으로 고액 대출을 받은 뒤 갚지 않은 채 해외로 떠난 신용불량 이주자가 7천 명에 달한다. 금액으로 따져 8천억원에 이르는데, 이는 1인당 1억2천만원이 넘는다. 이뿐이 아니다. 환치기 수법을 이용한 재산도피가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관세청은 지난 6월 이후 외화자금을 불법으로 빼돌리는 방법으로 재산도피를 하는 범법행위를 단속한 결과 건수로 4백9건, 액수로 1조6천억원대에 이르는 사범을 적발했다.
최근 우리 사회는 학교교실이 무너지면서 이 땅에서 도저히 자식교육을 시킬 수 없다는 절망감이 팽배해 있다. 또, 정치는 불안하고 경제는 희망이 없다는 좌절감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조기유학과 가족이민이 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빼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나라를 파국으로 만드는 자해행위가 될 수 있다. 이 땅에서 태어난 이상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또 나라를 위해 최소한의 책임은 해야 한다. 나라가 어려울 때 오히려 함께 뭉쳐 나라를 지키고 새로운 발전을 모색하는 민족의식을 가져야 한다. 나만 도망가서 잘살겠다는 배타적 이기주의가 판을 칠 때 나라는 침몰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의 나라에서 전쟁이 나면 해외유학생들이 자진귀국하여 총을 들고 싸운다. 그런데, 우리는 교육이 잘 안 된다고 어린이들을 세계 도처로 내보내고 사회가 불안하다고 재산을 빼돌리는 행위를 한다. 물론, 국제화시대에 건전한 유학 그리고 정상적인 자금거래는 당연히 권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를 부정하는 행위는 멈춰야 한다. 그리고, 다함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공동운명체 의식을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가져야 한다. 여기서 정치권과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문제 해결에 먼저 나서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