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이생진 ‘그리운 바다 성산포’ 중
어디서나 넓은 바다, 용왕의 섬, 제주는 백두에서 한라까지의 그 한라산이 용트림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1만8천여 명에 이르는 신들이 살았다는 제주는 신화의 섬이기도 하다. 신화의 섬으로서 제주는 도시가 아닌 도시, 유적이 된 도시, 유적이 기원하는 축복을 들을 수 있는 도시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제주의 상징은 곶자왈이다. 곶자왈이란 돌밭 위에 형성된 숲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한라산 600고지 곶자왈에서는 돌이 숨쉬고 간절한 기원이 숨쉰다. 곶자왈의 바위는 흙처럼 뭇 생명들에게 물을 공급한다. 화산암의 공극 사이로 바위가 빗물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특이한 지질 구조로 생겨난 곶자왈은 제주 해안으로부터 중산간,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제주 생태계의 축이면서 제주 4·3사건 당시에는 쫓기는 민중들의 피신장소이기도 했다.
곶자왈은 전체가 숨골이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그 빗물 모두를 받아들여 지하수로 흐르게 한다. 이 지하수는 제주의 생명수여서 현재 제주도민의 90%가 여기에 생명을 잇대고 있다. 섬이 무인도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물이다. 물은 생명의 증거다. 마실 수 있는 물이 있어야 사람이 살고, 동물이 산다. 곶자왈은 바로 제주의 물을 만드는 생명의 산실이다. 그러니 곶자왈을 빼고 제주의 생명평화를 논할 수 없다. 곶자왈이야말로 제주의 젖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제주의 곶자왈이 개발의 망치를 맞고 위기에 서있다. 나무와 넝쿨, 암석 등이 자유롭게 엉져 생명수를 만들고 있는 거대한 생명의 땅에서 나무가 베어져 나가고 물을 품던 신성한 돌들이 뽑혀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녹색 사막이라고 일컬어지는 골프장이 들어설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골프장이 들어서고 골프장을 유지하기 위해 다량의 농약이 살포된다면 말할 것도 없이 생명수는 독약이 된다. 생명수 없이 생명 없고, 생명 없이 평화 없다. 제주가 육지에서 물을 공급받아가면서 세계평화의 섬으로서 안정적으로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환경부가 지정한 ‘그린시티(Green City)’로서의 자신감을 지속적으로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세계생물권보전지역’으로 당당할 수 있을 것인가?
유네스코는 2002년 11월 제주도를 ‘세계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이 세계적인 브랜드를 골프 관광이나 호화판 호텔로 불러들이는 얄팍하고도 천박한 상술로만 활용할 것인지, 아니면 제주를 제주의 관점에서 있는 그대로 지켜 가는 자부심으로 활용할지는 우리의 수준을 드러내는 중심의 문제다.
제주도가 눈에 보이는 골프장에 눈 멀고, 채석장에 귀멀어 깨끗하고 맑은 물을 지키지 못하면 신비의 섬 ‘제주’는 오래가지 않는다. 곶자왈을 지키는 것은 제주의 근본을 지키는 것이다. 21일과 22일 양일간 제주시 칼 호텔에서는 ‘세계평화 도시간의 연대와 과제’란 주제로 평화도시 국제컨퍼런스가 열린다. 그 자리에서 이 문제만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