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화장실의 불평등 문제는 어제 오늘의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지난 99년엔 서울대학교 인문대 여학생들이 여자 화장실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1천3백54명인 인문대학 남학생이 사용하는 화장실은 층마다 설치되어 소변기 1백56개, 양변기 90개나 되었지만 8백31명의 여학생이 사용하는 화장실은 아예 없는 층이 많고 9개 건물 전체에 양변기 33개밖에 안된다는 것이었다. 인문대학측이 화장실을 남녀 8대 2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사태가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공공시설의 여자 화장실 문제가 지금까지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던 것은 화장실 문제로 공석상에서 떠드는 것이 점잖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공공시설의 여자 화장실 숫자는 남자 화장실 숫자와 비슷하면 된다는 주먹구구식 평등주의도 문제를 키운 원인이었다. 얼마전 화장실 문화 시민연대가 화장실 이용에 관한 조사결과, 여성은 1회당 2분30초, 남성은 1분30초로 밝혀졌고 하루평균 화장실 사용횟수도 여성은 7.5회, 남성은 5.5회였다. 이 같은 통계로 보면 공공시설의 여자 화장실 숫자는 남자 화장실의 1.5배나 2배는 되어야 비로소 화장실의 남녀평등이 이루어진다는 얘기다.
남녀화장실의 불평등에서 보듯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남녀간의 신체적 차이나 역할의 차이조차 고려하지 않는 산술적 평등주의의 함정이 남아있다. 얼마전 어느 여고생이 ‘여자도 군대에 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되면서 여성 의무징병제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방의 의무를 진다’라고 되어 있으니 국민의 한 사람인 여성도 당연히 병역의무를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양성평등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여성도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언뜻 설득력있게 들린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서도 우리는 남녀간의 신체적 차이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산술적 평등주의를 볼 수 있다. 국방의무를 규정한 헌법조항에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라는 단서를 굳이 넣은 것도 여성이나 장애인, 연령층 등 예외적인 부분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의 지원입대 기회를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여성에게도 징병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무리한 주장인 듯하다. 역사를 뜻하는 히스토리(history)라는 단어가 여성비하적이니 당장 바꾸어야 한다는 교조적 평등주의도 곤란하지만 남자가 군대에 가니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산술적 평등주의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