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질문 다른 결과 ‘DK그룹’(Don‘t Know: 부동층)에 물어봐
▲ 지난 19일 한국자유총연맹 주최로 열린 세종시 수정안 지지 범국민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여론조사에서 부동층이나 유보층을 흔히 ‘DK그룹’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DK란 ‘Don’t Know’를 의미한다. 여론조사에서 이러한 부동층의 성향을 파악하는 일은 선거 전략상 매우 중요한 일이다. 역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 등 중요 선거가 있을 때마다 부동층을 파악하고 부동층의 표심을 얼마나 끌어오느냐는 선거 승리의 관건이 되곤 했다.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여러 기관들의 세종시 여론조사의 편차가 크게 나타난 이유가 이 DK그룹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대표는 세종시 수정안 발표 직후인 11~12일 실시된 5개의 여론조사(리얼미터,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 MBC·코리아리서치,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 중앙일보) 결과를 비교해 근거로 들었다. 이중 리얼미터의 조사에서만 원안 찬성(40.2%)이 수정안 찬성(40.1%)보다 높게 나왔고, 나머지 네 곳의 조사에서는 수정안 찬성이 높게 나왔는데 원안 찬성과의 차이가 적게는 7%p(11일 MBC·코리아리서치)에서 많게는 17.3%p(11일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까지 다양했다.
이택수 대표는 응답수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DK그룹 분포의 차이가 이러한 편차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원안추진 의견이 많았던 리얼미터 조사와 민주당 자체 조사에서는 DK그룹이 전체 응답자의 20% 안팎이었던 반면, 수정안 찬성 의견이 높게 나온 다른 기관들의 DK그룹 평균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는 것. 이 대표는 “심지어 매일경제의 조사에서는 (DK그룹이) 3%로 거의 모든 응답자들로부터 수정안 찬반에 대한 답변을 받아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여론조사마다 편차가 심한 부동층 분포로 인해 수정안 찬반의견에 대한 편차도 커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기본적으로 부동층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특히 전화조사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KSOI 윤희웅 연구원은 “여론 조사를 실시할 때에도 부동층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사실이다. 전화 면접원들이 의견을 물을 때 부동층을 줄이기 위해 재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앞서 다른 조사결과와 차이가 컸던 리얼미터의 경우 ARS(자동응답) 방식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 이택수 대표는 “리얼미터와 민주당 조사는 자동응답방식으로 ‘①수정 ②원안 ③모름/무응답’을 시간차이 없이 연속해서 성우가 불러주는 반면, 나머지 조사기관의 전화면접 조사는 수정, 원안을 우선 불러주고 답변을 꺼리거나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재차 답변을 유도하기 때문에 DK그룹이 낮아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세종시 수정안 발표 이후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는 대부분 원안 찬성, 수정안 찬성, 기타/무응답 세 가지의 답변지만으로 실시됐다. 원안이나 정부의 수정안 모두 찬성하지 않는 경우, 혹은 원안과 수정안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 굳이 답변을 요구받는다면 응답자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설문 조사 결과를 토대로 여론조사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이들은 ‘부동층’으로 머물렀거나 ‘수정안’으로 답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택수 대표는 “DK그룹 응답자들은 세종시에 대해 잘 몰라서 모른다고 응답하는 경우도 있고 알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응답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보기가 없이 무조건 찬반양론 중 선택하라고 한다면 특정 응답으로 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인지도가 낮고 정치쟁점화되어버린 세종시 이슈에 대해서는 DK그룹을 애써 줄이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윤희웅 연구원 역시 “세종시 이슈에 대해 국민들이 의견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이기 때문에 편차가 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같은 조사기관에서 실시한 코리아리서치·동아일보(11일), 코리아리서치·MBC 조사(11일)에서도 각각 원안 찬성은 37.5%, 40.5%로 비슷했지만, 수정안 찬성은 54.2%와 47.5%로 6.7%p의 편차를 보였다.
또 정부의 수정안 발표 직전 홍사덕, 원희룡 의원 등이 제시한 절충안에 찬성하는 응답자들의 경우 여론조사에서 굳이 선택하라고 한다면 ‘수정안’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절충안은 분명 ‘원안과는 다른 안’이므로 원안 대신 수정안 쪽으로 답변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세종시 논란이 커지며 정부에서도 행정부처 2곳 정도를 이전하는 내용의 절충안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 이 때문에 리얼미터의 경우 지난 20일 조사부터 수정안, 원안, 모름/무응답에 ‘절충안’을 선택지에 포함해 실시하고 있다. 20일 리얼미터 조사 결과는 수정안 38.4%, 원안 32.8%, 절충안 19.1%, 모름/무응답 9.7%로 나타났다. 이택수 대표는 “절충안을 응답지에 넣으니 부동층이 10% 가까이 줄어들었다. 답변을 유보했던 응답자 중 절반 가까이는 원안도 수정안도 찬성하지 않았던 이들이다. 다른 조사에서는 이 응답자들이 수정안으로 응답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부동층의 규모가 달라짐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에 큰 변화를 보였던 단적인 사례가 있었다. 지난 2007년 4월 18일 실시됐던 YTN-글로벌리서치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였다. 당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지지도는 2주일 전에 비해 13.7%p나 떨어져 34.1%를 기록했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경우 22.1%→22.1%로 변화가 없었다. 눈에 띄는 점은 같은 기간 부동층이 16.5%→32.5%로 16%p 올라갔다는 점이다. 계층별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지지도 하락은 당시 여권이던 열린우리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권(-29.5%p)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당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설문문항이 달라진 것이 지지율 변화의 큰 요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리서치 지용근 대표는 당시 “그동안의 조사는 대통령 후보로서 누가 더 좋다고 하는 ‘후보 선호도’ 개념의 조사를 실시했는데 이번 조사는 오늘이 투표 당일이라면 누굴 찍겠느냐는 투표 행위로서의 ‘후보 지지도’ 조사였다. 그 결과 호남 지역에서 특히 이명박 후보 지지가 대거 부동층으로 옮겨지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이 전 시장의 지지도 고공행진이 ‘밴드왜건효과’(표심이 대세를 따라가 1위 후보에게 몰리는 현상) 때문이었고 이 효과가 빠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었으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설문문항의 변화로 인해 응답자의 답변이 변할 수 있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 업계 내부에서도 보다 정밀한 여론조사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는 상황.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미디어법 파동 당시 야당 의원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정부를 압박했는데, 이번에는 정부와 여당이 여론으로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고 반대로 야당은 여론조사로 정책을 결정하면 안 된다고 한다”고 꼬집으며 “여론조사가 기교여론(技巧輿論)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조사기관이나 보도를 하는 언론사나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