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그러나 노래방 점수가 잘 나왔다고 해서 정말 가수가 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노래방의 점수가 후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요즘 그 같은 ‘노래방 신드롬’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5·31선거가 자신들에 대한 민의의 지지로 착각하고 있는 한나라당 일부 인사들이 그들이다. 지난 5·31 지방선거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참패했지만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승리한 것도 아니었다. 엄격히 말하면 기호 2번이 승리한 선거였다. 상당수의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에서 공천한 기초 단체장이 누구인지, 의원 후보가 누구인지 이름 석자도 제대로 모른채 무턱대고 2번에다 찍었다고 한다. 한나라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열린우리당이 싫어서 찍은 것이다.
사정이 그러함에도 지난번 선거를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로 착각한 몇몇 인사들이 이미 싸 놓았던 짐 보따리를 슬그머니 풀어 놓기 시작했다. 이미 몇해 전에 정계를 은퇴했던 왕년의 실세가 다시 출마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그런가하면 부인이 구청장 공천 희망자로부터 4억여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스스로 ‘당직, 의원직, 또 정치적 거취 등’을 조속히 정리하겠다던 중진의원도 한동안의 칩거생활을 끝내고 정치일선에 복귀했다.
두 사람 다 복귀명분은 그럴 듯하다. 우선 “주변의원들의 만류가 큰 데다 한나라당의 대선승리를 위한 역할이 남아 있다는 판단에서”라는 측근인사의 해명이 있었다. 또한 “한나라당의 대선승리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 무한책임을 다 하겠다”는 자못 비장한 출사표도 있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미 정계를 은퇴한 그들 `흘러간 정치인’들에게 누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 무한책임을 다 해 달라고 부탁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한마디로 ‘흘러간 물도 물레방아를 돌릴 수 있다’는 생각은 과욕이거나 착각이다. ‘주위의 의원들’ 운운하는 것도 자신의 복귀를 합리화하기 위한 아전인수(我田引水)에 지나지 않는다. 재작년에는 ‘서쪽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겠다’며 은퇴를 거부했던 원로 정치인도 결국 민의의 심판으로 정계를 떠나야했다.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제일 현명한 선택이지만 박수받을 때를 놓쳤다고 해서 ‘그래도 다시 한번’식의 욕심은 과욕이다. 그 같은 과욕을 버리지 못하면 자칫 지금까지 쌓아 온 이력마저 더럽히기 십상이다. 여염의 장삼이사(張三李四)도 다 아는 누구에게나 후한 노래방 점수를 자신에 대한 찬사로 착각하는 그들의 과욕이 안타까울 따름이다.